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대통령 이승만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건국 대통령 이승만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인물 소개
3. 인터뷰
4. 이승만 박사의 어록 중에서
5. 나오는 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대거 대학에 진학하면서 이 이력이 60년대 이후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정부의 후원을 입은 전시학교의 의의는 크다.
셋째, 대학이 증설되었다. 해방 직후에는 경성제대 1개와 25개의 전문학교밖에 없었는데 1950년대 후반이 되면서 대학의 수는 단과대학을 포함해 그 다섯배에 달하는 135개교에 이른다. 이러한 교육의 결과는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혁에 역군이 될 수 있는 인력을 키워 제공했다는 점이다.
넷째, 미국과 유럽에 해외유학도 권장하여 보내었다. 이때 5,000명 이상이 미국 유학길에 올랐으며 4,000명이 단기 기술 연구원으로 미국에 가서 훈련받았고 10,000명의 군인에게 고등 군사 훈련원으로 미국 유학길을 열어주었다. 이러한 것이 제3공화국의 경제개발의 주축이 되었으며 경제개발을 위한 준비된 인력을 양성한 것이다.
이승만이 통치하던 1950년대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그저 빈곤에 시달리고 부패했던 시절로 폄하하기 쉽다. 또한 60년대 박정희 시대의 경제발전을 이야기할 때 1950년은 1960년대의 경제 개발을 빛내기 위한 보조 장치에 불과한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1950년대 이승만 정권의 준비와 축적이 없었다면 과연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경제 발전이 가능했을까? 1960년대 경제발전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이한우, 『거대한생에 이승만 90년 하권』, 조선일보사, 재인용
.
4. 이승만 박사의 어록 중에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1945. 10.16 귀국 후)
나는 항상 우리 민족의 자유를 얻고자 애써왔으며 어떻게 하면 자유롭게 여러 나라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오늘까지 싸워온 것입니다. (1945.10.20)
공산분자와 합동을 이루지 못하고는 통일이 될 수 없다 하는 이가 있다면 이는 곧 내 집에 불놓은 자와 함께 일하라는 말과 같으니 불놓는 사람이 주의(主義)를 그치기 전에는 합동할 수 없으며 그들이 그 주의(主義)를 그치기 전에는 합동할 수 없으며 그들이 그 주의를 고집할 동안에는 평안히 살 수 없는 터이다.(1946.3.4)
한편이 죽어 가는 몸을 살아있는 편이라도 완전히 살려서 죽은 편을 살리기를 꾀해야 할 것이다. (1948.3.1)
민주정체의 요소는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국민이나 정부는 항상 주의해서 개인의 언론과 집회와 종교와 사상 등 자유를 극력 보호하는 것입니다. (1948.8.15)
우리 사람들이 목숨을 희생해서 피로 싸워서 군사상 정치상 완전한 독립국가를 만들어 놓고 경제력이 충분치 못하면 경제상 남의 노예가 될 염려가 없지 않으니 경제발전에 분투매진 해야 될 것입니다. (1953.6.5)
5. 나오는 말
솔직히 인터뷰를 1시간여 생각하고 갔었는데, 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인터뷰에 응해 주신 이인수 박사님의 열정에 너무 놀랐다. 조금이나마 더 많은 얘기를 들려주고 싶어 하시던 이인수 박사님의 마음이 가슴에 너무 와 닿았다. 90분 분량의 녹음테이프밖에 준비하지 못해 녹음 기록에는 남아있지 않지만, 박사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가장 인상 깊었다. 우선 박사님은 사람을 만나면 꼭 물어보라고 하셨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느냐 안하느냐를 말이다. 대한민국을 부정한다면 그것은 진보가 아니라 반대한민국이라고 하셨다. 대한민국을 인정하는 체제에서 정책문제에 관한 진보와 보수는 괜찮지만, 반대한민국은 국가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양에 탈을 쓴 이리라고 하셨다. 정말 작은 것이지만, 여태까지 의식하지 않았던 정말 중요한 부분을 일깨워주신 것이다. 4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가 평가하는 이승만 대통령은 부정적인 평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국자였다. 20대에 가졌던 조국의 독립과 부흥이라는 꿈을 성취하기위해 그는 변함없이 애국자로 살았다. 그가 생각하는 조국의 독립은 주로 외교를 통한 방법이었는데 결국 그는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힘을 이용하여 조선의 독립과 대한민국 건국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건국함에 있어 반공을 토대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건설했으며 외교적 업적이나 인재 양성, 경제 발전을 위한 준비를 하였다. 주위에 공산주의자들과 대치하면서, 또한 전쟁으로 폐허된 대한민국을 복구하면서 우리민족이 추구했던 이상을 향하여 질주하여 성공한 나라가 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였다. 결국 남북의 대결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우리는 현재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그를 재조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도 할 수 있고, 작은 것을 가지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그의 업적을 크게 보아야 한다. 인터뷰 도중 이인수 박사님의 친구 분이 잠시 방문하셨다. 그때 그분이 하신 말씀이, “이승만 대통령은 하나님이야. 그분은 우리를 구원해 주셨어.”라고 하며 좀 과장된 표현을 하셨지만, 그 분 말씀에 따르면 정말 그 시대에는 글자를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쌀부대를 셀 때 일을(1) 작대기로 표시하였는데, 열이라고 기록할 때는 일이라는 작대기를 열 개를 그었다고 한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 시대는 그런 시대였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현재의 생각으로 그 시대를 상상 할 수 없듯이 내가 그 시대를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의 개인적 약점이나 빌미를 준 노년의 실패까지 옹호할 필요는 없지만, 대한민국의 기초를 이룬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은 재평가 되어야 한다. 또한 이번 기회를 통해 너무 많은걸 배울 수 있었다. 책과 논문을 통해 볼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생동감이 있었다. 책으로는 배울 수 없는 많은 것을 배웠다. 앞으로도 이런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의 내적인 성장을 기대한다.
※참고문헌
강만길, 『20세기 우리 역사』, 창비, 2005.
박지향 외,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책세상, 2006.
서중석,『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 역사비평가, 2005.
이인수, 『대한민국의 건국』, 도서출판 촛불, 2001.
유영익 편,『이승만 연구』,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0.
한승인, 『독재자 이승만』, 일월서각, 1984.

키워드

  • 가격1,6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2.09.12
  • 저작시기2014.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66863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