진한사 1장~8장 요약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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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장 진제국의 형성

제2장 진제국의 붕괴와 한제국의 성립

제3장 한초의 유씨정권

제4장 무제시대의 외정과 내정

제5장 곽씨정권의 성립과 붕괴

제6장 유교의 국교화와 왕망정권의 출현

제7장 후한왕조의 성립

제8장 후한왕조의 추이와 대외관계

본문내용

대립하였고, 적미집단은 왕조를 세웠음에도 생산에 종사하는 인민 지배 체제를 만들 수 없어 약탈을 일삼다가 대패하여 투항하였다.
3. 광무제의 즉위와 낙양에 도읍을 정함
갱시제는 수도를 낙양으로 옮기고 하북 평정을 시작했다. 이에 유수가 그 일을 행하였고 자립하기 시작했는데, 부명에 따라 제위에 오를 것을 결심한 그는 광무제로 즉위하게 되었다. 왕조체제의 정비가 완료되자 낙양에 도읍을 정하였다.
4. 군웅의 평정과 천하통일
적미군이 있던 관중이 그들의 투항에도 불구하고 많은 호족집단이 할거하고 있어 골칫거리였는데, 이를 평정하였고 동쪽 제지방의 농민반란집단 또한 평정하였다. 아울러 군웅을 평정하였는데, 내부에도 해당하여 동방의 유영을 모살하는 과감함을 보였다. 남방과 북방 또한 평정하였고, 왕망의 폭정기에 들어선 외효정권 또한 멸망시키고 촉의 곤손술정권 또한 멸망시켰다. 이에 천하통일을 완성하였고, 민정정책에 착수하여 노비해방을 시키고 전조의 경감과 군병의 폐지, 경지와 호구의 조사로 지방관의 부정에 대한 방지와 인민 지배와 국가재정 확립을 시행하였다. 오수전 주조를 시작하고 정치기구를 정비하여 군국제를 채용하고 태산봉선을 시행하였다.
제8장 후한왕조의 추이와 대외관계
1. 후한 전반기의 국내 상황
57년에 고아무제가 죽자, 황태자 장이 명제로 즉위하였다. 이후 명제가 재위 18년 만에 죽고 황태자 달이 장제로 즉위하여 12년만에 죽으면서 조가 즉위하여 화제가 되었는데, 이 3대의 시기가 후한왕조의 전성기였다. 이 시기에 주목되는 것은 불교신앙의 출현과 초왕 영의 의옥사건이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것은 시기에 대해서도 여러 설이 있는데, 명제 시기에 이미 전래되었다. 명제가 부도의 수양이나 제사를 행하는 영이 수용한 불교신앙을 시인하였음으로 유교와 불교가 상호 배제적 관계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초왕 영은 잉후 대역무도죄로 고발되어 제후왕의 지위를 박탈당하였다. 후한시대 수도 낙양에 태학을 29년에 설치하였고, 광무제 시대에 박사를 두고 군국에도 학교를 세웠다. 관학과 함께 지방에 설립된 사학이 각지에 퍼져나가면서 유학이 배급되고 유교가 장려되었고, 학파 간의 논쟁이 활발해지며 백호관 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후한의 참위설은 유학의 풍조가 답습되면서 더욱 강화됨에 따라 유가와의 결합이 후대에도 영향을 주었다. 예교주의로 인륜질서를 존중하였고, 선거제도는 전한의 것을 답습하였고 유교적 이념을 더 강조하여 효렴이라는 도덕 기준으로 관리를 채용하는 변화가 생겼다. 후한 전반기의 문화로 반고의 <<한서>>완성과 사물의 본질을 독자적으로 설명하고 당시 사회현상을 해명하는 왕충의 <<논형>>, 허신의 <<설문해자>> 등이 책이 제작되었다. 채륜의 종이 발명과 함께 장형의 혼천의와 후풍지동의 발명 등도 이 시기에 일어났다.
2. 흉노와 서역의 거취
광무제 시기에도 흉노와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는데, 흉노 내부의 분열로 인해 남북으로 분열되면서 남흉노는 투항하였고, 북흉노는 여전히 남아 한에서는 이를 회유하는 정책을 취하였다. 왕망시대에 서역 제나라가 배반하고 흉노가 이 지방에 세력을 확장하였는데, 반초에 의해 서역 제나라가 다시 한에 복속하게 되면서 북흉노는 세력이 약화되었다. 북흉노의 쇠퇴로 북방의 위험이 없어진 가운데 서방의 대월지가 쳐들어 왔고, 이를 막아내면서 조공을 받는 등의 성과와 함께 반초의 서역경영이 완성되었다.
3. 강족의 반란
황하 상류 산악지대에 살던 강족이 선령강의 반란을 시작으로 소당강의 반란으로 이어졌으나 내부의 분열을 이용하여 이를 진압한 한은, 항복해서 내지 군으로 이주한 강족들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큰 위기를 맞이했다. 강족과의 싸움에 거듭되는 패배와 함께 재정의 고갈로 인해 왕조 쇠미의 징조가 보이게 되었다.
4. 동아시아 주변 여러 민족의 동향
현 베트남 지방인 교지에서 광무제 시대에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는데, 쯩짝쯩니 자매의 지도하에서 일어나 반란으로 급속히 확대되어 피지배민족의 독립정권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두 자매가 패사한 후에도 반란군의 저항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또한 동북쪽의 오환선비고구려부여예맥 등의 제민족들 중 오환과 선비가 흉노의 내부분열로 흉노에서 이탈해 한에 복속하였는데, 이들이 약탈과 침입을 자행하면서 골칫거리가 되었다. 후한제국의 외번이었던 고구려가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는데, 한 4군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한반도 남쪽 바다 건너에 왜국이 중국왕조에 사자를 파견하면서 왜국으로부터 조공을 받는 시기도 이 때였다. 이렇게 후한왕조는 책봉관계이거나 책봉이 거부되거나 군현제 지배에 대한 저항 또는 저항 등과 함께 군현제 지배의 한계가 드러나고 주변 미개민족이 문명사회로 탈피하여 정치적 사회의 성숙을 일으키던 점과 유교가 주변국가와의 국제질서의 방도를 제시한 점 등 동아시아 세계를 형성하는 과정에 있었다.
옮긴이의 말을 보면서 <<사기>>와 <<한서>>같은 거대한 스케일의 위대한 역사서를 여건이 좋은 현시대에 왜 만들지 못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한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위대한 역사서는 당대에 인정받은 것이 잘 없고, 후대에 들어서 제대로 된 가치를 지니게 되니
는 경우가 많으니, 역사를 전공하는 나는 현시대에도 만들어졌거나 만들어 지고 있다고 희망한다. 이 책이 그러한 책에 해당하거나 혹은 도움을 주거나 그러한 책을 저술할 수 있는 사학자를 만드는 텍스트로는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 우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사상 강렬한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하였기에 포인트가 확연히 들어와 집중되었고, 왕위의 계승에 따라 정치경제 구조의 변동을 담아 역사 상식이 부족한 경우에도 읽기 쉬운 책 같다. 한 가지 내용을 서술함에 있어서도, 교과서적인 절대적이고 일원적 서술을 피하고, 추측 적이고 불확실한 것은 서술방식에서 미리 알려주고 여러 견해를 수용하여 다 같이 담아내면서 중국사를 다각도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중국사 전반에 걸쳐 지식이 부족한 사학인들, 또는 일반인들에게 ‘진 시황제’나 ‘한 고조 유방’과 같은 단편적 단어만이 지배하는 진제국과 한 제국에 대한 상식을 넓혀주는 필독서라 생각된다.

키워드

진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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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1.04.10
  • 저작시기201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6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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