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초현실주의의 개념
Ⅲ. 초현실주의의 특징
Ⅳ. 초현실주의의 뿌리
Ⅴ. 초현실주의의 역사적 상황
Ⅵ. 초현실주의의 영향
Ⅶ. 페터바이스의 작품에 나타난 초현실주의적 요소
참고문헌
Ⅱ. 초현실주의의 개념
Ⅲ. 초현실주의의 특징
Ⅳ. 초현실주의의 뿌리
Ⅴ. 초현실주의의 역사적 상황
Ⅵ. 초현실주의의 영향
Ⅶ. 페터바이스의 작품에 나타난 초현실주의적 요소
참고문헌
본문내용
. 이것은 그가 사회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으로부터 벗어나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획득했음을 의미한다. 바이스는 이 극에서 스탈린에 의해 왜곡된 트로츠키 상을 수정하고 혁명으로부터 일탈한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적 반성을 시도한다. “그러므로 트로츠키는 그(바이스, 저자 주)에게 러시아 10월 혁명의 역사적 과정, 스탈린과 그 이후에까지 이르는 이 혁명의 정치적 결과 및 오류의 길을 반성하기 위한 촉매로서의 기능을 갖는다. 이로써 ‘노동의 평화로운 왕국’의 현상형식과 그 왕국의 실체를 구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그러므로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바이스의 거리두기가 곧 사회주의 이념의 ‘배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말년까지 바이스는 사회주의가 인간을 자유롭게 살도록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사회체제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다.
망명 중의 트로츠키 역시 상당 부분 역사적인 기록과 문서에 기초한 작품이다. 더욱이 바이스는 이 작품의 맨 뒤에 작품의 자료로 쓰인 참고자료들을 기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극은 허구적 요소를 완전히 포기하라는 이전의 요구를 이행하지 않는다. 그 예로 레닌과 트로츠키의 대화 중의 일부를 들 수 있다. 기록문학으로부터의 이런 일탈현상은 무엇보다도 바이스의 정치의식의 변화와 관련해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의 기록극에서 바이스가 현실의 한 상황을 모델로서 설정해 사회주의적인 관점에서 자본주의 사회질서를 비판하는 도식적인 흑백묘사에 만족했다면, 이제 그는 현실사회주의에서도 여전히 개인의 자유가 박탈당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도식적인 기록극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끊임없이 박해받고 추적당하는 망명생활을 하는 트로츠키가 자신의 모범으로 단테를 언급할 때, 그들과 마찬가지로 죽을 때까지 자신의 확고한 거점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 바이스와의 공통적인 면이 엿보인다. 초기 소설에서 바이스가 주로 이름 없이 “나”로 나타나는 인물을 통해 자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곤 했다면, 이제 그는 트로츠키라는 역사적 인물의 가면을 쓰고 간접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경향은 망명 중의 트로츠키 다음에 쓰여진 횔더린 Holderin까지 이어진다.
바이스는 관료주의화된 사회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가 억압받고 있으며, 이러한 측면을 이전의 기록극의 방식으로는 제대로 보여 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 이 때문에 그는 망명 중의 트로츠키에서 또 다시 초현실주의적인 기법을 사용한다. 이 극은 1940년 멕시코에 망명 중에 있는 트로츠키가 책상에서 원고를 읽다가 자신의 과거의 삶과 그것과 연관된 역사적인 상황들을 회상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모와의 이별에서 화자가 자신의 과거체험을 연대기적으로 기록하고 있다면, 이 작품에서는 순차적인 기록보다 자유로운 연상이 작품 형상화의 원칙을 이룬다. 이로써 트로츠키는 1900-1940년 사이에 경험한 일들을 반드시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회상한다. 더 나아가 회상의 내용 중에서도 1935/1936년의 모스크바 재판에 대한 회상은 실제 트로츠키가 경험한 것에 대한 회상이 아니라, 자신이 참석하지 않은 재판과정을 환상을 통해 떠올리는 장면으로 이루어진다. 이와 같이 꿈처럼 흘러가는 자유연상적 회상이나 환상 등의 초현실주의적 기법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간에 벌어지는 예술에 대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비록 트로츠키가 레닌과 사회주의 혁명의 이념을 공유하더라도 예술에 관한 그들의 입장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취리히에서 레닌과 트로츠키는 다다이스트들과 예술에 관한 논쟁을 벌인다. 레닌이 다다이스트들의 예술관을 거부하며 사실주의 문학의 노선만을 고집하는 반면, 트로츠키는 그들의 예술이 갖는 부분적 장점을 인식한다. 다다이스트들이 과학적 이성을 비판하자 트로츠키 역시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전에 우리는 세계가 의식, 비판적 사고에 의해서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소. 하지만 의식은 전체 역사동안 사실의 뒤에서 바둥 거리며 뒷걸음쳐 왔지요. 그러한 정도까지는 당신들의 말이 옳습니다.” 그러나 다다이스트들이 비합리적인 것만을 통해 새로운 예술을 만들려 할 때, 트로츠키는 이런 견해에 담긴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비판하며 예술이 세계를 변혁하는데 기여해야 함을 강조한다.
체험자아로 회상에 등장하는 트로츠키는 레닌과 여러 차례 논쟁을 벌이며, 이들 서로가 이런 생산적 논쟁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수정, 발전시키기 때문에 관객은 체험자아로서의 트로츠키의 견해에 대해 부분적으로 거리를 두어야 한다. 하지만 회상하는 자아로서 트로츠키는 이미 정치적, 예술적 논쟁을 통해 자신의 이념을 발전시킨 상황에 있으며, 이로써 회상하는 시점에서 트로츠키가 대변하는 예술적, 정치적 입장은 작품의 최고심급인 작가의 입장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바이스는 이 극에서 역시 사회주의 이념을 고수하지만, 인간의 이성과 비판적 인식이 성숙치 못한 시기에 문학이 초현실주의적인 요소를 통해 사회변혁에 기여할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바이스가 사회주의 이념을 지지하기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개인의 자유와 해방에 관한 이상이 그가 사회주의 이념으로 전환한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음이 이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바이스가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이유는 바로 이 체제만이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도로 보장해 줄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이스의 전 문학작품에서 -비록 도식적인 기록극의 경우는 제외하더라도- 개인의 자유란 문제는 일관적으로 중심주제로 형상화되며, 현실사회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으로 나타날 때 개인의 억압받는 꿈과 무의식적 욕망은 역으로 이런 사회를 비판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참고문헌
○ 김홍태, 다다와 초현실 미술에 나타난 원시적 성향에 관한 연구
○ 미쉘 사누이예, 임진수 옮김(1992), 다다, 열화당
○ 신현숙(1992), 초현실주의, 서울 : 동아출판사
○ 피오나 브랜들리, 초현실주의, 열화당
○ 한스 리히터, 김채현 역(1985), 다다 예술과 반 예술, 서울 : 미진사
○ Gale·Matthew(2001), 다다와 초현실주의, 한길아트
망명 중의 트로츠키 역시 상당 부분 역사적인 기록과 문서에 기초한 작품이다. 더욱이 바이스는 이 작품의 맨 뒤에 작품의 자료로 쓰인 참고자료들을 기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극은 허구적 요소를 완전히 포기하라는 이전의 요구를 이행하지 않는다. 그 예로 레닌과 트로츠키의 대화 중의 일부를 들 수 있다. 기록문학으로부터의 이런 일탈현상은 무엇보다도 바이스의 정치의식의 변화와 관련해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의 기록극에서 바이스가 현실의 한 상황을 모델로서 설정해 사회주의적인 관점에서 자본주의 사회질서를 비판하는 도식적인 흑백묘사에 만족했다면, 이제 그는 현실사회주의에서도 여전히 개인의 자유가 박탈당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도식적인 기록극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끊임없이 박해받고 추적당하는 망명생활을 하는 트로츠키가 자신의 모범으로 단테를 언급할 때, 그들과 마찬가지로 죽을 때까지 자신의 확고한 거점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 바이스와의 공통적인 면이 엿보인다. 초기 소설에서 바이스가 주로 이름 없이 “나”로 나타나는 인물을 통해 자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곤 했다면, 이제 그는 트로츠키라는 역사적 인물의 가면을 쓰고 간접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경향은 망명 중의 트로츠키 다음에 쓰여진 횔더린 Holderin까지 이어진다.
바이스는 관료주의화된 사회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가 억압받고 있으며, 이러한 측면을 이전의 기록극의 방식으로는 제대로 보여 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 이 때문에 그는 망명 중의 트로츠키에서 또 다시 초현실주의적인 기법을 사용한다. 이 극은 1940년 멕시코에 망명 중에 있는 트로츠키가 책상에서 원고를 읽다가 자신의 과거의 삶과 그것과 연관된 역사적인 상황들을 회상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모와의 이별에서 화자가 자신의 과거체험을 연대기적으로 기록하고 있다면, 이 작품에서는 순차적인 기록보다 자유로운 연상이 작품 형상화의 원칙을 이룬다. 이로써 트로츠키는 1900-1940년 사이에 경험한 일들을 반드시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회상한다. 더 나아가 회상의 내용 중에서도 1935/1936년의 모스크바 재판에 대한 회상은 실제 트로츠키가 경험한 것에 대한 회상이 아니라, 자신이 참석하지 않은 재판과정을 환상을 통해 떠올리는 장면으로 이루어진다. 이와 같이 꿈처럼 흘러가는 자유연상적 회상이나 환상 등의 초현실주의적 기법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간에 벌어지는 예술에 대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비록 트로츠키가 레닌과 사회주의 혁명의 이념을 공유하더라도 예술에 관한 그들의 입장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취리히에서 레닌과 트로츠키는 다다이스트들과 예술에 관한 논쟁을 벌인다. 레닌이 다다이스트들의 예술관을 거부하며 사실주의 문학의 노선만을 고집하는 반면, 트로츠키는 그들의 예술이 갖는 부분적 장점을 인식한다. 다다이스트들이 과학적 이성을 비판하자 트로츠키 역시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전에 우리는 세계가 의식, 비판적 사고에 의해서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소. 하지만 의식은 전체 역사동안 사실의 뒤에서 바둥 거리며 뒷걸음쳐 왔지요. 그러한 정도까지는 당신들의 말이 옳습니다.” 그러나 다다이스트들이 비합리적인 것만을 통해 새로운 예술을 만들려 할 때, 트로츠키는 이런 견해에 담긴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비판하며 예술이 세계를 변혁하는데 기여해야 함을 강조한다.
체험자아로 회상에 등장하는 트로츠키는 레닌과 여러 차례 논쟁을 벌이며, 이들 서로가 이런 생산적 논쟁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수정, 발전시키기 때문에 관객은 체험자아로서의 트로츠키의 견해에 대해 부분적으로 거리를 두어야 한다. 하지만 회상하는 자아로서 트로츠키는 이미 정치적, 예술적 논쟁을 통해 자신의 이념을 발전시킨 상황에 있으며, 이로써 회상하는 시점에서 트로츠키가 대변하는 예술적, 정치적 입장은 작품의 최고심급인 작가의 입장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바이스는 이 극에서 역시 사회주의 이념을 고수하지만, 인간의 이성과 비판적 인식이 성숙치 못한 시기에 문학이 초현실주의적인 요소를 통해 사회변혁에 기여할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바이스가 사회주의 이념을 지지하기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개인의 자유와 해방에 관한 이상이 그가 사회주의 이념으로 전환한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음이 이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바이스가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이유는 바로 이 체제만이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도로 보장해 줄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이스의 전 문학작품에서 -비록 도식적인 기록극의 경우는 제외하더라도- 개인의 자유란 문제는 일관적으로 중심주제로 형상화되며, 현실사회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으로 나타날 때 개인의 억압받는 꿈과 무의식적 욕망은 역으로 이런 사회를 비판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참고문헌
○ 김홍태, 다다와 초현실 미술에 나타난 원시적 성향에 관한 연구
○ 미쉘 사누이예, 임진수 옮김(1992), 다다, 열화당
○ 신현숙(1992), 초현실주의, 서울 : 동아출판사
○ 피오나 브랜들리, 초현실주의, 열화당
○ 한스 리히터, 김채현 역(1985), 다다 예술과 반 예술, 서울 : 미진사
○ Gale·Matthew(2001), 다다와 초현실주의, 한길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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