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욕(禁慾)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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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금욕(禁慾)에 대하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세계의 눈

2) 삶에의 意志의 긍정과 부정

3) 禁慾의 讚歌

4) 禁慾의 높은 段階

5) 禁慾의 實例

6) 聖者들

7) 어느 僧侶의 이야기

8) 기독교의 倫理

9) 인도인의 倫理

10) 내면적인 희열

11) 聖人의 내적 고투

12) 苦惱에서의 解脫

본문내용

화와 깊은 평정 그리고 내면적인 명랑성이다. 이러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우리에게 망설임 없이 현명해지기 위해 행동하라 고 외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난 자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는 이러한 경지를 목격하거나, 혹은 상상력을 다하여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무한한 동경을 갖게 된다. 또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손에 넣은 욕망 같은 것은 거지에게, 이틀이면 그가 다시 굶주리게 되는데도 오늘 하루의 목숨을 보존케 하기 위해 던져주는 푼돈과 같은 것임을 통감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금욕은 세습(世襲)의 영지(領地)이며, 영주는 언제나 이일 때문에 주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11) 聖人의 내적 고투
육체는 단지 객체화의 형식 속에 있어서의, 혹은 표상으로서의 세계 속에 나타난 의지 자체인 이상, 육체가 살아 있는한 삶에의 의지도 가능성으로서 존재하면서 언제나 현실 속에 모습을 나타내려고 하며 다시금 그 열화(烈火)를 불타오르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성한 사람들의 생활 속에 나타난 마음의 평화와 즐거움은 다만 의지를 부단히 극복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며 이러한 성과를 가져온 땅에서는 삶의 의지와의 끊임없는 투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영속적인 마음의 평화는 이 지구상에서 아무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인의 내면생활을 다룬 기사 속에서 영혼의 투쟁상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고개를 치켜드는 의지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금욕에 힘쓰고, 자기의 죄과를 보상하기 위해 엄격한 생활을 하며, 불쾌한 일을 일부러 원하는 등 여러모로 애쓰고 있다.
그들은 해탈의 가치를 잘 알고 있으며, 이미 획득한 마음의 평안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또한 향락을-남을 조금도 해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것이라도-누리거나 조금이라도 허영심이 꿈틀거리면 이에 대하여 엄격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인간의 모든 욕구 속에서 가장 어리석은 것이면서도 가장 활발히 움직이며 좀처럼 소멸되지 않는 허영심도 사라져 버리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사용해 온 낱말인 금욕에 대하여 나는 좁은 의미에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즉, 그것은 의지를 끊임없이 학대하기 위해 쾌적한 것을 거부하고 불쾌한 것을 원하며, 스스로 속죄의 생활을 보내면서 자기를 괴롭힘으로써 의식적으로 의지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12) 苦惱에서의 解脫
우리는 이미 의지의 부정에 도달한 자가 이를 간직하기 위해 힘쓰는 일, 즉 금욕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운명에 의해 정해진 괴로움도 일반적으로 말해서 의지를 부정하기 위한 제 2의 길이다. 뿐만 아니라 대다수 사람들은 오직 이 제 2의 길에 의해서만 의지의 부정에 도달할 수 있으며, 단지 인식된 괴로움이 아니라 거의가 몸소 피부로 느낀 괴로움에 의해, 때로는 죽음에 접근해 감으로써 비로소 완전한 체념(諦念)의 경지에 들어가게 됨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소수의 사람들만이 객체화의 원리를 통찰하고, 인식을 통하여 완전한 선의(善意)를 지니게 되며, 모든 사람에 대하여 애정을 품으며, 드디어 이 세상의 괴로움을 모두 자기 자신의 괴로움으로 인정하고 의지를 부정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지에 접근한 자라도 언제나 간신히 살아나가는 형편이며, 한동안 남들이 찬양하여 흐뭇하게 생각하게 되면 어떤 희망을 갖게 되고 따라서 의지의 만족을 도모하는 등, 요컨대 쾌락이 의지를 부정하는 데 장해가 되어 다시금 의지를 긍정하려는 유혹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와 관련하여 모든 유혹은 악마로서 인격화되어 있다. 그러므로 일반 사람들은 스스로 더이상 괴로울 수 없을 정도로 시달림을 받음으로써 의지가 자기 자신을 부정하기 전에 의지가 타파(打破)되어 있어야 한다. 그때, 즉 점점 더 가혹해지는 고뇌의 모든 단계를 거쳐서 매우 완강하게 저항하면서도 절망하기 바로 직전에 놓인 사람이 그 후에 갑자기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자기와 세계를 인식하고, 자기의 모든 본질을 변경시켜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고뇌를 초월해서 마치 고통으로 정화(淨化)되어 신성하게 된 것처럼 그 무엇에 의해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정과 지복(至福) 그리고 숭고하 ㄴ경지에 들어가게 되며, 종전에는 악착같이 집념(執念)하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버리고 죽음을 기꺼이 맞아들이게 된다.
이 경지는 고뇌를 정화하는 불길이 가져온 삶에의 의지를 부정하는 은빛 눈초리로 세상을 보는 것으로, 곧 해탈이다. 매우 악질이던 사람도 때로는 극심한 고통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경지에까지 정화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그들은 완전히 딴사람으로 변화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전에 범한 여러 가지 악행들도 이미 그들의 양심을 불안에 몰아넣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과거의 악행을 기꺼이 죽음으로써 보상하려고 하며, 이제는 그들에게 이질적(異質的)인 혐오스럽기 짝이 없던 의지의 현상의 종말을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커다란 불행에 의해, 그리고 구원을 얻는 데 절망함으로써 이루어진 이 의지부정(意志否定)의 모습을 분명히 묘사한 시로서는, 대 괴테의 불멸의 걸작 파우스트 에 등장한 그레첸의 고난의 이야기를 능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 자유의지에 의해 스스로 구한 세계의 고뇌를 단지 인식하는 데서 얻을 수 있는 제 1의 길이 아니라, 과도의 고뇌를 몸소 체험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제 2의 길의 전형(典刑)이다. 분명히 아욕(我慾)에 사로잡힌 주인공이 나중에는 완전한 체념(諦念)의 경지에 도달하며, 그때 삶에의 의지가 그 현상이 소멸되는 모습을 취급한 비극은 많이 볼 수 있지만, 그 변신의 본질적인 점을 앞에서 말한 파우스트 의 경우처럼 군더더기가 전혀 없이 순수하게 눈앞에 볼 수 있도록 전개한 작품은 달리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1) 세계의 눈
2) 삶에의 意志의 긍정과 부정
3) 禁慾의 讚歌
4) 禁慾의 높은 段階
5) 禁慾의 實例
6) 聖者들
7) 어느 僧侶의 이야기
8) 기독교의 倫理
9) 인도인의 倫理
10) 내면적인 희열
11) 聖人의 내적 고투
12) 苦惱에서의 解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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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11.04.15
  • 저작시기2011.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66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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