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적․신학적으로 본 인간의 시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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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심리학적․신학적으로 본 인간의 시기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인간의 시기심

Ⅱ. 심리학의 입장에서 본 시기심
 2. 1. 시기 받는 사람의 심리 상태
 2. 2. 시기하는 사람의 마음 상태
 2. 3. 어머니 - 시기심의 근원
 2. 4. 남성에 대한 시기심
 2. 5. 선한 것에 대한 시기심
 2. 6. 치유

Ⅲ. 신학의 입장에서 본 시기심
 3. 1. 죄로서의 시기심
 3. 2. 시기하는 사람의 영적 상태
 3. 3. 시기하는 사람의 성적 상태
 3. 5. 선함과 시기심
 3. 6. 동의(同意)
 3. 7. 은총에 응답하는 삶- 선함에 대한 동의
 3. 8. 선함이란 무엇인가?

Ⅳ. 맺음말

본문내용

우리 자신이 살아있는 주체의 일부분이 되면, 그것을 원하는 마음에 의해 발견되고 다시 그 마음을 확장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동의는 선함에 대한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내적 고결함에서 나온다. 이것은 신데렐라 이야기가 우리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사로잡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적 고결성을 ‘짐멜’의 『사회학』에 서술된 귀족의 외적 고결함에 비유하고 있다. 이 책에서 짐멜은 귀족의 외적 고결함이란 환경이라는 전체 안에서 개인이 갖는 자기 충족성이며, 전체와 개인 사이 또는 개인의 타고난 요소와 삶속에서의 개인의 노력 사이의 균형이다. 이렇게 구성된 사회는 계급사회만큼 많은 부분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 사이에 개별적인 차별을 두지 않으며, 많은 부분들을 동의했기에 시기할 필요가 없다.
동의는 개인은 전체를 구성한 소중한 존재라고 인정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이는 신약성서에 충분히 서술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시는 이유는 바로 우리 자신이 특정한 부분이며, 그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하게 사랑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동의는 선함이 다만 부분들로 우리에게 찾아온다는 것과 우리 자신이 바로 그 부분들이며, 그 부분들은 이미 창조 질서 안에 한데 모아져 있기에 우리의 전체성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수용하는 동의는 더 나아가 타자를 수용하는 데도 유용한 의미를 지닌다. 신체의 각 부분들의 상호 의존성은 나와 타자를 이해하는 좋은 비유이다.
3. 7. 은총에 응답하는 삶- 선함에 대한 동의
동의는 선함의 더 깊은 신비 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즉, 선함에 동의하는 것은 은총에 응답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부분들을 가지고 전체를 이룩하기 위해 조절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와 타자의 부분들을 인식하는 데에서 나아가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기심이 분리시키는 작용이라면 사랑은 연합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선함의 부분들에 동의하는 것은 은총으로 다가오는 선함에 응답하는 방법이다. 선함은 우리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은총은 그 자체의 의지에 따라 우리에게 오면서도, 우리의 노력을 알아주고, 그렇게 노력한 우리를 인정해 준다. 선함에 응답할 때 선함은 내적 성실성이며, 우리 삶에서 작은 부분들에 반응하는 살아있는 어떤 것과의 관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때 삶의 부정적인 부분일지라도 배척되지 않고 연결된다.
사회도 집단적인 수준에서 시기심이 없는 유토피아를 약속하기보다는 인간 정서의 불가피한 요소로 시기심을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때에만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 사회에 시기심을 위한 자리를 인위적으로 준비한다면 시기심을 부드럽게 완화시키는 요소들과 연결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시기심은 두려움의 요인이 아니라 인간성의 변형을 일으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그때 시기심은 성장과 발달을 촉진시키고, 선함과 경쟁하는 세력이 될 수 있다. 사회가 시기심을 포함한 모든 부분들이 지닌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3. 8. 선함이란 무엇인가?
이 책에서 계속 반복되는 개념 중의 하나는 선함이다. 선함은 남성과 여성, 몸과 정신, 삶과 죽음 등 서로 모순된 요소들을 연결시킬 때 현현(顯現)한다. 선함은 우리의 현존을 신뢰하게 하고 의지하게 만든다. 선함은 그 반대인 악함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제하여 변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선함을 통해 경험하는 것은 ‘원선(原善)’이라 부른다.
우리의 파편화된 삶의 부분들을 결합시켜 줄 선함을 찾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동화를 읽고, 소설을 읽는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부조리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선함은 특정한 사람의 소유가 아니라 공유할 수 있는 선함이 되어야 한다. 선함을 공유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만약 나의 선함이 부족하다면 시기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선함에 의존하면 된다. 이제 시기심은 상호의존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이 상호의존은 나의 존재를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고 발전하게 만드는 작용이다.
이 부분에서 선함에 대한 새로운 공격이 있다. 이때의 선함은 너무나 선해서 우리와 다르고 우리답지 않아서 우리 바깥에서 우리 자신을 찾아야 한다는 공격이다. 이 공격은 우리가 선함의 진정한 가능성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사랑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신뢰를 보여 주는 행동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Ⅳ. 맺음말
시기심은 다른 사람에게 속한 것을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파괴한다. 그러나 시기심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과 타자의 성취를 본다면, 비록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발달시키거나 그와 같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키울 수 있다. 또한 타자 안에 있는 존재와 자신 안에 있는 존재를 긍정하고 수용하는 것은 존재를 확장시켜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기심은 지금까지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을 인간의 성장과 발전의 계기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시기심은 질투와 혼동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먼저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질투(嫉妬, 嫉) 는 “부부 사이나 사랑하는 이성(異性) 사이에서 상대되는 이성이 다른 이성을 좋아할 경우에 지나치게 시기함.” 또는 “다른 사람이 잘되거나 좋은 처지에 있는 것 따위를 공연히 미워하고 깎아내리려 함.”, “가톨릭에서 칠죄종(七罪宗)의 하나로 우월한 사람을 시기하는 일”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시기(猜忌)는 남이 잘되는 것을 샘하여 미워한다는 의미이다. 사전적 의미로 질투는 시기와 비슷한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시기와 질투는 대상과의 관계나 대상에 대한 심리적 상태가 확연히 다른 감정이다. 즉, 질투는 세 사람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며, 시기심은 두 사람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질투에는 사랑의 감정이 자리 잡고 있는데 비해 시기심은 타자를 부분으로 환원시키고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경우 파괴시키려고 하는 감정이다. 따라서 심리학적으로 이 둘은 확연히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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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11.11.20
  • 저작시기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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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15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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