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후크마의 《개혁주의 종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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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부 시작된 종말론
제1장 구약에 나타난 종말론적 개관
제2장 신약 종말론의 본질
제3장 역사의 의미
제4장 하나님의 왕국
제5장 성령과 종말론
제6장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

제2부 미래 종말론
제7장 육체의 죽음
제8장 영혼 불멸론
제9장 중간상태
제10장 재림의 기대
제11장 시대의 징조들
제12장 특별한 징조들
제13장 재림의 본질
제14장 천년기에 관한 주요한 견해들
제15장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비판
제16장 요한계시록 20장의 천년기
제17장 육체의 부활
제18장 최후심판
제19장 영원한 형벌
제20장 새로운 땅

4. 결론

후크마의 《개혁주의 종말론》을 읽고...

본문내용

맛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승리를 쟁취하셨기에 우리 주변의 세상 속에서 그리고 역사 속에서 우리는 그의 승리의 증거들을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최종적 절정이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역사 속에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며 그리스도의 승리를 반영하고 있지 않은 듯한 많은 일들이 존재할 것이다. 최후의 심판 날까지 역사는 이러한 모호성에 의해 계속될 것이다. 그것은 "선교사역"의 명령을 제공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정말로 하나님의 왕국을 새로이 시작하셨다면, 또한 그가 우리에게 진실로 위대한 선교 지상명령(마 28:19-20)을 주셨다면, 교회가 해야 할 위대한 사역은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즉 교회의 선교적 사명이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는 이 시대의 특징적인 활동이라는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의 왕국이 현재적인 동시에 미래적이란 사실은 이 두 측면 사이에 긴장관계가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이 긴장관계를 두 가지 방법으로 묘사할 수 있다. 후크마는 이에 대해서 말하기를,
① 교회는 역사의 종말이 매우 가까웠음을 인식하고 절박한 시대적 인식을 갖고 살아야 하며, 동시에 교회는 얼마 동안 지속될 현재의 땅 위에서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며 계속하여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② 교회는 현세대와 다가올 시대 사이의 긴장 속에 놓여 있다. 그래서 교회는 결코 휴식을 취하거나 편안히 있을 수 없다. 오히려 항상 갈등과 분쟁 속에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며 때로는 핍박을 받아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후 승리를 확신해야만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이러한 사실 때문에 왕국에 대한 우리의 책임이 감해지거나 덜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왕국은 우리에게 회개와 믿음을 요청하신다. 또한 하나님의 왕국은 전적 헌신을 요청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왕국과 그의 의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왕국은 우주적 구속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왕국은 단지 어떤 개인의 구원만을 의미하거나 심지어 어떤 선택된 무리들의 구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절정을 이루게 될 전우주의 완전한 갱신이다. 왕국의 시민이라는 것은 우리가 삶과 실체의 모든 것을 우주의 구속의 목표의 빛에서 바라보아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주의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그의 것이 아닌 것이 없다는 뜻이다. 모든 역사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어 나가는 것으로 살펴져야 한다. 이러한 왕국관은 기독교적 문화·철학관을 제공한다. 예술과 과학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이 모든 것들이 추구되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왕국관은 기독교적 직업관을 보여준다. 모든 소명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학업이든 가르침이든 설교이든 사업이든 기업이든 가사 일이든,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행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후크마의 《개혁주의 종말론》이 가지는 무천년주의적 종말론의 조망은 비판받을 부분이 없지 않다.
첫째, 이러한 후크마와 바빙크, 벌콥의 무천년주의 종말론은 계시록의 모든 예언들에 대해서 상징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문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의 예언을 문자적이고 사실적으로 받지 않고 그 숫자와 사건들에 대해서 모든 상징적인 의미만을 추출해 낸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칫 성경의 역사성에 대한 오해를 초래할 수 있다. 그들의 무천년주의적 종말론 해석은 계시록 20:1-6을 영적 해석에 기초한다. 바로 상징으로 이 구절들을 해석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 성경의 모든 예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한 것에 대해서 영적 해석을 하는 것이 가지는 오류와 비슷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대한 예언을 상징으로 해석한다면, 이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실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답변할 지 의문이다. 성경에 단 한번 밖에 언급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유대 땅 베들레헴에 오셨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계시록 20장에서 언급된 천년왕국에 대한 증언을 상징으로, 그리고 영적 해석에 그치도록 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성경해석의 오류를 내포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무천년주의자들은 계 20:2의 사단의 결박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로 해석한다. 이에 대해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사단이 잡혀있다고 한다면 오늘날에도 어떻게 사단이 우는 사자와 같이 날뛴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주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사단의 세력이 줄어들기는커녕 세상이 점점 더 악해진다. 이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떻게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결정적인 치명상을 당하고 나서, 벧전5:8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잡혀있는 마귀가 두루 다니면서 활동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사단이 묶여 있다고 말한다면, 결국 성경의 충돌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성경 내적인 충돌이 생긴다면 분명 해석상의 오류가 발생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다만, 후크마의 《개혁주의 종말론》에서 얻을 수 있는 영적 교훈과 실천적 의미는 없지 않다. 후크마가 말한 것과 같은 무천년주의적 종말론을 통해서 특별히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익은, 그러한 역사관과 종말론적 조망은 현세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기독교적 문화관과 철학과에 대해서 적절한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프란시스 쉐퍼가 기독교적 세계관의 형성을 주장하고, 그에 의하여 세상을 변혁시키는 운동을 벌이는 실천적 측면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잘못된 종말론적 관점이 주는 현실세계의 부정과 이원론적 세계관을 지양하고, 오히려 직업이든 소명이든 현실에서의 모든 활동이 하나님께 드려져야 함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예술과 과학이, 정치와 경제가, 그리고 모든 가정과 직장과 국가와 교회가 하나님께 찬송 드리는 도구로 사용되어 지고, 하나님의 것이 되도록 하는 것으로서 우리의 사명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종말의 시대를 사는 우리의 과업이요 하나님의 부여하신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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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12.15
  • 저작시기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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