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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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박제상은 누구인가?

2. 5세기 초의 신라의 볼모에 관한 삼국사기의 기록

3. 박제상의 미사흔 구출과정에 대한 기록

본문내용

사금이 아니라 파사매금이라 하고 있는데 유리 이사금의 둘째 아들인 파사 이사금과 음은 같으나 한자는 다른 것이다. 이를 두고 시대적으로 전혀 맞지 않아서 이 기사는 위사이니 믿지 말라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이렇게 국력을 기울여 전쟁을 하고 인질도 잡았는데 왕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서기 기사의 내용 중에 미질허지벌한이 신라왕의 아우인데 인질로 오래 가 있다고 해서 그 처자를 관노로 했다고 하는 말은 사리에 전혀 맞지 않다고 볼수 있다. 실제로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보며 따라서 이런 말을 한다고 그걸 믿고 왜왕이 비록 습진언이라는 인물을 딸려 붙였다고는 했으나 인질을 가보라고 했겠는가 하는 점이다. 실제 미사흔이 가서 보더라도 인질은 신라 측으로 들어가고 습진언은 신라에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될 수도 것이다. 부자연스럽게 꾸몄다는 것이 역력히 드러난다고 주장해볼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서로 다른 나라의 각각의 사료에 등장한다는 점과 서기의 사료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우리의 연대만을 가지고 비판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일본서기 뿐만 아니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박제상을 설화적인 인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삼국유사에서 김제상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당대가 박이나 김이라는 성이 사용되기 이전이라는 것으로 이들의 성은 후대에 부회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박제상이 혁거세의 후예로 파사 이사금의 5세손이며 조부는 아도갈문황이고 아버지는 물품 파진찬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의 조부인 박아도는 일성이사금에 갈문왕에 책봉된 것으로 나와 있어 늦어도 일성이사금대 인물로 박제상의 시기와 지나치게 차이가 난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인 관등이 파진찬으로 되어 있으나 박제상의 관등이 내마라서 그를 진골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서기의 미질허지벌한과 관련 있는 파사매금과 그 미질허질벌한 구출의 주도자인 파사 이사금의 5세손인 박제상은 일정한 혈연적 관계로 연결 지을 일말의 가능성을 반영한다. 이곳에 왜 파사이사금이 등장하는지는 알기 어려우나 그의 출신이 어느 정도 만들어 졌다고 볼 수 있으며 고려와 조선을 지나며 유교의 유입과 함께 충의 화신으로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다.
※참고 문헌
박제상 (朴堤上)과 5 세기 초 신라의 정치 동향 주보돈
『三國史記』ㆍ『三國遺事』 所載 '朴堤上 이야기'의 比較 考察
박제상 이야기의 수용 양상과 그 의미 엄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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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10.07
  • 저작시기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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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06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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