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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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부산에 관하여 ..

❦부산의 역사

❦부산의 기후

❦상세일정

본문내용

무 사이로 언듯언듯 보이는 푸른 바다, 오른쪽으로는 아름다운 음식점과 카페 건물이 줄을 잇고 있는 이색적인 드라이브 코스, 달맞이길. 해안가의 낮은 산을 끼고 나 있는 2차선 주변에는 80년대 후부터 카페가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수많은 음식점과 카페촌을 이루며 해운대의 관광명소로 자리를 잡고 있다. 전원풍의 인테리어부터 모던한 인테리어 까지 다양한 카페들이 있으며 어느 카페에 들어가던지 간에 해운대 바닷가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이곳의 장점이다. “달맞이 고개”라는 이름에 걸맞게 날씨가 좋은 밤이면 바다 위로 두둥실 떠오른 달과 함께 해안가를 따라 반짝 반짝 빛나는 해운대 야경의 신비스러움을 맛볼 수 있다. 달맞이 고개의 정상에는 길오른쪽으로 해월정이라는 조그마한 정자 겸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해월정에 오르면 시원한 바닷바람과 함께 나무사이에 가려있던 동남 해가 눈앞에 탁 트이며 환하게 드러난다.
해운대(온천, 아쿠아리움, 동백공원)
: 온천장과 해수욕장이 있다. 한국 8경의 하나로 꼽히는 명승지이며, 해운대 자체의 8경이 또 있을 정도로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찬탄을 받았다. 해운대라는 지명만 하더라도, 신라 말기의 학자 최치원이 난세를 비관한 끝에 속진을 떨어버리기로 작정하고 해인사로 들어가던 길에 이곳에 이르러 절경에 감탄한 나머지 동백섬 암반 위에 자신의 호를 따서 해운대라 새긴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그 세 글자가 지금도 바위에 뚜렷이 남아 있다.
통일신라 51대 진성여왕은 옛날 구남해수온천이라 부른 이곳에 자주 놀러와서 정사를 버리고 행락을 일삼았기 때문에 어떤 관리가 용감히 온천을 패쇄해 버렸다고 한다. 일설에는 왜구의 힘범이 극성스러워서 폐탕했다고도 하는데 왜구가 왜 온천장을 노략질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공중욕장이 부활될 정도로 다시 활기를 띠었으며, 한말에 황실에서는 이곳 도남산에 대대적으로 계획조림까지 하였고, 고관들이 다투어서 별장을 짓기도 하였다. 일제침략 이후에는 일본인들이 행락의 터전으로 삼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휴양관광지로서의 근대적 개발이 시작된 것은 일제 침략이후에는 일본인들이 행락의 터전으로 삼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휴양관광지로서의 근대적 개발이 시작된 것은 일제침략이후였다. 오늘날 해운대는 해수욕장, 온천장, 풀장, 골프장등 위락시설과 숙박시설 등을 고루 갖추고 교통망도 정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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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1.07.30
  • 저작시기2011.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91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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