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1
[본론1] 노동과 소외
[1] 소외란 무엇인가? 3
[2] 선차 그림에서 나타난 소외된 노동의 특징 3
[3] 소외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7
[4] 자본주의에서의 노동 소외 9
[5] 개신교의 노동 윤리 10
[6] 소외된 노동의 결과들 10
[본론2] 낙원과 저주 사이에서
[1] 노동의 신학적 관점 12
[2] 마르크스 노동관 의의 12
[3] 죄 13
[4] 소외 14
[5] 설화에 비추어 본 노동 14
[6] 부르주아적 세계관과 해방운동 17
[7] 해방적 노동신학의 세 가지 차원을 통한 하나님의 형상 19
[본론3] 자기표현으로서의 노동
[1] 노동은 곧 삶이다 20
[2] 노동자와 하나님과의 관계 22
[3] 소외된 노동과 본질적인 의미의 노동 23
[4] 노동의 보람과 장애 24
[5] 분업의 폐단 24
[6] 진정한 의미의 노동 - 수단이자 목적으로서의 노동 26
[7] 노동과 신앙 - 노동의 역할론에 대한 신학적 고찰 27
[결론] 29
[본론1] 노동과 소외
[1] 소외란 무엇인가? 3
[2] 선차 그림에서 나타난 소외된 노동의 특징 3
[3] 소외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7
[4] 자본주의에서의 노동 소외 9
[5] 개신교의 노동 윤리 10
[6] 소외된 노동의 결과들 10
[본론2] 낙원과 저주 사이에서
[1] 노동의 신학적 관점 12
[2] 마르크스 노동관 의의 12
[3] 죄 13
[4] 소외 14
[5] 설화에 비추어 본 노동 14
[6] 부르주아적 세계관과 해방운동 17
[7] 해방적 노동신학의 세 가지 차원을 통한 하나님의 형상 19
[본론3] 자기표현으로서의 노동
[1] 노동은 곧 삶이다 20
[2] 노동자와 하나님과의 관계 22
[3] 소외된 노동과 본질적인 의미의 노동 23
[4] 노동의 보람과 장애 24
[5] 분업의 폐단 24
[6] 진정한 의미의 노동 - 수단이자 목적으로서의 노동 26
[7] 노동과 신앙 - 노동의 역할론에 대한 신학적 고찰 27
[결론] 29
본문내용
증명한 것이다.
Marx는 사회의 발전양상을 생산양식과 생산능력에 따라 5단계로 설명했다. 그렇지만 이 이론은 초월적으로 발휘되는 인격적인 힘과, 초월하면서 내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간과했다는 것이 맹점이다. 교황회칙은‘인간은 이 세상 특정 어느 곳에 세워져서 이 땅을 자신에게 복종하게 되어 있고, 따라서 인간은 노동을 하도록 부름받았다.’라고 밝히고 있는데, 따라서 노동자들 또한 창조자이며 그들의 인간성은 바로 노동을 통해 실현된다는 것이다. 노동 속에서 인간의 본질이 밝히 드러나므로 노동 중에 인간은 자아정체성에 대해 발견하고, 자신과 타인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되며, 자신과 사회의 미래를 위한 기초작업도 일어난다.
교황회칙은 노동의 주관적 객관적 의미에 대해서도 밝히고 있다. 먼저 객관적인 의미는 노동의 생산물과 관련되는데, 단순히 생산된 상품뿐만 아니라 생산기계와 기술까지도 포함한다. 즉, 노동의 객관적인 의미에 대한 고찰에 대한 결론은 인간에게 우호적이거나 적대적이라는 말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의 주관적 의미로는 먼저 노동이 노동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살핀다. 교황은‘노동의 복음’을 언급하며 예수님이 생애의 대부분을 목수 일로 보냈다고 밝혔다. 이것은 기존의 지배적인 사고를 뒤엎는 것으로,‘노동은 저주’라는 선입견을 깨뜨렸다. 또한‘노동의 복음’에는 노동하는 인간의 새로운 가치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 노동 평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노동이 인격을 성장시킨다.’라는 것이다.
이렇게 노동의 주관적 객관적 의미를 구별하는 것은 인간의 노동과 관련해서 생산물보다는 노동의 역할론에 대한 관심이 우선한다는 데 근거한다. 따라서 노동자가 자기의 노동이 자기에게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인식할 수 있는 인격의 책임성과 자기표현이 생산물보다 중요하고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구별과 분석을 통해 자본에 대한 노동우위의 원칙을 도출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그저 객체로 취급되고, 자본이 인간보다 우위를 지닌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동자 자신도 자신을 단순한 생산과정의 객체로 인식하고, 주체성 상실을 경험하면서 노동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거나 인격을 완성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그렇지만 주관적인 의미의 노동은 우리 인간의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또한 그리스도교 신앙은 인간이 하나님의 속성으로 인해 갖게 된 창조성에서 발생하는 기본적인 욕구에 대해 중립적이거나 구경꾼의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더 자기의 노동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데에 더 힘써야 할 것이다.
[ 결 론 ]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노동은 임노동. 즉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기 위한 하나의 체제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노동자와 사랑의 관계를 더욱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서 생겨난 ‘소외’ 라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소외란 인간과 인간, 인간과 물질과의 관계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적대적인 것을 의미한다.
월퍼 하프당크의 판화 ‘선차’에서 보았듯이 일을 하는 노동자는 오직 나 자신이며 이웃을 찾아볼 수 없고 생산물의 결여, 반복된 업무로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하지 못한다. 이러한 모습이 현대사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소외된 노동자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헤겔을 『정신현상학』에서 노동소외의 원인이 주-종 관계에서 오는 것이라 기술하였고, 주인의 소유인 종은 정체성을 상실하므로 앞에서 언급한 소외된 인간의 특징을 규정지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관계에서 오히려 주인은 자아실현의 능력을 상실하고, 노동자는 업무능력을 발전시키는 변증법적인 역전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한편 맑스는 노동 소외의 원인을 산업화된 자본주의체제의 초기단계에 있어서 노예화된 노동 상황에 대한 관찰을 토대로 했다.
19세기의 산업혁명 이후 노동의 잘못된 이해와 교육은 3가지 관점에서 드러난다.
첫째, 신학적 관점에서 노동이란 노동하는 인간이 그의 노동과 노동자 동료들과 인류의 역사적 과업에서 분리된 상황을 의미한다.
둘째, 도덕주의적 관점에서의 노동은 나태나 열심 또는 관심의 결여, 불충분한 일처리가 노동자가 범하는 ‘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셋째, 실존주의적 관점에서의 노동은 창조에 협력해야 할 인간의 본분을 그르치는 타율적인 강제 노동이 '죄‘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경제의식과 관련하여 나의 재산은 내 것이 아니라 나의 일을 주신 하나님에게서 왔으므로 노동은 하나님과 인간은 상호적으로 의사소통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창조과정에 대한 살아있는 상징이 된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노동을 자신의 죄의 결과로만 생각한다면 이는 “노동은 고생이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와 직결되며 그 진정한 참 뜻을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잘못된 노동의 이해와 교육을 괴로움, 지겨움, 우둔함과 연결시키는 대신에 기쁨과 연결시키도록 교육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도적이고 해방적인 노동신학을 이해해야 한다. 해방신학의 세 가지 기초는 노동을 통한 자기표현, 사회적 관계 그리고 자연과의 화해이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태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노동과 사랑이라는 유사 과정을 통해 존재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노동은 그 자체 안에 목적을 지니고 있으며, 노동은 다른 어떤 것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화폐만이 노동의 진정한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봉사 단체나 무임금으로 기업에서 일하는 사원들의 땀 한 방울 값진 노동은 자신의 삶에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다. 톱니바퀴는 서로 맞물려야 돌아가듯이 가속화되는 현대사회에서 노동은 능률향상과 자기 발전을 위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더불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이라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며 이는 곧 내재적이고 동시에 초월적인 하나님의 역사 개입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현대사회에서 제시되는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이 우리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Marx는 사회의 발전양상을 생산양식과 생산능력에 따라 5단계로 설명했다. 그렇지만 이 이론은 초월적으로 발휘되는 인격적인 힘과, 초월하면서 내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간과했다는 것이 맹점이다. 교황회칙은‘인간은 이 세상 특정 어느 곳에 세워져서 이 땅을 자신에게 복종하게 되어 있고, 따라서 인간은 노동을 하도록 부름받았다.’라고 밝히고 있는데, 따라서 노동자들 또한 창조자이며 그들의 인간성은 바로 노동을 통해 실현된다는 것이다. 노동 속에서 인간의 본질이 밝히 드러나므로 노동 중에 인간은 자아정체성에 대해 발견하고, 자신과 타인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되며, 자신과 사회의 미래를 위한 기초작업도 일어난다.
교황회칙은 노동의 주관적 객관적 의미에 대해서도 밝히고 있다. 먼저 객관적인 의미는 노동의 생산물과 관련되는데, 단순히 생산된 상품뿐만 아니라 생산기계와 기술까지도 포함한다. 즉, 노동의 객관적인 의미에 대한 고찰에 대한 결론은 인간에게 우호적이거나 적대적이라는 말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의 주관적 의미로는 먼저 노동이 노동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살핀다. 교황은‘노동의 복음’을 언급하며 예수님이 생애의 대부분을 목수 일로 보냈다고 밝혔다. 이것은 기존의 지배적인 사고를 뒤엎는 것으로,‘노동은 저주’라는 선입견을 깨뜨렸다. 또한‘노동의 복음’에는 노동하는 인간의 새로운 가치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 노동 평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노동이 인격을 성장시킨다.’라는 것이다.
이렇게 노동의 주관적 객관적 의미를 구별하는 것은 인간의 노동과 관련해서 생산물보다는 노동의 역할론에 대한 관심이 우선한다는 데 근거한다. 따라서 노동자가 자기의 노동이 자기에게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인식할 수 있는 인격의 책임성과 자기표현이 생산물보다 중요하고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구별과 분석을 통해 자본에 대한 노동우위의 원칙을 도출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그저 객체로 취급되고, 자본이 인간보다 우위를 지닌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동자 자신도 자신을 단순한 생산과정의 객체로 인식하고, 주체성 상실을 경험하면서 노동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거나 인격을 완성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그렇지만 주관적인 의미의 노동은 우리 인간의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또한 그리스도교 신앙은 인간이 하나님의 속성으로 인해 갖게 된 창조성에서 발생하는 기본적인 욕구에 대해 중립적이거나 구경꾼의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더 자기의 노동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데에 더 힘써야 할 것이다.
[ 결 론 ]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노동은 임노동. 즉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기 위한 하나의 체제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노동자와 사랑의 관계를 더욱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서 생겨난 ‘소외’ 라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소외란 인간과 인간, 인간과 물질과의 관계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적대적인 것을 의미한다.
월퍼 하프당크의 판화 ‘선차’에서 보았듯이 일을 하는 노동자는 오직 나 자신이며 이웃을 찾아볼 수 없고 생산물의 결여, 반복된 업무로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하지 못한다. 이러한 모습이 현대사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소외된 노동자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헤겔을 『정신현상학』에서 노동소외의 원인이 주-종 관계에서 오는 것이라 기술하였고, 주인의 소유인 종은 정체성을 상실하므로 앞에서 언급한 소외된 인간의 특징을 규정지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관계에서 오히려 주인은 자아실현의 능력을 상실하고, 노동자는 업무능력을 발전시키는 변증법적인 역전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한편 맑스는 노동 소외의 원인을 산업화된 자본주의체제의 초기단계에 있어서 노예화된 노동 상황에 대한 관찰을 토대로 했다.
19세기의 산업혁명 이후 노동의 잘못된 이해와 교육은 3가지 관점에서 드러난다.
첫째, 신학적 관점에서 노동이란 노동하는 인간이 그의 노동과 노동자 동료들과 인류의 역사적 과업에서 분리된 상황을 의미한다.
둘째, 도덕주의적 관점에서의 노동은 나태나 열심 또는 관심의 결여, 불충분한 일처리가 노동자가 범하는 ‘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셋째, 실존주의적 관점에서의 노동은 창조에 협력해야 할 인간의 본분을 그르치는 타율적인 강제 노동이 '죄‘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경제의식과 관련하여 나의 재산은 내 것이 아니라 나의 일을 주신 하나님에게서 왔으므로 노동은 하나님과 인간은 상호적으로 의사소통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창조과정에 대한 살아있는 상징이 된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노동을 자신의 죄의 결과로만 생각한다면 이는 “노동은 고생이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와 직결되며 그 진정한 참 뜻을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잘못된 노동의 이해와 교육을 괴로움, 지겨움, 우둔함과 연결시키는 대신에 기쁨과 연결시키도록 교육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도적이고 해방적인 노동신학을 이해해야 한다. 해방신학의 세 가지 기초는 노동을 통한 자기표현, 사회적 관계 그리고 자연과의 화해이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태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노동과 사랑이라는 유사 과정을 통해 존재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노동은 그 자체 안에 목적을 지니고 있으며, 노동은 다른 어떤 것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화폐만이 노동의 진정한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봉사 단체나 무임금으로 기업에서 일하는 사원들의 땀 한 방울 값진 노동은 자신의 삶에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다. 톱니바퀴는 서로 맞물려야 돌아가듯이 가속화되는 현대사회에서 노동은 능률향상과 자기 발전을 위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더불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이라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며 이는 곧 내재적이고 동시에 초월적인 하나님의 역사 개입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현대사회에서 제시되는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이 우리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