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들어가는 말
2. 본문
(1) 농민소설과 농촌소설
(2) 농민소설의 분류
(3) 민족주의적 농민소설
1) 춘원 이광수의 ‘흙’
2)민족주의적 농민소설의 특질
(4) 사실적 농민소설
1) 방관적 농민소설
2) 김유정의 「만무방」
3) 방관적 농민소설의 특질
(5) 민족주의적 농민소설과 사실적 농민소설
1) 주제
2) 갈래
3) 한계
3. 맺음말
2. 본문
(1) 농민소설과 농촌소설
(2) 농민소설의 분류
(3) 민족주의적 농민소설
1) 춘원 이광수의 ‘흙’
2)민족주의적 농민소설의 특질
(4) 사실적 농민소설
1) 방관적 농민소설
2) 김유정의 「만무방」
3) 방관적 농민소설의 특질
(5) 민족주의적 농민소설과 사실적 농민소설
1) 주제
2) 갈래
3) 한계
3. 맺음말
본문내용
섯째, 인물은 소작농으로서, 일제에 아첨하는 사이비 농촌 지도자나 지주등으로부터 스스로 피해자임을 자각하고 이에 분노하는 농민상으로 창조되었다.
넷째, 구성에 있어서는 대체로 농민들 사이의 대립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지주와 대립되는 방법으로 짜세우는 구성법을 썼다.
다섯째, 정확한 문장을 사용했으며, 거기다 반어적 역설적, 상징적인 어조를 곁들여 표현하였다.
여섯째, 기법의 우수성과 사실적인 문장 표현으로 작품의 질을 높였다.
(5) 민족주의적 농민소설과 사실주의적 농민소설
1) 주제
춘원 이광수「흙」
김유정 「만무방」
피폐한 농촌의 계몽과
귀농의식
1930년대 한국 농촌의 궁핍한 실상과
그것으로 인한 왜곡된 삶
춘원의 흙은 본문의 위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민족주의적 계몽의식을 문학화 한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때문에 주제 또한 당대에 불어오던 브나로드 운동에 따른 귀농의식과 그를 통한 농촌 계몽을 주제로 하고 있는 반면 김유정의 만무방에서는 이렇다 할 해결방안 없이 당대의 아이러니한 농촌의 현실과 그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만무방’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주제로 하고 있다.
2) 갈래
춘원 이광수「흙」
김유정 「만무방」
민족주의적 사상을 바탕으로 한
계몽주의 성격의 소설,
최초의 민족주의적 농민소설
한국의 농민소설이 농민과의 밀착으로
더욱 사실성을 회득하게 되는 발단.
이광수의 흙이 나오기 전까지는 빈농들을 계급투쟁에 끌어들임으로써 계급혁명을 성취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쓰인 프로 문학적 농민소설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에 의해 농민을 교화하기 위한 계몽주의적 성격을 지닌 민족주의적 농민소설이 대두하게 되었다. 당대에 성행하던 브나로드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창작되었으며 심훈의 「상록수」와 함께 전형적인 농촌계몽소설의 전형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흙」은 허숭이라는 인텔리를 앞세워 계몽에 힘쓰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주체, 즉 농민들이 너무나 피동적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당대 현실의 모순타파에 힘을 써야 할 주체들의 행동력을 보여주지 못한, 즉 행동의 추진력이 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김유정의 「만무방」은 내용 자체에서 어떠한 농민계몽의식이 들어나지 않는다. 사실 주인공 조차도 「흙」의 허숭과 같은 인텔리도 아니고, 제목 그대로 ‘만무방’같은 사람이다. 작가는 이러한 농촌의 피폐에 찌들어버린 농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가 보는 시각을 당대의 현실을 작가 특유의 향토색 짙은 토속적인 어휘와 풍자를 사용하여 해학적이지만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혹 이 소설의 서두에 응칠의 시각으로 가을날의 정경을 유쾌하고 발랄하며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해서 사실주의라고 볼 수 없다라고 한다는 것은 작품의 오해석이라 생각한다. 작가가 주도한 바는 당대 농촌현실의 비참함에도 응칠이가 여유가 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는 위에서도 설명한 아이러니적 기법이 녹아있다고 할 수 있다. 김유정은 즉, 당대 농민을 주인공으로 세워 농촌의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객관적이며 사실적으로 묘사했다고 할 수 있다. 신동욱이 김유정을 「사실주의의 정통적 작가」라고 한것과 맥락이 상통한다.
3) 한계
춘원 이광수「흙」
김유정 「만무방」
농민운동의 실질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함.
문학의 내용성을 중시.
이광수의 「흙」은 최초의 농촌계몽소설임을 생각하면 문학사적으로의 의의는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홍효민은 『흙』이 “춘원이 의도하는 바 귀농운동을 이렇게 하였으면 어떨까 하는 문제를 제시”한 것 송효민.「귀농운동의 관념화」(『인문평론』, 1941. 1)
이라고 규정하며 이 작품을 『고향』과 비교한다. 즉 홍효민은 “두 작가가 가진 바 이데올로기에서 오는 차이”로 인해 『흙』은 “조선의 현실을 전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논한다. 김동인 역시『흙』의 농민문학으로서의 한계를 말한다. 즉 김동인은 『흙』의 등장인물과 구성을 자세히 분석하거나 ‘살여울’을 ‘달여울’로 표기하는 일과 같은 작가의 혼동을 지적하면서, “도회인이 책상머리에 앉아서 상상으로 생각하는 조선 농촌의 고민과 현실과의 새에는 상당한 어긋남” 김동인.『춘원연구』, 신구문화사, 1956
에 있을 것이라고 쓴다. 즉, 당시 농촌에 뛰어들어 현실파악을 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유정의 만무방에서는 다른 이유로 한계점을 지적하는데, 주된 내용이 바로 현실과 문학의 연계성이다. 그가 궁핍한 민중의 삶과 당대 농촌의 현실인식에 있어서는 뛰어남을 부인 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현실인식과 세계관이 문학세계와 동 떨어 질수는 없음을 생각하면 당대 농촌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느냐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삼엄한 검열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방향 제시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결국 그로 인해 작가의 현실인식이 약화된 것처럼 보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민중을 ‘만무방’같이 희화화함으로써 생기는 민중 생활의 진실성과 전체성이 훼손되었다는 평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3. 맺음말
지금까지 본문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농민소설 = 농촌소설은 아니다. 농민소설은 농촌소설의 범주에 속하며, 농촌소설에는 농촌을 제재로 하기는 했지만 주인공이 농민이 아니거나 농민의 일상과 의식의 생활을 그려내지 않은 농촌제재소설과 농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생활상과 의식을 주요 제재로 한 농민소설이 있다.
1930년대에 초기 프로 문학적 농민소설을 시작으로 이념적 농민소설과 사실적 농민소설이 대두되었으며, 이념적 농민소설에는 프로문학적 농민소설과 민족주의적 농민소설이, 그리고 사실적 농민소설에는 방관주의적 농민소설과 실천적 농민소설이 있음을 알아보았다.
본문에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본 민족주의적 농민소설은 1930년대 중반의 귀농 인텔리의 소영웅적 농촌 운동을 그린 농민소설로, 현실 저항의 자세는 약했으나, 기법면에서 프로 문학적 농민소설보다 우수한 문학이었다.
또, 방관적 농민소설은 1935년 전후에 나온 순수한 리얼리즘 작가들에 의하여 쓰인 농민소설로서, 농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자각하여 이에 분노하는 농민상을 부각시킨, 한 단계 진보된 농민소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넷째, 구성에 있어서는 대체로 농민들 사이의 대립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지주와 대립되는 방법으로 짜세우는 구성법을 썼다.
다섯째, 정확한 문장을 사용했으며, 거기다 반어적 역설적, 상징적인 어조를 곁들여 표현하였다.
여섯째, 기법의 우수성과 사실적인 문장 표현으로 작품의 질을 높였다.
(5) 민족주의적 농민소설과 사실주의적 농민소설
1) 주제
춘원 이광수「흙」
김유정 「만무방」
피폐한 농촌의 계몽과
귀농의식
1930년대 한국 농촌의 궁핍한 실상과
그것으로 인한 왜곡된 삶
춘원의 흙은 본문의 위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민족주의적 계몽의식을 문학화 한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때문에 주제 또한 당대에 불어오던 브나로드 운동에 따른 귀농의식과 그를 통한 농촌 계몽을 주제로 하고 있는 반면 김유정의 만무방에서는 이렇다 할 해결방안 없이 당대의 아이러니한 농촌의 현실과 그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만무방’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주제로 하고 있다.
2) 갈래
춘원 이광수「흙」
김유정 「만무방」
민족주의적 사상을 바탕으로 한
계몽주의 성격의 소설,
최초의 민족주의적 농민소설
한국의 농민소설이 농민과의 밀착으로
더욱 사실성을 회득하게 되는 발단.
이광수의 흙이 나오기 전까지는 빈농들을 계급투쟁에 끌어들임으로써 계급혁명을 성취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쓰인 프로 문학적 농민소설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에 의해 농민을 교화하기 위한 계몽주의적 성격을 지닌 민족주의적 농민소설이 대두하게 되었다. 당대에 성행하던 브나로드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창작되었으며 심훈의 「상록수」와 함께 전형적인 농촌계몽소설의 전형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흙」은 허숭이라는 인텔리를 앞세워 계몽에 힘쓰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주체, 즉 농민들이 너무나 피동적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당대 현실의 모순타파에 힘을 써야 할 주체들의 행동력을 보여주지 못한, 즉 행동의 추진력이 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김유정의 「만무방」은 내용 자체에서 어떠한 농민계몽의식이 들어나지 않는다. 사실 주인공 조차도 「흙」의 허숭과 같은 인텔리도 아니고, 제목 그대로 ‘만무방’같은 사람이다. 작가는 이러한 농촌의 피폐에 찌들어버린 농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가 보는 시각을 당대의 현실을 작가 특유의 향토색 짙은 토속적인 어휘와 풍자를 사용하여 해학적이지만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혹 이 소설의 서두에 응칠의 시각으로 가을날의 정경을 유쾌하고 발랄하며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해서 사실주의라고 볼 수 없다라고 한다는 것은 작품의 오해석이라 생각한다. 작가가 주도한 바는 당대 농촌현실의 비참함에도 응칠이가 여유가 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는 위에서도 설명한 아이러니적 기법이 녹아있다고 할 수 있다. 김유정은 즉, 당대 농민을 주인공으로 세워 농촌의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객관적이며 사실적으로 묘사했다고 할 수 있다. 신동욱이 김유정을 「사실주의의 정통적 작가」라고 한것과 맥락이 상통한다.
3) 한계
춘원 이광수「흙」
김유정 「만무방」
농민운동의 실질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함.
문학의 내용성을 중시.
이광수의 「흙」은 최초의 농촌계몽소설임을 생각하면 문학사적으로의 의의는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홍효민은 『흙』이 “춘원이 의도하는 바 귀농운동을 이렇게 하였으면 어떨까 하는 문제를 제시”한 것 송효민.「귀농운동의 관념화」(『인문평론』, 1941. 1)
이라고 규정하며 이 작품을 『고향』과 비교한다. 즉 홍효민은 “두 작가가 가진 바 이데올로기에서 오는 차이”로 인해 『흙』은 “조선의 현실을 전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논한다. 김동인 역시『흙』의 농민문학으로서의 한계를 말한다. 즉 김동인은 『흙』의 등장인물과 구성을 자세히 분석하거나 ‘살여울’을 ‘달여울’로 표기하는 일과 같은 작가의 혼동을 지적하면서, “도회인이 책상머리에 앉아서 상상으로 생각하는 조선 농촌의 고민과 현실과의 새에는 상당한 어긋남” 김동인.『춘원연구』, 신구문화사, 1956
에 있을 것이라고 쓴다. 즉, 당시 농촌에 뛰어들어 현실파악을 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유정의 만무방에서는 다른 이유로 한계점을 지적하는데, 주된 내용이 바로 현실과 문학의 연계성이다. 그가 궁핍한 민중의 삶과 당대 농촌의 현실인식에 있어서는 뛰어남을 부인 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현실인식과 세계관이 문학세계와 동 떨어 질수는 없음을 생각하면 당대 농촌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느냐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삼엄한 검열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방향 제시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결국 그로 인해 작가의 현실인식이 약화된 것처럼 보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민중을 ‘만무방’같이 희화화함으로써 생기는 민중 생활의 진실성과 전체성이 훼손되었다는 평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3. 맺음말
지금까지 본문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농민소설 = 농촌소설은 아니다. 농민소설은 농촌소설의 범주에 속하며, 농촌소설에는 농촌을 제재로 하기는 했지만 주인공이 농민이 아니거나 농민의 일상과 의식의 생활을 그려내지 않은 농촌제재소설과 농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생활상과 의식을 주요 제재로 한 농민소설이 있다.
1930년대에 초기 프로 문학적 농민소설을 시작으로 이념적 농민소설과 사실적 농민소설이 대두되었으며, 이념적 농민소설에는 프로문학적 농민소설과 민족주의적 농민소설이, 그리고 사실적 농민소설에는 방관주의적 농민소설과 실천적 농민소설이 있음을 알아보았다.
본문에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본 민족주의적 농민소설은 1930년대 중반의 귀농 인텔리의 소영웅적 농촌 운동을 그린 농민소설로, 현실 저항의 자세는 약했으나, 기법면에서 프로 문학적 농민소설보다 우수한 문학이었다.
또, 방관적 농민소설은 1935년 전후에 나온 순수한 리얼리즘 작가들에 의하여 쓰인 농민소설로서, 농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자각하여 이에 분노하는 농민상을 부각시킨, 한 단계 진보된 농민소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