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는 글
Ⅱ. 제대로 짚어보기
Ⅲ. 나가는 글
Ⅱ. 제대로 짚어보기
Ⅲ. 나가는 글
본문내용
거부하고,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 사회의 단위라고 생각하며, 역사의 진보를 믿지 않는 것이다. 어느 점에서는 유학과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이런 유학의 보수주의를 혐오하며 과거에 얽매이는 낡아빠진 공리적 허상이라고 생각한다. 보수주의는 시대를 거치면서 그 이름이 너무 더럽혀져 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 유학의 보수주의를 잘만 활용한다면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유용한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자본주의의와 자유주의의 지나친 영역 확장으로 지금 이 사회에는 소외된 계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고 목적 전도 현상, 인간 소외 현상 등 인간을 위해 만든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오히려 인간을 핍박하고 구속하는 현 사태에서 유학의 보수주의는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견제하며 이들과 균형을 맞추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낼 수 있는 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사회를 피폐하게 하는 부정적인 결과들을 완화시키는 동시에 인간을 최고의 가치로 만드는 건설적인 역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유학의 보수주의는 현대의 정치이념인 자유주의, 민주주의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면, 현실을 직면하고 그 현실을 충분히 숙고하면서 행복한 인간생활에 대해 고민하고 당당하게 조언하는 사려 깊은 사상으로 변신 할 수 있을 것이다.
- 덕의 불평등
유학은 본질적으로 불평등을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현대의 이데올리기인 자유주의, 민주주의와 가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이제 쓸모없는 학문이라는 인식이 세상에 만연하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퇴장을 당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확히 따지고 보면 유학에서 말하는 불평등은 현대에서 보통 생각하는 경제적 불평등, 기회의 불평등, 정치적 불평등이 아니라 바로 덕의 불평등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불평등만을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덕은 앞에서도 계속 언급했던 것과 같이 본성을 키움으로써 완성된 것인데, 본성은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있지만, 덕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로 차이가 난다. 그래서 이 덕을 충분히 키운 사람에게는 남을 위하는 인의예지의 마음이 가득할 것이고 이러한 사람에 의해서 정치가 이루어져야 세상에 평화를 가지고 오는 인정을 베풀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유학에서는 불평등을 인정하고 있다. 유학이 궁극적으로 말하려고 하는 것은 덕을 충분히 쌓은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타인에 대해 측은함을 느낄 수 있고, 또 이 마음을 어떻게 무리 없이 발휘하는지를 공부해 왔으므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이 사회를 위해 남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불평등이라면 재산에 의해 형성된 불평등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유학은 불평등마저도 결국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러한 불평등이라면 온갖 사회에 퍼져 전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 된다고 해도 결국엔 사람을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비인간적이고 더러운 불평등은 되지 않을 것이다.
유학에서의 불평등은 평등을 위한 불평등인 것이다.
Ⅲ. 나가는 글
맹자에 관련된 책을 두 번째 읽음으로서 그의 사상과 철학, 그리고 유학, 사단지심의 발현에 대해 뼛속까지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유학에 관련된 건 모두 낡아빠지고 고루한 것들 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본질과 정확한 의미, 담고있는 사상들을 보고 나니 내 자신이 고정관념에 빠져있던 한심하고 속물 같은 존재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맹자가 가진 당당함과 직설적인 성격이 사실 처음엔 맘에 들지 않았다. 유학자라면 자신을 좀 더 낮추고 겸손할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처했던 시대적 상황과 그의 사명감에 대한 의지를 알고 나니 그게 아니었단 걸 알게 되었다.
유학은 사람들이 땅을 중심으로 대가족을 이루고 그 땅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농업사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공동체 생활을 가장 중요시 하는 전통사회에서나 사회통합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론이었다. 즉 이 말은 현대의 사회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론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해서 꼭 쓸모 없는 이론인 것은 아니다. 유학에서 좋은 점을 간추리고 모아서 현대 사회의 이데올로기인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모순점을 완충시켜줄 수 있는 것이다. 즉, 유학의 액기스를 유용하게 쓸 것인지 아니면 뒷간에 버려두고 썩힐지는 우리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이제까지 부패하고 무의미한 관습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던 유학을 조금은 경계를 풀고 오랜만에 보게 된 친구처럼 맞이해줘도 될 것 같다. 그래서 그 친구와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하고 서로간의 오해도 풀고, 서로의 잘못은 인정하고 용서해주는 그런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퇴색되어 버린 의미의 보수주의가 아닌 진정한, 본래의 의미인 보수주의를 맞이함으로써 우리는 더욱 성장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인생에서 간과하고 있었던 부분을 많이 깨닫게 되었다. 그중에 특히 내 피를 끓게 했던 게 몇 개 있었는데, 먼저 상황에 따라 적절히 변하는 유학의 탄력성을 보여주는 ‘권형’과 사랑에도 차등이 있다는 솔직한 감정의 발현 ‘친친인민애물’의 경우가 그것이었다. ‘권형’은 내가 지금까지 유학에 대해 가졌던 생각, 즉 유학은 딱딱하고 융통성 없는 이론이라는 고정관념을 단번에 날려주는 시원한 찬물 같은 이론이었고, ‘친친인민애물’의 논리는 사랑의 감정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돌아가야 된다는 묵가의 논리를 수용하고 있던 내 자신에게 그게 아니라고 속삭여 주는 요정 같은 이론이었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이론은 앞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좌우에 놓고 항상 돌아보면서 그 의미를 되새길 만한 내 인생 최고의 이론이 되었다. 맹자를 통해서 동양철학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답답함, 난해함 등을 떨쳐낼 수 있었다. 또한 다른 사상이나 철학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하는 기폭제 같은 역할을 했다. 이제 나의 견해와 생각의 폭을 넓히기 위해 다른 사상으로 눈을 돌릴 때가 되었다는 생각까지 하게 해 주었다.
더 넓고 심연한 세상의 열쇠를 쥐어준 맹자! 그를 위해 사랑이 듬뿍 담긴 사단지심의 발현으로 그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
- 덕의 불평등
유학은 본질적으로 불평등을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현대의 이데올리기인 자유주의, 민주주의와 가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이제 쓸모없는 학문이라는 인식이 세상에 만연하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퇴장을 당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확히 따지고 보면 유학에서 말하는 불평등은 현대에서 보통 생각하는 경제적 불평등, 기회의 불평등, 정치적 불평등이 아니라 바로 덕의 불평등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불평등만을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덕은 앞에서도 계속 언급했던 것과 같이 본성을 키움으로써 완성된 것인데, 본성은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있지만, 덕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로 차이가 난다. 그래서 이 덕을 충분히 키운 사람에게는 남을 위하는 인의예지의 마음이 가득할 것이고 이러한 사람에 의해서 정치가 이루어져야 세상에 평화를 가지고 오는 인정을 베풀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유학에서는 불평등을 인정하고 있다. 유학이 궁극적으로 말하려고 하는 것은 덕을 충분히 쌓은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타인에 대해 측은함을 느낄 수 있고, 또 이 마음을 어떻게 무리 없이 발휘하는지를 공부해 왔으므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이 사회를 위해 남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불평등이라면 재산에 의해 형성된 불평등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유학은 불평등마저도 결국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러한 불평등이라면 온갖 사회에 퍼져 전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 된다고 해도 결국엔 사람을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비인간적이고 더러운 불평등은 되지 않을 것이다.
유학에서의 불평등은 평등을 위한 불평등인 것이다.
Ⅲ. 나가는 글
맹자에 관련된 책을 두 번째 읽음으로서 그의 사상과 철학, 그리고 유학, 사단지심의 발현에 대해 뼛속까지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유학에 관련된 건 모두 낡아빠지고 고루한 것들 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본질과 정확한 의미, 담고있는 사상들을 보고 나니 내 자신이 고정관념에 빠져있던 한심하고 속물 같은 존재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맹자가 가진 당당함과 직설적인 성격이 사실 처음엔 맘에 들지 않았다. 유학자라면 자신을 좀 더 낮추고 겸손할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처했던 시대적 상황과 그의 사명감에 대한 의지를 알고 나니 그게 아니었단 걸 알게 되었다.
유학은 사람들이 땅을 중심으로 대가족을 이루고 그 땅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농업사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공동체 생활을 가장 중요시 하는 전통사회에서나 사회통합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론이었다. 즉 이 말은 현대의 사회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론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해서 꼭 쓸모 없는 이론인 것은 아니다. 유학에서 좋은 점을 간추리고 모아서 현대 사회의 이데올로기인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모순점을 완충시켜줄 수 있는 것이다. 즉, 유학의 액기스를 유용하게 쓸 것인지 아니면 뒷간에 버려두고 썩힐지는 우리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이제까지 부패하고 무의미한 관습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던 유학을 조금은 경계를 풀고 오랜만에 보게 된 친구처럼 맞이해줘도 될 것 같다. 그래서 그 친구와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하고 서로간의 오해도 풀고, 서로의 잘못은 인정하고 용서해주는 그런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퇴색되어 버린 의미의 보수주의가 아닌 진정한, 본래의 의미인 보수주의를 맞이함으로써 우리는 더욱 성장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인생에서 간과하고 있었던 부분을 많이 깨닫게 되었다. 그중에 특히 내 피를 끓게 했던 게 몇 개 있었는데, 먼저 상황에 따라 적절히 변하는 유학의 탄력성을 보여주는 ‘권형’과 사랑에도 차등이 있다는 솔직한 감정의 발현 ‘친친인민애물’의 경우가 그것이었다. ‘권형’은 내가 지금까지 유학에 대해 가졌던 생각, 즉 유학은 딱딱하고 융통성 없는 이론이라는 고정관념을 단번에 날려주는 시원한 찬물 같은 이론이었고, ‘친친인민애물’의 논리는 사랑의 감정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돌아가야 된다는 묵가의 논리를 수용하고 있던 내 자신에게 그게 아니라고 속삭여 주는 요정 같은 이론이었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이론은 앞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좌우에 놓고 항상 돌아보면서 그 의미를 되새길 만한 내 인생 최고의 이론이 되었다. 맹자를 통해서 동양철학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답답함, 난해함 등을 떨쳐낼 수 있었다. 또한 다른 사상이나 철학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하는 기폭제 같은 역할을 했다. 이제 나의 견해와 생각의 폭을 넓히기 위해 다른 사상으로 눈을 돌릴 때가 되었다는 생각까지 하게 해 주었다.
더 넓고 심연한 세상의 열쇠를 쥐어준 맹자! 그를 위해 사랑이 듬뿍 담긴 사단지심의 발현으로 그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