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기氣
1. 기란 무엇인가
(1) 기에 대한 직감적인 이해
(2) 신유학에서의 기
(3) 기와 음양
2. 기의 자기운동성
(1) 질료 = 기?
(2) 연속체로서의 기
(3) 기의 자기운동성
3. 기의 운동 방식: 감(感)과 응(應)
(1) 감응관계와 인과관계
(2) 체(體)와 용(用)
(3) 왜 속성이 아니라 작용인가?
4. 기에 대한 정이천의 생각
5. 의문
(1) 기의 순수함과 불순함에 대하여
(2) 음과 양은 둘이면서 하나이다?
1. 기란 무엇인가
(1) 기에 대한 직감적인 이해
(2) 신유학에서의 기
(3) 기와 음양
2. 기의 자기운동성
(1) 질료 = 기?
(2) 연속체로서의 기
(3) 기의 자기운동성
3. 기의 운동 방식: 감(感)과 응(應)
(1) 감응관계와 인과관계
(2) 체(體)와 용(用)
(3) 왜 속성이 아니라 작용인가?
4. 기에 대한 정이천의 생각
5. 의문
(1) 기의 순수함과 불순함에 대하여
(2) 음과 양은 둘이면서 하나이다?
본문내용
표현함을 전자라고 하고 본성으로서의 리를 거스름을 표현함을 후자라고 하자. 앞서 선함은 음과 양이 적절한 균형을 이룬 상태이며 악함은 음과 양의 균형이 깨진 상태라고 했음을 상기한다면 후자의 불순함은 기의 음과 양이 서로 균형을 이루지 못한 상태와 관련되는 의미를 가지는 듯하다. 그러나 전자에 있어서는 다소 애매한 점이 있다. 전자에 있어 불순함은 기가 응축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기가 응축된다는 것이 기가 음의 상태로 응축된다는 것인지, 아니면 음과 양이 함께 응축된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예를 들어 그레이엄은 다음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기는 처음 양의 국면에서는 바깥으로 팽창하다가 수축하는 음의 국면에서는 고요하게 되면서 지속적인 형태를 갖춘다.” 4번 인용 재인용
여기에서 지속적인 형태를 갖춘다는 것이 기가 응축되어 사물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기의 응축은 기가 음의 상태로 응축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위의 문장에서 “지속적인 형태”라는 표현이 반드시 응축되어 사물이 된 상태라고 해석할 필요는 없으며, 단지 다시금 양의 상태가 되어 팽창하게 될 일시적인 상태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때문에 기의 응축이, 기가 음의 상태로 응축 되는 것이 아니라 음과 양이 함께 응축된다는 설명은 여전히 가능하다. 그렇다면 기가 응축된다는 것이 둘 중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제 3의 어떠한 상태를 뜻하는 것인지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듯 보인다.
(2) 음과 양은 둘이면서 하나이다?
신유학자들은 기를 음과 양 두 기로 분류하면서도 이것들이 근본적으로는 하나의 기라고 말한다. 여기서 혼란스러운 점은 음양의 구분이 마치 음과 양이라는 개별적인 두 실체를 전제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을 어떻게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흐름으로 통합해서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다음을 살펴보자. “고요함은 양이 사라짐에 따라 등장한 음의 끌어당김에 기인한다.” 위의 책, p.89
, “음기는 양기에 반응하면서 다시 그것을 자극한다.” 위의 책, p.95
여기서 음기와 양기는 끌어당김과 사라짐의 주체, 반응하고 자극하는 주체인 것처럼 서술되어 있다. 어떻게 자극하고 반응하는 주체가 근본적으로 하나일 수 있는가? 우리가 자극과 반응이라는 서양 개념을 음양의 개념에 잘못 대입한 것은 아닐까? 그러면 도대체 하나의 흐름을 음과 양으로 분절하여 개념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서 지속적인 형태를 갖춘다는 것이 기가 응축되어 사물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기의 응축은 기가 음의 상태로 응축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위의 문장에서 “지속적인 형태”라는 표현이 반드시 응축되어 사물이 된 상태라고 해석할 필요는 없으며, 단지 다시금 양의 상태가 되어 팽창하게 될 일시적인 상태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때문에 기의 응축이, 기가 음의 상태로 응축 되는 것이 아니라 음과 양이 함께 응축된다는 설명은 여전히 가능하다. 그렇다면 기가 응축된다는 것이 둘 중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제 3의 어떠한 상태를 뜻하는 것인지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듯 보인다.
(2) 음과 양은 둘이면서 하나이다?
신유학자들은 기를 음과 양 두 기로 분류하면서도 이것들이 근본적으로는 하나의 기라고 말한다. 여기서 혼란스러운 점은 음양의 구분이 마치 음과 양이라는 개별적인 두 실체를 전제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을 어떻게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흐름으로 통합해서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다음을 살펴보자. “고요함은 양이 사라짐에 따라 등장한 음의 끌어당김에 기인한다.” 위의 책, p.89
, “음기는 양기에 반응하면서 다시 그것을 자극한다.” 위의 책, p.95
여기서 음기와 양기는 끌어당김과 사라짐의 주체, 반응하고 자극하는 주체인 것처럼 서술되어 있다. 어떻게 자극하고 반응하는 주체가 근본적으로 하나일 수 있는가? 우리가 자극과 반응이라는 서양 개념을 음양의 개념에 잘못 대입한 것은 아닐까? 그러면 도대체 하나의 흐름을 음과 양으로 분절하여 개념화한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