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위기 그리고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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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본론

1. 노동과 소외
1) 소외란 무엇인가?
2) 선차 그림에서 나타난 소외된 노동의 특징
3) 소외되지 않은 바람직한 노동
4) 소외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5) 노동의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
6) 개신교의 노동윤리

2. 낙원과 저주 사이에서
1) 그리스도교적 전통에서의 노동의 의미
2) 성서의 창조설화 에서의 노동의 의미
3) ‘원죄’ 와 ‘불복종’의 잘못된 해석
4) 산업혁명
5) 자유와 성인됨의 의미
6) 낙원설화와 저주설화의 조정
7) 타락에 대한 올바른 이해
8) 부르주아적 세계관과 해방운동

3. 자기표현으로서의 노동
1) 노동은 곧 삶이다.
2) 소외된 노동과 노동의 본질적인 의미
3) 현재 사회 노동의 문제점
4) 노동의 올바른 가치
5) 진정한 의미의 노동
6) 의미 있는 노동과 기독교

⋅결론

본문내용

었다는 사실도 노동기술의 발전을 시사하며 그만큼 삶의 경쟁도 치열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노아가 홍수 후에 농부가 되어 포도밭을 만들었다는 기사를 읽을 때 우리는 노동이 삶에 있어서 중대한 기초수단이 됨을 새삼 생각할 수 있다.
(3) 축복과 보람으로서의 노동 우리는 노아의 아들 함의 무지한 행위로 노아로부터 선고된, 가나안이 노예가 될 것이라는 저주는 노동과 저주가 연관된 중대한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가나안은 악한 조건에서 노동을 해야만하고 그 대가를 온전히 지불 받지 못하는 노예가 되어야 한다. 반면에 함과 야벳에게는 노동과 관계하여 축복을 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노아의 후손인 이삭은 야곱에게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창27:28)는 말로 축복하고 있다. 야곱이 결국은 거부가 되었고 그것은 야곱이 받은 노동과 관련한 축복의 성취였던 것이다.
2) 노동과 사회
(1) 하나님과 관계 회복에 있어서의 노동십계명의 제 4계명은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 할 것이나."(출20 : 9) 라고 말함으로 노동을 명하였고 그것은 안식일의 쉼과 직결되어 있다. 노동은 하나님의 명령이고 개인의 삶의 수단으로써의 가치인 동시에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회복하는 일에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안식일은 6일간의 노동의 완성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만 진정한 휴식으로써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휴식을 통하여 인간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6일간의 노동을 충실히 수행함으로 사회가 건전하여 지고, 경제적인 부를 누리는 축복을 성취하는 것이다. 요즈음은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어 정착화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주 5일근무제는 성경적 노동윤리에 입각하여 재고되어야 한다. 교회에서는 안식일 곧 일요일 휴뮤 또는 주 일일휴무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처럼 6일간의 노동 또한 강하게 주장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하루의 안식 못지않게 6일간의 노동도 중요한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풍조로 5일을 직장에서 근무하고 2일간의 휴가를 얻는다 하더라도 그 2일간을 노는 날로 생각한다면 매우 비성경적인 태도이다. 우리는 2일간의 휴가 중 하루는 하나님 앞에 안식을 누리는 것이 마땅하고 또 하루는 직장의 공무가 아닌 사적인 일 - 예컨데 가정과 친지들을 돌아보는 일, 개인적인 자기계발을 위하여 일하는 날, 또는 공부하는 날로 정하여야 할 것이다. 만일 그렇게 충실하게 실행한다면 여러 가지 면에서 성공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매주 이틀의 휴가를 노는 날로 생각하여 놀러 다닌다면 하나님 앞에서나 자기 자신의 미래에 관해서나 퇴보를 면치 못할 것이다.
(2) 노동과 사용자간의 윤리 그리고 휴식은 하나님과의 관계성 뿐 만이 아니라. 다음 주간의 노동을 위해서도 중대한 것이다. 6일간의 노동의 명령과 또 하루의 휴식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은 경제적인 축복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연중무휴로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상태는 그야말로 가나안의 저주 가운데 있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반드시 하나님이 정하신 노동의 규칙을 지켜야만 한다. 억울하게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사람들을 해방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또 세상이 하나님이 정하신 규칙을 지키도록 종용해야만 한다. "너희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는 성구는 십계명의 제4계명과 함께 기독교 사회에 있어서 경제적인 부를 이루게 하는 성실한 노동의 근거가 되고 있다. 심지어 전도자라 하더라도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은 정당한 것으로서 바울 사도는 강조하고 있다. 또한 위 성구는 노사문제에 있어서 반드시 노동의 대가로서만 임금을 지불 받을 수 있다는 원칙을 지지하기 위해 인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반면에 사회가 안고 있는 노동과 임금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성경의 교훈들에 착념해야 한다. 성경은 사회가 안고 있는 죄악과 모순으로 인하여 일부 계층의 사람들이 절대적인 빈곤으로 빠져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제도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 첫째가 희년제도이다.(레위기 25장10절 이하). 희년을 통하여 빚으로 인하여 종이 된 자나 과도한 빚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땅 문제를 해방시켜줄 것을 명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한 지파는 성역을 담당하고 나머지 11지파가 십일조를 냄으로써 한 지파의 노동의 대가를 감당하고 있다. 여기에서 성경은 십일조의 제도화를 꾀하고 있으며 오늘날 십일조헌금의 근거가 되고 있다. 이와 같은 원리는 성역으로서의 노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나아가 사회적인 공직 수행자들의 임금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임금의 과세는 성경적으로도 합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과도한 세금은 오히려 공무의 이름으로 많은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금의 적정선을 정하는 것과 세금이 부자들에게서 많이 거두어져야 하는 것도 성경에 합당하다. 그러나 국가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이 있다. 이런 면들을 교인들이 밝혀내고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신구약 성경의 많은 구절들이 노동력이 약한 과부들이나 가난한 자들을 힘써서 도울 것을 명령하고 있다. (예, 딤전 6 : 17-19; 신 15 : 7-11) 그리고 성경의 많은 부분들이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체 없이 적정하게 지불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예, 레 19:13; 말 3:5; 약5:1-6 )
2. 맺음말
이렇듯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노동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고, 삶의 기초 수단이 되며, 축복과 보람을 인간에게 선사한다. 도르테 죌레 역시 노동의 세 가지 의미로서 자기표현의 수단, 인간의 사회적 관계성 성취, 자연과의 화해를 들고 있다. 우리의 삶과 사회를 더욱 풍요롭고 가치 있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도달하기 위해서, 타락을 극복하고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런 노동의 가치를 알고 진정한 의미의 노동을 해야 할 것이다.

키워드

노동,   위기,   기독교
  • 가격3,000
  • 페이지수21페이지
  • 등록일2011.10.09
  • 저작시기2011.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07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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