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군웅(群雄)의 한 사람인 유무주(劉武周)에 의해 이궁(離宮)인 펀양궁[汾陽宮]이 점거되어, 책임자인 이연은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차남인 이세 민(李世民;후의 태종)과 측근의 재촉을 받은 이연은 617년에 군사 를 일으켜, 병력 3만 명으로 대장군부(大將軍府)를 세워 이건성 (李建成)이세민 두 아들에게 각각 좌우양군(左右兩軍)을 통솔하게 하고서 펀수이를 떠났다. 수군(隋軍)과 군웅의 저항을 물리치면서 장안(長安)으로 들어가, 양제의 손자인 왕유(王侑)를 천자(天子)로 받들고서 양제를 태상황(太上皇)으로 한 뒤, 자신은 대승상(大丞 相)당왕(唐王)이라고 부르게 했다. 다음해에 양제의 부고(訃告)가 전해지자, 왕유(王侑)의 선양(禪讓)으로 당조(唐朝)를 세우고 연호 (年號)를 무덕(武德)이라고 고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