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모두 네가 오가던 길인데 - 김창협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 작가 소개 : 김창협(金昌協, 1651~1708)

• 작가와 망자와의 관계

• 작품 내용 분석

• 기본 유형과의 공통점

• 기본 유형과의 차이점

국의의 처방 (백수공인 이씨 묘지명) - 박지원

• 작가 소개 : 박지원(朴趾源, 1737~1805)

• 작가와 망자와의 관계

• 작품 내용 분석

• 기존 비지문과의 차이점

1. 기존 비지문의 특징

2. 기존 비지문과의 차이점

3. 왜 작가는 이런 작품을 썼을까?

여기는 모두 네가 오가던 길인데

국의國醫의 처방

본문내용

걸음 다가서게 될수록 우리는 주위 사람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리고 그것은 상상 이상의 고통을 주게 된다. 더군다나 죽음의 대상이 나보다 오래 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자신의 자식이라면 그 고통의 깊이가 얼마나 될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이다. 과거에 나는 고모를 잃은 적이 있다. 고모는 몸이 아프셨다. 어머니가 고모를 모시기로 하여 어린 시절 우리 집에 고모가 사셨는데 항상 침대에 누워 계셨다. 고모는 아프기 전에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하셨다. 그래서인지 어린 나를 배에 앉히고 동요를 불러주시고는 했다. 나는 지금도 동요를 들으면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낌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지금은 돌아가신 고모생각에 애잔한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노래로써 고모를 생각하듯이 이 애제문의 작자인 김창협은 자신과 아들이 걷던 길을 통해 그를 추억하게 된다. ‘옥같은 너를 어이 묻으랴.’라는 책에는 많은 제문이 있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것은 이번에 감상을 하고 분석을 하게 된 김창협의 ‘여기는 모두 네가 오가던 길인데’가 아닐까 싶다. 예전에 같이 걷던 길을 혼자서 걷게 되었을 때의 외로움, 같이 걷던 길에 있던 산, 강, 정자들은 모두 그대로 인데 자신의 아들만 죽어서 없다는 것에서 오는 비애감 같은 감정을 이토록 절실하게 드러낸 문장은 없을 것이다.
김창협은 조선 시대의 뛰어난 문인이자 유학자였다. 그러나 이 글을 살펴보면 김창협의 그러한 모습은 드러나지 않는다. 자식의 죽음 앞에서 그는 단순히 슬픔과 괴로운 가슴을 안고 사는 아버지일 뿐이다. 더군다나 연이어 자식을 세 명이나 잃게 된다면 그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문학은 때때로, 표면에 드러나는 감정을 감추고 비유나 상징을 이용하여 표현을 할 때 생기는 가치를 중시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작품을 읽거나 듣고 펑펑 울면서 울분이나 한을 해소할 수 있을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해소도 중요시 한다. 김창협의 제망아문은 후자에 가깝다. 제문은 수많은 작품에서 다루어졌던 죽음이나 자식에 대한 사랑 같은 주제를 담고 있고 그것을 절절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수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러한 제문이 읽히는 것이고, 독자는 슬픔을 공유하고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제문은 감정을 적절하게 절제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김창협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3명의 자녀를 잃었는데 보통 사람이라면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김창협의 입장이라면 제문을 쓰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혹여나 제문을 쓰게 되더라도 내용이 슬프다는 감정의 과잉과 자신의 처지 한탄이 주를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창협은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식과 같은 길을 걷던 것을 떠올리고 자식의 가진 능력을 알아주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제문을 읽으면서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이 떠올랐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이 시에서는 시인이 유리를 보고 아들을 생각했듯이 김창협은 아들과 걷던 길로 그를 추억할 것이다. 살아남은 자를 못 견디게 하는 것은 이러한 사소한 사물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물들은 또한 우리를 누군가에게 기억되게 할 것이다.
국의國醫의 처방
박지원이라는 이름은 국어를 공부하는 나로서는 가장 많이 들어 본 이름 중에 하나일 것이다. 박지원의 글은 교과서에도 등장하고 많은 책에서 인용이 되고 있는데 내가 읽은 대부분의 박지원의 글은 사회 비판과 풍자가 들어있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시대를 앞서 생각하고 사회에 비판적인 인물이었다. 이러한 모습에서 박지원이라는 인물 그 자체의 인간적인 면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가 이번에 ‘국의의 처방’이라는 글을 읽고 지식인으로서, 학자로서의 박지원이 아닌 인간 박지원을 만날 수 있었다. 이 비지문은 박지원이 그의 형수를 기억하며 쓴 글이다. 박지원은 부모님을 잃고 그의 형과 형수를 부모님처럼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 그에게 있어 어머니와 같은 형수의 죽음은 커다란 아픔이 되었을 것이다.
국의의 처방을 보면 형수의 헌신적인 모습이 나온다. 열 식구의 생계를 꾸리고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온 힘을 다해 집안의 안주인으로서 역할을 한다. 그러다 병이 깊어져 치료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죽어간다. 형수의 삶은 기구한 조선시대 여성의 일생을 말해주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 어머니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그래서 몇 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글은 살아있는 글이 되고 있다. 또한 이 글에는 여타의 비지문과는 다르게 형수와의 일화를 전하고 있다. 박지원이 형수에게 집을 옮겨 집 주위에는 나무도 심고 벌도 키우면서 노년의 삶을 자연 속에서 지내자고 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그리고 형수는 흔쾌히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지만 결국 이를 보지 못한 채 눈을 감게 된다. 죽음이라는 것은 삶을 불안과 슬픔으로 물들이지만 역설적으로 아름다움과 행복을 낳기도 한다. 그리고 박지원이 존경하고 사랑하였던 형수는 끝까지 아름다운 기억이라는 선물을 남기고 떠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죽음이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가장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제대로 추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죽음인 것 같다. 그리고 박지원은 이러한 그리움을 담아 글을 썼을 것이다.
글의 제목은 국의의 처방이다. 과연 국의는 어떠한 처방을 내렸을까? 박지원의 형수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산삼이나 좋은 보약이 아니었을 것이다.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집과 조금의 땅, 휴식이 그녀에게 필요한 처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박지원이 원했던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미래의 모습이다. 간단한 것 같지만 현실에서 이를 이루어내기는 쉽지 않다. 박지원의 비지문은 형수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 안에 자신이 이루고자 한 가정의 모습도 또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있기에 비지문은 죽은 자의 슬픔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자의 슬픔도 담아내고 있다.

키워드

여기는,   모두,   네가,   오가던,   길인데,   김창협,   독후감
  • 가격3,3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2.04.17
  • 저작시기2012.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40790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