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과 유럽의 사회정신사적 변화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도시들의 대응 및 농촌의 변화
Ⅲ. 흑사병과 유대인
Ⅳ. 성직자들의 처신과 교회의 위상 추락
 1. 도피
 2. 고삐풀린 탐욕
 3. 일탈행위와 범죄
Ⅴ. 죽음에 대한 인식변화
Ⅵ. 결론

본문내용

다. 그 당시 의학계에서는 여러 치료법 및 예방책을 연구해 제시했고, 인구가 밀집해있던 탓에 피해가 컸던 여러 도시들 또한 공중보건기구를 만드는 등 흑사병의 전염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중세인들은 흑사병이 신의 노여움이라고 여겼으므로 그들의 근본적인 치료는 신앙심을 높이고 성경에 충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의학적인 처방이나 깊은 종교심도 이들을 보호해주지 못했다. 따라서 당시 사람들은 외부적 권위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진면목을 확인 당하게 되었다. 죽은 자를 담당하는 성직자,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등 모든 사람들은 이제까지 자신이 가졌던 종교적 신념과 흑사병의 현실 사이에서 고민해야했다. 죽은 자에게 미사를 치러주고 아픈 자를 치료해야 하는 것은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그들이 지켜야 할 직업적 의무였지만 흑사병에 전염되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그것을 지키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의 의무를 외면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성직자들은 아픈 자를 돌보고 사목활동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교구를 떠나 도피를 일삼거나 흑사병의 피해로 인해 성직자들의 수가 부족해진 틈을 타 사리사욕을 채우는 등 세속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세속 재판에 회부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교회의 행태로 인해 그간 교회를 넘나 보지 못할 성역으로 받들던 중세의 질서는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교회의 힘이 약화되면서 그동안 교회가 맡았던 사회적 역할은 세속화 되어 평범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자를 돌보고 죽은 자의 장례를 치러주는 등 사제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하고, 기존의 신을 섬기기만 하던 상황에서 신의 존재를 직접 체험하려는 시도를 하는 등 종교운동 또한 일어났다. 이처럼 흑사병은 중세사회의 기반을 흔듦으로써 변화를 촉구했다.
또한 흑사병의 원인을 신의 노여움으로 여기던 중세인들은 깊은 신앙심으로도 그 전염의 확산을 막아낼 수 없자 신의 분노를 풀 희생양을 찾았다. 그 대상이 된 것이 바로 유대인이었다. 흑사병은 그 이전의 일시적이고 우발적이었던 반 유대감정을 더욱 조직적인 것으로 변화시켰다. 중세인들은 현실적 목적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여 유대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신앙하는 습관은 변하지 않았으나 신앙하는 방법은 변화했고, 죽음이라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으나 중세인들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 방법은 변화했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다 똑같은 조건임을 의식하기 시작했고 죽음은 죽음이고 의식은 의식일 뿐이라는 사고를 갖기 시작했다.
흑사병 이후에도 유럽은 기독교 문화라는 사실에서 볼 때 그 근본은 변화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으나, 흑사병 시기를 거치면서 유럽의 사회정신사적인 측면은 큰 변화를 겪었다고 볼 수 있다. 흑사병으로 인해 생긴 여러 의식의 변화는 유럽의 현실에 적용되어 사회정신사적인 변화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변화로도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흑사병은 중세인들이 그 이전의 정신을 변화시켜 철저히 현실화, 개인화하여 살아가게끔 만들었고 인간이 역사의 중심으로 등장하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키워드

흑사병,   유럽,   사회적,   변화,   정신적
  • 가격2,000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11.10.02
  • 저작시기2011.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05544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