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통섭의 이해
- 통섭이란 무엇인가?
- 왜 지금 통섭인가?
2. 동서양의 통섭을 꿈꾼 사람들
① 아리스토텔레스
② 프란시스 베이컨
③ 최한기
3. 21세기 학문의 흐름 = 통섭
- 인문학과 과학 중심으로
4. 통합학문으로의 길
- 지식시대에서 지성시대로
- 21세기 한국의 학문
Ⅲ. 결 론
Ⅳ. 참고문헌
Ⅱ. 본 론
1. 통섭의 이해
- 통섭이란 무엇인가?
- 왜 지금 통섭인가?
2. 동서양의 통섭을 꿈꾼 사람들
① 아리스토텔레스
② 프란시스 베이컨
③ 최한기
3. 21세기 학문의 흐름 = 통섭
- 인문학과 과학 중심으로
4. 통합학문으로의 길
- 지식시대에서 지성시대로
- 21세기 한국의 학문
Ⅲ. 결 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간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함으로 해서 총체적인 인간 실존의 위기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성찰적 의미와 더불어 변화를 추동하는 의미가 내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여 전일적 패러다임(holistic paradigm)으로 전환을 표징하는 용어로 통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통섭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주체는 일심(참본성, 영성)이다. 일심은 ‘지식’이 아니라 ‘앎’이며, 앎은 지성에서 일어난다. 앎은 곧 ‘봄’이며, 봄 또한 지성에서 일어난다. 지식은 단편적이고 관념이며 과거와 연결되어 있지만, 지성은 전체적이고 실재이며 ‘지금 이 곳’ 과 연결되어있다. 지성은 전일적이고 자족적이며 자각적이다. 지성은 자치, 자율, 소통과 조응하며, 이들 덕목은 지성시대를 구현하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
다시 돌아가 현대 물리학의 ‘의식’ 발견을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우주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의식’의 발견으로 그림자 삶이 아닌, 실재 삶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제 인류 의식의 차원 전환으로 인류 문명은 대전환의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 바야흐로 미망의 지식시대가 가고, 순수 현존의 지성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 21세기 한국의 학문
여태까지의 우리는 분과학문적 교육을 받아 왔다. 이런 우리에게 통섭은 요원해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음 세대가 어떤 형태로든 통섭적 교육을 받게 된다면 통섭의 시대는 훨씬 앞당겨질 것이다. 그래서 통섭노력이 가장 먼저 결실을 맺어야 할 곳은 교육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하버드대학이 새롭게 개정한 핵심교육과정은 충분히 주목받을 만하다. 1978년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하버드의 핵심교육과정 제도는 지식의 내용 자체보다 지식을 탐구하는 사고의 방법을 교육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번에 새롭게 개정되어 2009년부터 실시될 새 핵심교육과정은 각종 기초학문을 실제 삶의 문제들과 연계하여 통섭적 사고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아직도 문과 이과로 나눠 고등학교 교육을 실시하는 대한민국에서는 통섭은 불가능해 보인다. 통섭의 시대를 위한 근본적인 교육개혁이 필요하다.
최근 우리 사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50세를 전후 하여 평생 몸담을 줄 알았던 직장에서 쫓겨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껏해야 20년 남짓 벌어먹기 위해 마찬가지로 20년의 혹독한 입시 및 입사 지옥을 거쳤다는 예기인가?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이미 100세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은퇴 후 인생이 적어도 30년 이상이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고령사회에서 기껏해야 20년 남짓의 제1인생 직업만을 위해 준비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장차 어떤 직업들을 전전하게 될지도 모르면서 미리 그 모든 분야의 공부들을 다 해둘 수도 없는 일이다. 다 해둔다 해도 지식의 변화속도가 너무나 빨라 사실상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할 대안은 하나뿐이다. 언제 어떤 직업을 가지더라도 변신이 가능하도록 융통성과 응용력을 길러두는 것이다. 선진국의 명문대학들이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한결 같이 기초학문을 강조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21세기는 어떤 새로운 지식이라도 손쉽게 습득할 수 있는 이른바 ‘수학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즉 인문학과 자연 과학의 소양을 고루 갖춘 통섭형 인재를 원한다.
최재천 교수는 서울대라는 안락함을 버리고 학문의 통섭을 위하여 이화여대로 옮겨 2007년 3월에 이화여대 대학원에 우리나라 최초로 에코 과학부가 신설했다. 처음으로 통섭적인 교육기관이 만들어 진 것이다. 또한 ‘통섭원’이라는 곳을 만들어 여러 학문에 종하는 분들이 한데 모여 학문을 논하고 있다. 서로 대화하고 생각을 나누다 보면 저절로 학문의 불꽃이 튀는 법이다. 최재천 교수는 현대판 집현전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학문은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앞으로 통섭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교육환경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Ⅲ. 결 론
오늘날 학문과 지식은 인종적, 문화적, 정치적, 종교적 신념의 덫에 걸려 불균형한 사고와 행동들을 낳고 있다. 주로 물질세계의 영역만 다루다보니 의식세계를 도와시하여 실천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학문과 삶, 지식과 삶의 불화가 조장되면서 지식을 위한 지식이 판을 치는 지적 희론이 만연하고, 실종된 윤리의식이 빈자리에 사회악이 독버섯처럼 피어나고 있지만 그 어떤 유효한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작은 이치에는 밝지만 큰 이치에는 밝지만 큰 이치에는 어두운, 무절제한 지식 욕구와 무익한 지적 호기심은 인류애나 진리추구와 같은 보편적 가치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
통섭이란 용어의 매력은 바로 ‘하나됨’에 있다. ‘하나됨’이란 주관과 객관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처럼 개체와 공동체가 조화를 이룬 대아(大我)를 참자아라고 한다. 따라서 통섭은 지식차원의 언어적 기술이 아니라 지성차원의 영적 기술이다. ‘하나됨’은 온전한 앎, 즉 지성에서 일어난다. 지성은 실재이고, 전체성이며, 순수 현존인 참자아와 연결되어 있다. 지식을 넘어선 참 지식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 그 어떤 지식이나 학문도 삶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는 없다. 분리되는 순간, 존재 이유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참자아를 자각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소하는 길이다.
최재천 교수는 학계에 통섭의 개념을 소개하고 동료 학자들에게 진리의 궤적을 따라 과감히 그리고 자유롭게 학문의 국경을 넘나들 것을 요청했다. 진리의 행보는 학문의 경계 따위는 존중해주지도 않건만 우리는 스스로 쳐놓은 학문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잠가 들렀다 사라지는 진리의 옆모습 또는 뒷모습만 보고 학문을 한답시고 살고 있다. 이제 학문의 국경을 넘을 때 여권을 검사하는 거추장스러운 입국 절차를 생각할 때가 되었다. 진정한 의미의 범학문적 접근을 통해 지식의 큰 줄기를 잡아야한다.
Ⅳ. 참고문헌
1. 배움과 한국인의 삶 / 전상인, 정범모, 김형국 공편
2. 지식의 통섭: 학문의 경계를 넘다 / 최재천, 주일우 엮음
3. 통섭의 기술 / 최민자
4. 통섭(Consilience) / Edward Osborne Wilson
통섭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주체는 일심(참본성, 영성)이다. 일심은 ‘지식’이 아니라 ‘앎’이며, 앎은 지성에서 일어난다. 앎은 곧 ‘봄’이며, 봄 또한 지성에서 일어난다. 지식은 단편적이고 관념이며 과거와 연결되어 있지만, 지성은 전체적이고 실재이며 ‘지금 이 곳’ 과 연결되어있다. 지성은 전일적이고 자족적이며 자각적이다. 지성은 자치, 자율, 소통과 조응하며, 이들 덕목은 지성시대를 구현하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
다시 돌아가 현대 물리학의 ‘의식’ 발견을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우주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의식’의 발견으로 그림자 삶이 아닌, 실재 삶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제 인류 의식의 차원 전환으로 인류 문명은 대전환의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 바야흐로 미망의 지식시대가 가고, 순수 현존의 지성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 21세기 한국의 학문
여태까지의 우리는 분과학문적 교육을 받아 왔다. 이런 우리에게 통섭은 요원해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음 세대가 어떤 형태로든 통섭적 교육을 받게 된다면 통섭의 시대는 훨씬 앞당겨질 것이다. 그래서 통섭노력이 가장 먼저 결실을 맺어야 할 곳은 교육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하버드대학이 새롭게 개정한 핵심교육과정은 충분히 주목받을 만하다. 1978년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하버드의 핵심교육과정 제도는 지식의 내용 자체보다 지식을 탐구하는 사고의 방법을 교육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번에 새롭게 개정되어 2009년부터 실시될 새 핵심교육과정은 각종 기초학문을 실제 삶의 문제들과 연계하여 통섭적 사고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아직도 문과 이과로 나눠 고등학교 교육을 실시하는 대한민국에서는 통섭은 불가능해 보인다. 통섭의 시대를 위한 근본적인 교육개혁이 필요하다.
최근 우리 사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50세를 전후 하여 평생 몸담을 줄 알았던 직장에서 쫓겨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껏해야 20년 남짓 벌어먹기 위해 마찬가지로 20년의 혹독한 입시 및 입사 지옥을 거쳤다는 예기인가?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이미 100세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은퇴 후 인생이 적어도 30년 이상이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고령사회에서 기껏해야 20년 남짓의 제1인생 직업만을 위해 준비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장차 어떤 직업들을 전전하게 될지도 모르면서 미리 그 모든 분야의 공부들을 다 해둘 수도 없는 일이다. 다 해둔다 해도 지식의 변화속도가 너무나 빨라 사실상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할 대안은 하나뿐이다. 언제 어떤 직업을 가지더라도 변신이 가능하도록 융통성과 응용력을 길러두는 것이다. 선진국의 명문대학들이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한결 같이 기초학문을 강조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21세기는 어떤 새로운 지식이라도 손쉽게 습득할 수 있는 이른바 ‘수학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즉 인문학과 자연 과학의 소양을 고루 갖춘 통섭형 인재를 원한다.
최재천 교수는 서울대라는 안락함을 버리고 학문의 통섭을 위하여 이화여대로 옮겨 2007년 3월에 이화여대 대학원에 우리나라 최초로 에코 과학부가 신설했다. 처음으로 통섭적인 교육기관이 만들어 진 것이다. 또한 ‘통섭원’이라는 곳을 만들어 여러 학문에 종하는 분들이 한데 모여 학문을 논하고 있다. 서로 대화하고 생각을 나누다 보면 저절로 학문의 불꽃이 튀는 법이다. 최재천 교수는 현대판 집현전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학문은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앞으로 통섭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교육환경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Ⅲ. 결 론
오늘날 학문과 지식은 인종적, 문화적, 정치적, 종교적 신념의 덫에 걸려 불균형한 사고와 행동들을 낳고 있다. 주로 물질세계의 영역만 다루다보니 의식세계를 도와시하여 실천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학문과 삶, 지식과 삶의 불화가 조장되면서 지식을 위한 지식이 판을 치는 지적 희론이 만연하고, 실종된 윤리의식이 빈자리에 사회악이 독버섯처럼 피어나고 있지만 그 어떤 유효한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작은 이치에는 밝지만 큰 이치에는 밝지만 큰 이치에는 어두운, 무절제한 지식 욕구와 무익한 지적 호기심은 인류애나 진리추구와 같은 보편적 가치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
통섭이란 용어의 매력은 바로 ‘하나됨’에 있다. ‘하나됨’이란 주관과 객관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처럼 개체와 공동체가 조화를 이룬 대아(大我)를 참자아라고 한다. 따라서 통섭은 지식차원의 언어적 기술이 아니라 지성차원의 영적 기술이다. ‘하나됨’은 온전한 앎, 즉 지성에서 일어난다. 지성은 실재이고, 전체성이며, 순수 현존인 참자아와 연결되어 있다. 지식을 넘어선 참 지식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 그 어떤 지식이나 학문도 삶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는 없다. 분리되는 순간, 존재 이유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참자아를 자각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소하는 길이다.
최재천 교수는 학계에 통섭의 개념을 소개하고 동료 학자들에게 진리의 궤적을 따라 과감히 그리고 자유롭게 학문의 국경을 넘나들 것을 요청했다. 진리의 행보는 학문의 경계 따위는 존중해주지도 않건만 우리는 스스로 쳐놓은 학문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잠가 들렀다 사라지는 진리의 옆모습 또는 뒷모습만 보고 학문을 한답시고 살고 있다. 이제 학문의 국경을 넘을 때 여권을 검사하는 거추장스러운 입국 절차를 생각할 때가 되었다. 진정한 의미의 범학문적 접근을 통해 지식의 큰 줄기를 잡아야한다.
Ⅳ. 참고문헌
1. 배움과 한국인의 삶 / 전상인, 정범모, 김형국 공편
2. 지식의 통섭: 학문의 경계를 넘다 / 최재천, 주일우 엮음
3. 통섭의 기술 / 최민자
4. 통섭(Consilience) / Edward Osborne Wilson
추천자료
[국어교육] 국어지식영역 교육내용 분석
지식점프를 읽고서
지식재산 강국을 향한 과학기술과 교육정책의 개선방향
[지적재산권][지식재산권]지적재산권(지식재산권)의 정의와 특징 및 중요성, 세계의 지적재산...
지식근로자 육성 HRD전략
포스코 지식경영
[행정학A+] 지식경제부 연혁과 변천사 및 타 부처와의 비교분석과 주요정책 고찰
[일본지적재산, 일본지식재산]일본지적재산(일본지식재산)의 창조기반, 권리화, 일본지적재산...
[교육학개론] 교육의 미래 (지식기반사회의 성숙과 학습사회)
[아동수학지도] 영유아(만0~5세)의 일상생활 속 놀이에서 볼 수 있는 영유아기 수학적 지식의...
경영의 중요성을 지식기반사회 입장에서 논하시오
[마케팅] 설득지식 모델의 내용을 참고하여, 똑똑해진 소비자의 마음을 얻는 마케팅 커뮤니...
[독서감상문] 『지식인을 위한 변명』 _ 장 폴 사르트르 저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