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연구의 첫걸음] VI. 글자살이의 역사
본 자료는 5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해당 자료는 5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5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VI. 글자살이의 역사

1.훈민정음 이전의 글자 살이
 (1)한자전래 ~ 한문표기
 (2)고유명사의 차자 표기
 (3)이두 (吏讀)
 (4)향찰 (鄕札)
 (5)구결 (口訣) 및 약체 (略体)
 (6)한자 빌어 쓰기에 실패한 이유 - 한국어의 음절 수, 일본어와의 대비

2.훈민정음
 (1)훈민정음의 기원설들
 (2)훈민정음 본문의 글자 쓰기에 대한 풀이
 (3)글자 만든 원리
 (4)모아쓰기
 (5)훈민정음에 대한 이름과 낱글자의 이름

본문내용

년의 시차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글이 음소문자라는 사실만으로 으스대는 것은 한국인들이 서양사람들보다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이나 늦깎이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레 내세우는 것과 다름없을 테다.
그런데 한글은 그 제자(製字)원리에서 다른 음소문자 체계와는 격이 다르다. 현존하는 주류 음소문자의 기원이 고대 이집트 그림문자에 있는 만큼, 이 문자들에는 별다른 제자원리라 할 만한 것이 없다. 앞선 시대의 문자 꼴을 조금씩 바꾼 것이 전부다. 반면에, 훈민정음에는 고도의 음성학 음운론 지식이 응축돼 있다. 훈민정음 연구로 학위를 받은 미국인 동아시아학자 게리 레드야드는 제 학위 논문에 이렇게 썼다. “글자 꼴에 그 기능을 관련시킨다는 착상과 그 착상을 실현한 방식에 정녕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오래고 다양한 문자사에서 그 같은 일은 있어본 적이 없다. 소리 종류에 맞춰 글자 꼴을 체계화한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다. 그런데 그 글자 꼴 자체가 그 소리와 관련된 조음 기관을 본뜬 것이라니. 이것은 견줄 데 없는 문자학적 호사다.”
레드야드가 지적했듯, 한글 닿소리 글자들은 조음 기관을 본떴다. 예컨대 ‘ㄱ’과 ‘ㄴ’은 이 글자들이 나타내는 소리를 낼 때 혀가 놓이는 모양을 본뜬 것이다. ‘ㅁ’은 입 모양을 본뜬 것이고, ‘ㅅ’은 이 모양을 본뜬 것이며, ‘ㅇ’은 목구멍을 본뜬 것이다. 조음기관의 생김새를 본떠 글자를 만든다는 착상 자체가 참으로 놀랍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소리 종류에 맞춰 글자 꼴을 체계화”했다는 레드야드의 말은 무슨 뜻인가?
조음 기관을 본뜬 기본 글자 다섯(ㄱ, ㄴ, ㅁ, ㅅ, ㅇ)에다 획을 더함으로써, 소리나는 곳은 같되 자질(소리바탕)이 다른 새 글자들을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예컨대 연구개음(어금닛소리) 글자인 ‘ㄱ’에 획을 더해 같은 연구개음이되 유기음(거센소리) 글자인 ‘ㅋ’을 만들고, 양순음(입술소리) 글자인 ‘ㅁ’에 획을 차례로 더해 같은 양순음이되 새로운 자질이 더해진 ‘ㅂ’과 ‘ㅍ’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홀소리글자의 경우에도, 이를테면 ‘ㅗ’와 ‘ㅜ’는 이것들이 둘 다 원순모음이면서도 한 쪽은 밝음이라는 (상징적) 자질을 지닌 데 비해 다른 쪽은 어두움이라는 자질을 지녔다는 점을, 덧댄 획의 위아래로 구분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로마문자와 견줘보면 한글에 녹아든 음성학 음운론 지식이 얼마나 깊고 정교한지 이내 드러난다. 예컨대 이나 잇몸에 혀를 댔다 떼면서 내는 소리들을 로마문자로는 N, D, T로 표현하지만, 이 글자들 사이에는 그 모양의 닮음이 전혀 없다. 그러나 한글은 이와 비슷한 소리들을 내는 글자들을 ‘’, ‘’, ‘’처럼 형태적으로 비슷하게 계열화함으로써, 이 소리들이 비록 자질은 다르지만 나는 곳이 같다는 것을 한 눈에 보여준다. 즉 훈민정음 창제자들은 음절을 음소로 분석하는 데서 더 나아가, 현대 언어학자들처럼 음소를 다시 자질로 분석할 줄 알았다. 그래서 영국인 언어학자 제프리 샘슨은 한글을 로마문자 같은 음소문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자질문자’라 불렀다. ‘견줄 데 없는 문자학적 호사’라는 레드야드의 찬탄은 과장이 아니다. 훈민정음은 그 때까지 인류가 축적한 음운론 음성학 지식을 집대성해놓았던 것이다.
이런 제자 원리를 떠나서라도, 소리를 섬세하게 나타내는 기능에서 한글에 앞설 만한 문자체계는 찾기 어렵다. 근년에 이르러 한글 꼴을 다양하게 손질한 기호로 국제음성문자(I.P.A.)를 갈음하려는 한국인 학자들의 시도도 있었거니와, 이런 시도는 기실 훈민정음이 창제된 15세기부터 일찍이 이뤄진 바 있다. 훈민정음은 공들여 만들어진 뒤에도 한자의 위세에 눌려 문자왕국의 변두리에서 오래도록 숨죽이고 있어야 했지만, 그 기간에도 그 꼴이 조금씩 바뀌어 중국어나 만주어, 몽고어, 일본어 같은 외국어의 소리를 표기하는 발음기호로 사용돼 왔던 것이다.
이렇게 한글은 소리를 드러내는 데 체계적이고 섬세하다. 그렇다면 한글은 보탤 것이 전혀 없는, 완벽한 문자체계인가? 그렇지는 않다. 로마문자나 그리스문자와 한글을 순수하게 ‘미적으로’ 견줘보자.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가? 보는 이에 따라 판단이 다르겠지만, 로마문자나 그리스문자 쪽을 편드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아직 한글 자체(字體)가 충분히 개발되지 않은 탓도 있을 게다. 그러나 근본적 문제는 한글이, 로마문자나 그리스문자와 달리, 음절 단위로 모아쓰게 돼 있다는 데 있는 듯하다. 이렇게 음절 단위로 네모나게 모아쓰는 이상, 아무리 자체를 다양화해 봐야 미적 세련의 정도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훈민정음 창제자들이 일껏 고생해서 음소문자를 만들어놓고도 그것을 음절 단위로 네모나게 모아쓰도록 한 데는 한자의 영향이 컸을 테다. 뜻글자인 한자 역시 그 한 글자 한 글자가 네모난 형상 속에 한 음절씩을 담아놓고 있는 음절문자 성격을 겸하고 있다. ‘훈민정음’의 첫 음절 ‘훈’을 굳이 네모나게 모아쓸 게 아니라 소리의 선조성에 따라 ‘ㅎㅜㄴ’처럼 한 줄로 벌여놓을 수도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기엔 한자의 그림자가 너무 짙었으리라. 아무튼 한글은 본질적으로 음소문자이고 그 제자원리를 보면 거기서 더 나아간 자질문자의 성격을 띠고 있으면서도, 그 실제 운용에서는 음소문자에 못 미치는 음절문자에 머물러 있다.
이런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주시경 이래 한글을 풀어쓰려는 시도가 더러 있었다. 예컨대 ‘한국’을 ‘하ㄴㄱㅜㄱ’처럼 쓰는 것이다. 이렇게 풀어쓰게 되면 자체에 변화를 주며 미적 치장을 할 여지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진다. 북한은 정권 초기에 주시경의 제자 김두봉의 제창으로 한글 풀어쓰기를 진지하게 고려했으나, 과격한 문자혁명이 남북한 사이의 문자 소통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이를 통일 뒤로 미룬 바 있다. 한글을 지금처럼 음절 단위로 모아쓰는 것과 로마문자처럼 음소 단위로 풀어쓰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읽기 편한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이 있다. 또 오랜 관습을 한꺼번에 허무는 문자혁명은 적잖은 부작용을 낳을 테다. 그러나 이런 모아쓰기가 한글 속에 남아있는 한자체계의 화석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고종석, <말들의 풍경>, 개마고원
  • 가격2,500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12.02.21
  • 저작시기2012.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28689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