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며
Ⅱ. 1차 상품 수출단계 (1889~1930)
Ⅲ. 수입대체를 통한 공업화 추진단계
1. 수입대체 1단계 (1930~1955)
2. 수입대체 2단계 (1955-1964)
3. 수입대체 3단계 (1964~1985)
Ⅳ. 시장경제를 통한 개혁 추진단계 (1990년대)
Ⅴ. 룰라정부의 집권시기 (2002~2010)
Ⅵ. 향후 경제전망 및 맺음말
Ⅱ. 1차 상품 수출단계 (1889~1930)
Ⅲ. 수입대체를 통한 공업화 추진단계
1. 수입대체 1단계 (1930~1955)
2. 수입대체 2단계 (1955-1964)
3. 수입대체 3단계 (1964~1985)
Ⅳ. 시장경제를 통한 개혁 추진단계 (1990년대)
Ⅴ. 룰라정부의 집권시기 (2002~2010)
Ⅵ. 향후 경제전망 및 맺음말
본문내용
였다. ‘신이 있다면 아마 브라질 사람일 것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발전에 중요한 요인들을 고루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중 대표적으로 커피산업이 크게 발달하였고, 이에 따라 커피를 수출하는 1차 상품 수출경제를 통해 자본을 축적하였다. 1924년 브라질 전체 수출에서 커피가 차지하는 비중은 75%를 넘어설 만큼 커피산업은 브라질 경제를 이끄는 절대적인 산업이었는데, 테라로사로 알려진 천혜의 토양 및 기후 조건, 넓은 땅, 뛰어난 영농법과 지속적인 품종 개량, 과학적인 생산 방식과 가공 기술은 브라질 커피 산업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커피가 주로 생산되는 지역은 고원 지대인 남동부 산악지역으로, 상파울로 주, 미나스 제라이스 중에 걸쳐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낮은 고도인 해발고도 600~1500m에 달하는 짧은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다. 또한, 노예제도도 브라질 커피 산업이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늘어나는 커피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아프리카로부터 많은 노예를 데리고 와서 커피 농장에 투입시켰고, 이러한 노예제도를 통해 풍부한 노동력이 확보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당시 브라질의 무역패턴은 영국에게 농산품을 수출하고, 다시 영국의 제조품을 수입하는 종속형태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브라질 경제에 역동성을 불어넣어주었던 커피 경제는 무분별한 생산 증가로 공급과잉사태에 처하게 되고, 여기에 1929년 세계적인 대공황과 함께 수요가 급감하고 가격이 폭락하면서 브라질의 1차 상품의 자유주의적 수출전략은 위기에 봉착하였고, 브라질 경제는 극심한 경기침체에 빠져들게 되었다. 또한, 19세기 말, 커피경제의 팽창으로 노예노동이 폐지되고, 임금노동자 계급이 형성 되었으며, 커피농장주와 거래상의 손에 자본이 집중되면서 산업자본가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이 형성되면서 브라질은 본격적입 산업 화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 커피 산업이 활발히 이루어졌던 지역
Ⅲ. 수입대체를 통한 공업화 추진단계
이러한 1차 상품 수출이 야기하는 부작용을 몸소 느낀 후, 브라질은 경제성장의 방향을 바꿔서 제조업의 국내시장 경쟁력을 위해 제조업 제품의 수입을 제한함으로써 경제개발을 가속화 하는 ‘수입대체 공업화’ 전략을 실시하였는데, 이는 정부의 강력한 경제개발 계획에 국내 산업을 발전시키되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을 금지하고, 그 대신 국내 산업을 일으켜 그에 대체 하자는 주장 아래 실시되었다.
1. 수입대체 1단계 (1930~1955)
1932년 상파울루 주 반 바르가스 세력에 의해 호헌 혁명이 발발하였고, 이 반란을 진압한 바르가스는 브라질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했다. 이렇게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바르가스(Getulio Vargas)정부는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수입대체 기반을 둔 공업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193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바르가스(Vargas) 정권하의 브라질은 1960년대의 남한과 유사한 민족주의-국가통제주의적 공업화 전략을 채택하게 된다. 바르가스 정부가 추진한 수입대체 공업화의 목적은 1)수입의존도를 줄여 커피 수출 감소에 따른 외환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2) 국내시장을 겨냥한 산업화를 추진함으로써 농산품 수출 경제에서 벗어나는데 있었으며, 이를 위해서 적극적인 정부의 개입으로 국영기업을 설립하고, 국내 산업에 각종 혜택을 지원하며, 민족주의의 추진과 이민자 동화 정책, 대학의 정비, 국내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를 설정하여 보호무역을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였다. 또한, 국가는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주도해 나갔을 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하고 노동법을 정비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권리를 신장시켜 나갔다. 이러한 바르가스 정부의 노력으로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근대적인 기술의 결핍, 낮은 국내저축율로 인해 곧 외환부족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어 중간재와 자본재의 수입이 어려워졌고, 이것이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가로막았다.
2. 수입대체 2단계 (1955-1964)
1956년 대통령에 취임한 쿠비체크(Kubischeck) 대통령은 ‘50년의 진보를 5년에’라는 구호를 내걸고 본격적으로 경제성장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쿠비체크 정부가 수립한 ‘메따스 계획 (Plano de Metas, 1956-1961)’ 에 의해 수입대체 공업화가 2단계에 직면하게 된다. 쿠비체크는 공업화 촉진을 위하여 브라질리아를 건설하고, 국내외 민간 자본을 항공, 조선, 자동차 산업에 투자를 집중하였고, 이에 따라 브라질은 내구소비재 산업의 기초를 다질 수 있게 되었다. 이전보다 더욱 강력해진 정부주도 아래 국영기업이 강화되었고, 수입대체 1단계와는 달리 외자도입에 정부가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쿠비체크 정부는 수입대체 1단계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바탕으로, 해외자본의 유입을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고, 이를 위해 노력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브라질은 해외자본의 유치를 위해 많은 특혜를 제공했고, 그 결과 제조업 부문에 대한 해외자본의 유입이 두드러졌다. 1952~1961 사이에 자동차 산업, 전기산업, 화학산업의 많은 투자와 기술 이전을 통해 브라질은 자본 집약적 산업을 구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점도 발견되었다. 경제는 급격하게 성장한 반면, 금전적인 부담 아래 브라질리아를 건설하기 위해 화폐를 대량 발행해서 재원을 충당하는 등 투자금이 화폐 제조로 조달되는 문제가 일어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계속 악화되었으며, 국내자본의 부족과 정부 재정의 부실로 인해 필요한 자본을 해외투자 유치로 조달을 하다 보니 해외 투자 부분이 과도하였고, 그에 따라 외채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어서 국제수지가 악화되었다. 이는 결국 1963년 경기침체의 원인이 되었고, 쿠비체크는 1964년 발생한 쿠데타에 의해서 추방되었다.
3. 수입대체 3단계 (1964~1985)
1964년 쿠데타를 일으킨 카스텔로 브랑코 장군은 군사 독재 체제를 확립하였다. 이들이 마련한 모델은 국제시장의 활황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고 국가의 분배기능을 급속히 축소시키는 것이었다. 즉, 자본축적의 축을 내수가 아닌 수출로, 대중소비가 아닌 고소득층 소비로
노동자계급이 형성되면서 브라질은 본격적입 산업 화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 커피 산업이 활발히 이루어졌던 지역
Ⅲ. 수입대체를 통한 공업화 추진단계
이러한 1차 상품 수출이 야기하는 부작용을 몸소 느낀 후, 브라질은 경제성장의 방향을 바꿔서 제조업의 국내시장 경쟁력을 위해 제조업 제품의 수입을 제한함으로써 경제개발을 가속화 하는 ‘수입대체 공업화’ 전략을 실시하였는데, 이는 정부의 강력한 경제개발 계획에 국내 산업을 발전시키되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을 금지하고, 그 대신 국내 산업을 일으켜 그에 대체 하자는 주장 아래 실시되었다.
1. 수입대체 1단계 (1930~1955)
1932년 상파울루 주 반 바르가스 세력에 의해 호헌 혁명이 발발하였고, 이 반란을 진압한 바르가스는 브라질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했다. 이렇게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바르가스(Getulio Vargas)정부는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수입대체 기반을 둔 공업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193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바르가스(Vargas) 정권하의 브라질은 1960년대의 남한과 유사한 민족주의-국가통제주의적 공업화 전략을 채택하게 된다. 바르가스 정부가 추진한 수입대체 공업화의 목적은 1)수입의존도를 줄여 커피 수출 감소에 따른 외환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2) 국내시장을 겨냥한 산업화를 추진함으로써 농산품 수출 경제에서 벗어나는데 있었으며, 이를 위해서 적극적인 정부의 개입으로 국영기업을 설립하고, 국내 산업에 각종 혜택을 지원하며, 민족주의의 추진과 이민자 동화 정책, 대학의 정비, 국내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를 설정하여 보호무역을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였다. 또한, 국가는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주도해 나갔을 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하고 노동법을 정비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권리를 신장시켜 나갔다. 이러한 바르가스 정부의 노력으로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근대적인 기술의 결핍, 낮은 국내저축율로 인해 곧 외환부족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어 중간재와 자본재의 수입이 어려워졌고, 이것이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가로막았다.
2. 수입대체 2단계 (1955-1964)
1956년 대통령에 취임한 쿠비체크(Kubischeck) 대통령은 ‘50년의 진보를 5년에’라는 구호를 내걸고 본격적으로 경제성장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쿠비체크 정부가 수립한 ‘메따스 계획 (Plano de Metas, 1956-1961)’ 에 의해 수입대체 공업화가 2단계에 직면하게 된다. 쿠비체크는 공업화 촉진을 위하여 브라질리아를 건설하고, 국내외 민간 자본을 항공, 조선, 자동차 산업에 투자를 집중하였고, 이에 따라 브라질은 내구소비재 산업의 기초를 다질 수 있게 되었다. 이전보다 더욱 강력해진 정부주도 아래 국영기업이 강화되었고, 수입대체 1단계와는 달리 외자도입에 정부가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쿠비체크 정부는 수입대체 1단계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바탕으로, 해외자본의 유입을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고, 이를 위해 노력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브라질은 해외자본의 유치를 위해 많은 특혜를 제공했고, 그 결과 제조업 부문에 대한 해외자본의 유입이 두드러졌다. 1952~1961 사이에 자동차 산업, 전기산업, 화학산업의 많은 투자와 기술 이전을 통해 브라질은 자본 집약적 산업을 구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점도 발견되었다. 경제는 급격하게 성장한 반면, 금전적인 부담 아래 브라질리아를 건설하기 위해 화폐를 대량 발행해서 재원을 충당하는 등 투자금이 화폐 제조로 조달되는 문제가 일어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계속 악화되었으며, 국내자본의 부족과 정부 재정의 부실로 인해 필요한 자본을 해외투자 유치로 조달을 하다 보니 해외 투자 부분이 과도하였고, 그에 따라 외채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어서 국제수지가 악화되었다. 이는 결국 1963년 경기침체의 원인이 되었고, 쿠비체크는 1964년 발생한 쿠데타에 의해서 추방되었다.
3. 수입대체 3단계 (1964~1985)
1964년 쿠데타를 일으킨 카스텔로 브랑코 장군은 군사 독재 체제를 확립하였다. 이들이 마련한 모델은 국제시장의 활황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고 국가의 분배기능을 급속히 축소시키는 것이었다. 즉, 자본축적의 축을 내수가 아닌 수출로, 대중소비가 아닌 고소득층 소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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