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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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 문

제 1부 노동의 개념

노동력의 사용가치에 대한 비판

노동의 구체성: 질적인 것과 양적인 것의 ‘변증법’

인식론 Ⅰ: 맑스주의의 개념들 곁에서

정치경제학 비판은 실질적으로 끝났다.

제2부 맑스주의의 인류학과 자연의 지배

계몽주의의 도덕철학

리쿠르구스와 거세

유태 ․ 그리스도 절충교적 반자연

인식론 Ⅱ: 맑스주의적 비판의 구조적 한계

제3부 역사적 유물론과 원시사회

구조적 인과성과 원시인

잉여와 반생산

주술과 노동

인식론 Ⅲ: 유물론과 자민족 중심주의

본문내용

자체는 비생산과, 경우에 따라서는, 파괴, 인간들 간의 끊임없는 ‘무제한적’ 상호성의 과정, 그리고 그와 반대로 교환재의 엄격한 제한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것은 무제한적인 상품생산과 계약에 의한 교환의 불연속적 추상작용에 근거를 둔 서구의 경제와 정반대이다. 원시적 교환 속에서, 생산은 어디에서도 목적이나 수단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맑스주의 인류학은 코드는 “고대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 대상들이 어째서 주어지는 대상으로서 자신의 지배적인 특성에서 점점 더 벗어나게 되었는지를, 그리고 그것들이 어째서 전통적인 양상을 보존하면서 상품의 지배적인 양식으로 전문화되었는지를 보다 잘 이해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벗어난’이라는 용어는 이 대상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낡은 경제학으로 덮여있는 것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오직 생산하려고만 하는 이 모든 범주화의 근본적이고 이론적인 인종차별을 지칭한다. 이것은 모든 대상들과 인간들에게 생산의 세례이며, 풍요의 무상성 속에서 상실된 자연과 재산에게는, 노동과 가치의 세례이다. 그리고 결정적 심급도 결정도 경제적 합리성조차도 모르는 이 모든 교환들에게는, 경제와 생산양식과 결정적 심급의 세례이다. 유물론의 선교사들은 이런 것을 겪어왔다.
주술과 노동
여러 심급들 속에서, 이와 동일한 맹목적 결정론은 ‘주술’에 대해서도 동일한 몰이해로 치닫는다. “원시인에게는, 노동은 주술과 기술적 지식의 분할할 수 없는 내적 통일성으로서 경험되고 간주된다.” “자신의 주술행위에 의해, 인간은 자연질서의 필연적인 인과관계의 사슬 속에 자리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주술의 이러한 통속적인 재기술은, 때로는 노동에 의해 자연을 변형시키고, 때로는 기호들에 의해 자연에 영향을 미치면서, 이 자연으로 하여금 생산을 강요하는 원시인의 모습을 통해 그리고 ‘유추를 통해’ 구분되고 재검토된 자연과 사회에 대한 편견에 의해, 자연과 인간에 대한 편견에 의해 항상 지배된다. 여기서, 서구의 가장 나쁜 심리상태, 즉 우리 자신의 합리적인 실용주의와 미신적인 고정관념의 혼합이 투영된다.
원시인은 반증여나 희생을 통해 ‘마음을 달래지’ 않고서는 나무를 배지 않고 밭고랑도 내지 않는다. 그것은 항상 신들을 통한 상징적 교환의 실현이다. 최종 생산물은 결코 목표가 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기술적 수단을 통해 집단에 유용한 가치를 산출하려는 행위도 없으며, 또한 주술적 수단을 통해 같은 목표를 지향하는 행위도 없다. 풍요의 본질은 교환 속에 있다. 희소성은 오직 재산 축적에 대한 우리의 직선적인 전망 속에서만 존재한다. 여기서는 증여와 반증여의 순환이 중단되지 않는 그리고 원시적인 활동을 추상적인 주관성이나 객관적인 변형으로 규정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일이다.
- 우리가 주술을 자연의 힘의 직접적이고 객관적인 획득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주술은 우리의 합리적인 노동 개념에 의해 부정적으로 규정된 개념일 따름이다.
인식론 Ⅲ: 유물론과 자민족 중심주의
1. 우리 시대는 노동(노동력)의 추상적 보편성을 낳는 동시에, 노동 개념의 보편적 추상화와 모든 사회에 대한 이 개념의 타당성의 소급적인 착각을 낳는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며, 제한적인 타당성은 분석적 개념의 타당성이며, 추상적이고 비제한적인 타당성은 이데올로기적 개념의 타당성이다. 이 구분은 노동에 관계될 뿐만 아니라, 역사적 유물론의 모든 개념체계(생산, 생산력, 생산양식, 하부구조)에도 관계된다. 이 모든 개념들은 실제로 역사적 산물들이다. 그것들을 산출한 영역을 넘어서서, 그것들은 자신의 추상화 자체의 상부에서 말하는 서구 문화의 메타언어일 따름이다.
2. 자본주의 경제는 중세사회, 고대사회, 원시사회를 소급적으로 규명하는가? 아니다. 결정적 심급으로서의 경제와 생산으로부터, 다른 유형의 조직들은 그들의 특수성 속에서나, 우리가 원시사회의 경우에서 보았던 것처럼 생산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 속에서가 아니라, 이 모델과 관련하여 규명될 것이다. 주술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과 상징적인 것은 경제의 범위 밖으로 밀려날 것이다. 그리고 상징적 조직들이 원시적 교환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제구조의 출현과 더불어 집단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을 초월적이고 사회적인 힘의 출현을 분명히 막고자 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심급에서의 경제에 의한 결정을 파악할 수 있도록, 모든 일은 이루어질 것이다. 모델들은 결코 그들의 외관을 벗어나지 않는다.
3.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이전의 사회들을 규명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정치경제학의 모델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의 모순들에 대한 분석이라는 것이다.
- 소위 역사적 발전의 제시는, 하나의 규칙으로서, 최근의 사회형태가 이전의 사회형태들 그 자체에 이르게 하는 단계로 간주한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 서구문화는 맨 먼저 그 자체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 위기의 효과는 그것이 보편 속에서 문화로서 역시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다른 문화들은 자기 모습의 흔적의 형태로 박물관에 들어가게 되었다. 서구문화는 자신의 모델에 따라 모든 다른 문화들을 ‘미학적으로 논하’고 재해석했지만, 이 ‘다른’ 문화들이 그것에 대해 내포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배제했다. 이 ‘비판적 문화’의 한계는 분명하다. 즉 그 자체에 대한 이 문화의 반성은 자신의 원칙들을 보편화하기에 이른다. 이 문화 자체의 모순들은 그것을 (자본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현대 서구사회의) 세계적인 제국주의에 이르게 한다.
유물론적 해석에는, ‘예술’을 ‘경제’로, ‘미적 바이러스’를 ‘생산과 생산양식의 바이러스’로 대체하는 것만이 존재한다. 어떤 것에 대해 말해졌던 것은 다른 것에 똑같이 적용된다. 서구사회의 모순들에 대한 분석은 결국 이전의 사회들에 대한 이해가 되지 못했다. 그것은 이 모순들을 그것들에게 전파함으로써만 성공을 거두었다.
- 이전의 사회들을 가장 ‘과학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역사적 유물론은 생산양식의 영향 아래서 그것들을 ‘순화한다’. 여기서 다시, 부르주아 사회에서 시작된 그것들의 인류학적 박물관 분류가 그 비판의 영향 아래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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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9.01
  • 저작시기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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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699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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