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과 친일파 청산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친일인명사전과 친일파 청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기서 우리는 남한에서 친일파 청산이 좌절된 것은 바로 미국의 점령정책에 궁극적으로 기원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친일파 청산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인가?◆
1. 1949년 6월 반민특위 와해와 1999년 8월제2의 반민특위발족
1949년 6월 6일부일협력자와 민족반역자를 처벌하기 위해 제헌국회 산하에 결성된 반민족행위처벌특별위원회가 종로경찰서의 습격으로 파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민족사적 측면에서는 친일파 청산을 위한 노력이 사실상 좌절되었으며, 정신사적 측면에서는 힘이 모든 것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대중에게 뚜렷하게 각인시켜주었으며, 헌정사적 측면에서는 국회, 나아가 헌법의 권위가 경찰이라는 국가권력의 도전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었다. 반민법이 무너진 것은 이 땅에서 친일파를 청산할 기회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친일파의 재생산구조가 탄탄해졌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1999년 8월 11일, 반민특위가 사라진 지 50년 만에 한국의 지성사회를 이끌어 가는 대학교수 1만 명이 제2의 반민특위를 만들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법적인 심판과 단죄는 이미 불가능해졌지만 20세기가 다 가기 전에 역사적 청산만은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한 것이다. 역사적인 심판서이자 교훈서가 될『친일인명사전』의 편찬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
『친일인명사전』편찬사업은 제2의 반민특위 활동이다. 그러나 50년 전에도 그랬듯이 이 사업을 방해하는 세력들은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만 해도 한 국립대학 미술학과 교수가 선배 교수들의 친일행위를 비판한 것 때문에괘씸죄에 걸려 재임용에서 탈락되었다. 방송국의 한 프로듀서가 33인의 민족대표에서 변절하여 일제의 밀정 노릇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을 추적한 것 때문에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이다. 친일파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그런데 친일파가 식민지 하에서 반민족행위를 하고 자신의 물질적 이득을 꾀했다면, 친일파의 문제는 과거 한국 역사의 치부로서 남는 데 머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친일파 문제가 거론되는 것은, 친일파가 해방 후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첫째, 친일파는 해방 후에 청산되기는커녕 일제 때보다 한 단계 차원이 높아져 지배층을 형성하였다. 그들은 권력 엘리트였고 사회 문화계, 경제계의 지도층이 되었다. 둘째, 친일파는 해방 직후부터 단정운동을 벌여 분단의 내적 요인을 이루었고, 분단체제의 지주로서 40여 년간 극우반공이데올로기로 민중을 억압하고, 민주주의 발전을 파괴한 반민주적 반통일 세력이었다. 셋째, 친일파는 해방 후에도 여전히 근대화 지상주의에 서서 종속적인 자본주의 발전을 꾀하였다. 그들의 해외 종속형 경제개발 모델은 내적으로는 친일, 매판 부르주아지를 모체로 한 재벌 편중의 경제 편성이었고, 어떠한 가치관이나 이념도 민족에게 제시할 수 없었다.
3. 친일파 청산 문제 바로 보기
친일파 청산 문제를 이해할 때는,나중에 태어난 자의 특권으로 앞 시대를 비판하지 말자는 것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즉만일 내가 그러한 처지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엄정한 가능성에서 출발하자는 것이다. 이럴 때 비로소 우리는 도덕적 심판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설 수 있으며, 친일 문제에 역사적으로 접근해 들어갈 수 있다.
여기에서 의미하는 것은 첫째, 과거의 당사자들에 대한 전면적인 도덕적 규탄은 그리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흔히 있는 일이지만, 당시의 상황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이유 때문에 자기 자신을 절대적 정의와 동일시하여 선대의 잘못을 비판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집단적 죄(우리 모두의 책임)라든가 시대적 상황으로 책임을 돌리는 주장 또한 잘못이라는 것이다. 죄는 역시 한 사람 한 사람 당사자의 문제이고, 분명히 드러난 부분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엄중히 처벌하거나 역사적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셋째, 과거의 정치적 판단상의 오류나 당시의 기회주의에 초점을 맞춰 비판하기보다 현재의 반성여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즉, 그 동안의 과정을 남김없이 고찰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일제 잔재 청산은 너무나 가시적인 차원에서 이뤄져 왔다. 이는 민족의식의 고양을 통해서가 아니라, 민족 감정의 차원에서 대중적 감상주의에 호소하는 형식에 머문 결과를 낳았다. 친일파의 지배구조를 청산하지 못하고서는 민족적 정통성 회복이나 민주화를 이룰 수 없다. 민주화의 기반 없이는 분단 극복 또한 머나먼 미래의 일일 뿐이다. 식민 잔재의 청산을 지향하는 정치적 체제와 지배층이 민주주의와 분단극복을 추진해야 올바른 식민 잔재의 완벽한 청산이 이뤄질 수 있다. 친일파 문제가 무엇이 잘못되었나를 기록하고 기억하게 하는 것은 역사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과제로서 뿐만 아니라 죄에 대한 책임을 되새기게 한다는 점에서 현재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 참고문헌
민족문제연구소,『한국근현대사와 친일파 문제』, 아세아문화사, 2000
김민철,『시론-지금 친일파 청산을 거론하는 이유』역사비평 2002 여름호, 역사문제연구소, 2002
한상범,『쟁점-21세기 민족문제와 일제잔재-친일파의 지배구조 청산』철학과 현실 제53권, 철학문화연구소, 2002
김민철,『민족 혁명의 불씨를 당길친일인명사전에 힘을!』월간 말 통권159호, 1999
정지환, 『해방 56년 특별기획/다시 친일파를 말한다-21세기 벽두에 친일파 논쟁을 제기하는 까닭』월간 말 통권 183호, 2001
강창일,『친일파의 형성과 그 논리』(http://www.ohmynews.com
)
민족문제연구소,『친일파 99인』
송건호 외,『해방전후사의 인식』1,한길사, 1989
길진현,『역사에 다시 묻는다』 삼민사, 1984
강정구,「해방 후 친일파의 재등장 구조」『친일파란 무엇인가』, 아세아문화사, 1997
김남식 외, 『해방전후사의 인식 5』 1989, 한길사.
인터넷 한겨레 http://www.hani.co.kr
민족문제연구소 http://www.banmin.or.kr
  • 가격1,6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2.09.27
  • 저작시기2012.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69512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