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代[한대]의 유교건축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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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漢代[한대]의 유교건축물에 대하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종묘

명당

사진자료

본문내용

태를 가진 건축군이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건축군이 중심에 명당이 있었는데, 그 남북과 동서의 길이는 모두 42m정도였고 향토층 위에 올려져 있었다. 고고학 보고와 고문헌에 기초해서 대충 이 건물을 복원해 볼 수 있다. 맨 위 3층에는 통천실이라는 둥근 방이 2층의 네모진 강당 바로 위에 올려져 있다. 이 강당은 따로따로 사방으로 퍼져 있는 8개의 소강당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2층에 있는 모두 9개의 방은 단단한 <중심 토천> 위에 세워져 있었다. 1층에는 직사각형 강당 4개가 이 <중심 토천>에 붙여 세워져 사방을 향하고 있었다. 이 4개의 강당은 각각 3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던 듯 하고, 가운데에 있는 방 양쪽으로 조그마한 2개의 방이 있는 형태였을 것이다. 회낭은 지붕이 덮여 강당 바깥으로 뻗어나가 있어 건물을 안정되게 보이도록 하였다.
이 중심 건축은 직경이 약 62m 인 원형 토대 위에 세워져 있었고, 그것은 다시 높이 1.6m, 각 변의 길이가 235m인 대형사각 토대 위에 올려져 있었다. 본래 이 사각 토대는 성벽이 둘러싸고 있었으며, 나침반의 제 방향에 맞추어 2층으로 된 문이 있었다. 그 바깥으로 직경 360m, 넓이 2m의 도랑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만들어져 있었다. 도랑을 끼고 직사각형 모양의 지역 4곳이 정사방을 향해 원 바깥으로 돌출되어 있었다. 이 도랑은 북쪽으로 금수에 연결되어 있고, 이곳으로 물이 흘러들어 해자를 만들었다.
왕망의 명당의 원래 도면은 오래전에 없어졌다. 현재로서 명당에 대한 문헌기록은 조금 늦은 후한 학자 채옹의 <명당월령론>에서 찾을 수 있다.
사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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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5.22
  • 저작시기2012.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48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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