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교회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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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나라 교회의 문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이스라엘이 농경과 목축 사회였음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따라서 땅을 대여 받지 못한 노예, 어부, 물건을 만들어 파는 장인들.. 등은 십일조라는 율법의 의무에서 빠져있는 자들이다. 땅이 있어야 희년에(레 25:8-22) 맨 처음 대여 받았던 자의 자손이에게 땅을 되돌려주는 것이 가능해 지고(레 25:23-28, 민 27:6-11, 롯 4:1-12, 렘 32:8), 땅이 있어야 안식년(레 25:1-7)도 지킬 것이 아닌가? 또 땅이 있어야 그 소산물인 곡물과 과실과 굽이 갈리고 되새김질 하는 정결한 가축을 바칠게(레 25:30-33) 아니겠는가?
이런 이유로 한참 후대의 바리사이 해석자들은(υποκριτη 휘포크리테스 | 대답하는 사람, 해석자, 통역자, 배우, 연극배우, 위선자) 율법에서 빠진 이들 중 누구까지 십일조를 내야 되는지, 율법에서 빠져있는 이들 작물 중 어디까지 십일조를 해야 되는지 신학적으로 정립(Mishnah, 미쉬나 : 미쉬나는 대부분 기원 70-220년경에 생존한 랍비들의 토론에서 성립되어 있다. 이들의 율법적 토론은 점차로 집성되고, 탄나임으로서 알려지는 학자의계속적 노력에 의해 성문(成文)으로 되었다)하는데 논쟁하고 답하는 걸로 소일할 만큼 온 종일을 매진했다. 이런 해석자들의 연구를 모으고 편집하는 자가 바로 서기관들이다(γραμματευ 그람마튜스 | 서기, 필사자, 비서, 기록자, 성경에서는 모세의 율법과 성경을 배운 자, 해석자, 교사). 이들 모두에겐, 십일조의 본질을 이해하기 보다는 ‘십일조 할 것과 안할 것’을 결정짓는 세부조항의 확장이 더 중요했다. 연구하고 논의하며 가르치고 기록할 방향이 틀린 것이다.
~ ‘ταυτα | δε | [δε] | εδει ποιησαι κακεινα μη | αφειναι | αφιεναι | (타우타 | 데 | [데] | 에데이 포이에사이 카케이나 메 | 압헤이나이 | 압히에나이 |, | 그러나 | 이것들을 만들어서 할 의무가 있는 것도 | 내버릴 | 내버릴 | 것도 아니다)’, ~ ‘ταυτα δε εδει ποιησαι κακεινα μη παρειναι (타우타 데 에데이 포이에사이 카케이나 메 파레이나이, 그러나 이것들을 만들어서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지나쳐버릴 것도 아니다)’ (이것들은 만들어서 할 필요가 없고 이것들은 지나쳐버려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 지적하신 것이 바로 이것들에 관해서 이다.
박하(ηδυοσμον 헤뒤오스몬 | 달콤한 냄새, 박하), 양념(ανηθον 아네돈 | 아니스, 딜(향신료나 약재로 사용되는 식물)), 화향(κυμινον 퀴미논 | 회향, 쓰고 강한 맛과 향기로운 맛을 가진 씨를 가진 팔레스타인에서 재배되는 식물), 운향(πηγανον 페가논 | 운향풀, 약효를 지닌 약 60 cm(2 피트)정도의 관목), 모든 채소(παν λαχανον 판 라카논 ; λαχανον 라카논 | 풀, 채소). . . . . . 와(και) 판정(κρισι 크리시스 | 분리, 절단, 분할, 선택, 판정, 판결, 재판관의 단체, 정의)과 긍휼(ελεο 엘레오스 | 자비, 긍휼)과 확신(πιστι 피스티스 | 진리에 대한 확신, 믿음, 충성, 충실, 성실)과 하나님의 사랑(την αγαπην του θεου 텐 아가펜 투 데우 ; αγαπη 아가페 | 형제의 사랑, 애정, 선의, 사랑, 자비, 사랑의 제사) 이러한 것들(ταυτα 타우타 | 이것들, 이러한 것들) 중에서 ‘필요 없이 만들어서하고 있는 것과 무심히 지나치지 말아야할 것’을 구분하라는 것이다.
너희들이 만든 세부 조항(유전, 의문)으로 걸러낸(διυλιζω 디윌리조 | 여과하다, 거르다, 여과기를 통해 쏟다, 물기를 빼다) 티끌만한 날파리를(κωνωψ 코놉스 | 포도주를 발효시켜 증발시키는 포도주 각다귀 또는 모기붙이) 가지고(레 11:20-23, 신 14:19) 의미 없이 말장난할 필요(εδει 에데이 | 필요하다, 의무가 있다, 옳고 적합하다)도 없고(κακεινα μη 카케이나 메 ; κακεινο 카케이노스 | 그리고 그는, 그 역시 ; μη 메 | 아니다, 하지 않도록, ~도 아니다), 율법의 의미(본질)로 더 훨씬 무겁고 중한(βαρυ 바뤼스 | 무게가 무거운, (비유) 짐스러운, 엄한, 대단히 중요한, 잔인한) 낙타를(καμηλο 카멜로스 | 낙타) 너희는 잡아내지도 않았다(κακεινα μη 카케이나 메 ; κακεινο 카케이노스 | 그리고 그는, 그 역시 ; μη 메 | 아니다, 하지 않도록, ~도 아니다)함이니, 바리사이 해석자와 서기들의 재앙이다(ουαι 우아이 | 아아, 슬프도다, 화로다). 하찮은 양념들의 십일조에 대해 훈계당하는 사람들의 잘못이 아닌, 무지와 무감각과 어둠에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너희 소경된 인도자의(οδηγοι τυφλοι 호데고이 튑흘로이) 잘못을 혹독하게 질타하시니(마 7:3-5, 눅 6:39-42), 그렇게 박식하다 들먹거리던 율법사들이(νομικο 노미코스 | 법과 관련된 사람, 법에 정통한 사람, 신약에서는 모세의 율법 해석자나 교사) 욕으로(υβριζω 휘브리조 | 거만하다, 오만하게, 무례하게 행동하다, 거만하며 수치스럽게 행동하다, 나쁜 말로 상처를 입히다) 밖에 듣질 못한 것 아니겠는가(눅 11:45)?
십일조를 강요하면서도, 정작 옳은 선택(정의)과 올바른 믿음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하신 사랑을 내보일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자들에 대한 베품과 나눔을 무시해버린 저기 유대 바리사이들 보다 더 악랄하게 장성치 못한 코흘리개에게 조차도 십일조의 짐을 지우는(φορτιζω 프홀티조 | 짐을 얹다, 짐을 싣다, (관습과 부당한 교훈의)짐을 지우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
결국 오늘날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대부분의 교인들에게 문자적 해석을 내놓고, 율법적 흉내 내기 조항을 들이댄 눈먼 인도자들의 날파리식 십일조는, 과거 농경사회였던 유대공동체를 삼켜버린(καταπινω 카타피노 | 단숨에 들이키다, 삼키다, 게걸스레 먹다, 몽땅 없애다, 파괴하다) 것처럼 여기서도 그 위력을 떨칠 허상들 중 하나란 말인가? 미개한 이천년 전 바리사이보다 못한 지금을 어찌해야하나..
  • 가격3,000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8.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78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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