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 구조의 실재론을 피하기 위해서는 통계학적인 규칙성과 대수학적인 구조에서 이렇게 관찰된 질서의 생산 원칙, 즉 실천이론의 구성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은 사회구조를 실천적 발생의 원리로 보려는 이론적 구성이다. 아비투스와 장의 개념은 그의 이러한 발생론적 사회실천이론을 구제화하는 개념인 것이다.
부르디외는 자본을 단지 경제적 자본으로만 간주하지 않는다. 자본은 개인 물질적 부를 축적하는 수단만이 아니라 개인이 생활양식과 그 생활양식의 터전, 그리고 다른 생활양식과 맺는 관계까지 포괄한다. 가령 개인의 예술적 취미와 생산들은 문화적 자본으로, 개인의 학력, 혈통, 사교 등은 사회적 자본으로, 그리고 개인들의 생활양식과 터전이 다른 것들과 맺는 관계는 상징적 자본의 형태로 나타난다. 사회자본의 개념을 구성하는 것은 곧 이러한 특수한 종류의 자본이 축적되고 전이되고 재생산되는 논리를 분석하는 수단과, 어떻게 이 특수한 종류의 자본이 경제자본으로 변형되는지, 또 거꾸로 어떤 노동의 대가로 경제자본이 사회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수단과, 클럽 또는 아주 단순하게는 가족 등 이러한 종류의 자본이 축적되고 전이되는 중요한 장소와 같은 제도들의 기능을 파악하는 수단 등을 생산하는 것이다.
사실 부르디외의 주저작인 {실천이론의 윤곽}과 {구별짓기}는 개인의 아비투스와 장의 구조 속에서 상징자본과 문화자본이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설명한 것이다. 상징자본의 작동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르디외는 두가지 유의미한 작업을 시도했는데, 하나는 언어시장의 구조를 밝히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알제리의 '카빌레'(Kabyle) 사회의 일상생활 형태를 분석한 것이었다.
부르디외는 언어적 표현이란 언어적 아비투스와 언어시장이 결합된 것이라고 말한다. 즉 언어적 아비투스는 그것이 사회적 조건의 산물이라는 사실과 단순한 담론의 산출이 아니라 하나의 상황, 즉 어떤 시장이나 장에 맞추어 조정된 담론의 산출이다. 그런 점에서 언어적 아비투스는 촘스키적 '언어능력'과는 구별된다. 촘스키에 있어서 언어능력은 개인이 이미 타고난 언어적 자질을 말하는 것인데, 사실 언어능력은 어떤 상황에 의해서 구성된 것이다. 어떤 언어적 자질을 부여받아 언어적으로 용인가능한 상황에 이르는 것은 언어에 내재된 규칙뿐만 아니라 하나의 언어시장에 내재하고 있는 직관적으로 통제된 규칙에 단어들을 일치시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언어시장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담론을 평가하고 인정하며 그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수신자를 위해 담론을 산출할 때마다 존재한다.
언어시장은 대단히 구체적이면서도 동시에 대단히 추상적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그것은 다소 공식적이고 의례적인 일종의 사회적 상황이며, 하위의식적으로 지각되고 평가되며 무의식적으로 언어적 생산을 방향짓는 많은 특성들을 지닌 사회의 위계질서에서 어느 정도 상층부에 위치한 대화자들 전체이다. 추상적으로 보면 언어시장이란 언어적 생산에 대한 가격형성 법칙의 일정한 유형이다. 가격형성법칙이 있음을 상기하는 것은, 바로 개별적인 언어능력의 가치가 그것이 실현되는 개별적인 시장에 더 정확히 말해 서로 다른 생산자들의 언어적 생산물에 부여되는 가치가 정해지는 관계의 상태에 달려있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언어능력의 개념은 언어적 자산이란 개념으로 대치된다. 언어적 자산이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적 이윤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언어적 자산이란 언어적 가격형성의 메커니즘에 대한 지배력, 자신에게 이득이 되도록 가격형성 법칙을 작동시키고 특정한 잉여가치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이다.
부르디외는 언어적 자산을 소유해서 특정한 언어적 잉여가치를 추출해내는 힘이 바로 상징적 자본의 권력형태임을 보여준다. 그 일례로 부르디외는 베아른 시의 시장의 취임연설에 대해 언급한다. 새로운 베아른 시의 시장은 그 지방 출신인데, 그는 취임연설을 베아른어로 하면서 대중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부르디외는 중앙의 지배 엘리트가 하찮은 베아른어로 연설한 것이 바로 언어적 자산을 행사하는 상징적 권력의 전형적인 형태임을 지적한다. 즉 시장이 베아른어로 취임연설을 해서 대중들에게 감동을 준 것은 그가 표준 프랑스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다는 언어적 자본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베아른 지방의 농부가 베아른어로 말했다면 대중들은 특별한 감동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감동의 근원이 베아른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베아른어를 아주 특수하게 사용할 수 있는 지배 엘리트의 언어적 상징 자본 때문이다.
부르디외는 자본을 단지 경제적 자본으로만 간주하지 않는다. 자본은 개인 물질적 부를 축적하는 수단만이 아니라 개인이 생활양식과 그 생활양식의 터전, 그리고 다른 생활양식과 맺는 관계까지 포괄한다. 가령 개인의 예술적 취미와 생산들은 문화적 자본으로, 개인의 학력, 혈통, 사교 등은 사회적 자본으로, 그리고 개인들의 생활양식과 터전이 다른 것들과 맺는 관계는 상징적 자본의 형태로 나타난다. 사회자본의 개념을 구성하는 것은 곧 이러한 특수한 종류의 자본이 축적되고 전이되고 재생산되는 논리를 분석하는 수단과, 어떻게 이 특수한 종류의 자본이 경제자본으로 변형되는지, 또 거꾸로 어떤 노동의 대가로 경제자본이 사회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수단과, 클럽 또는 아주 단순하게는 가족 등 이러한 종류의 자본이 축적되고 전이되는 중요한 장소와 같은 제도들의 기능을 파악하는 수단 등을 생산하는 것이다.
사실 부르디외의 주저작인 {실천이론의 윤곽}과 {구별짓기}는 개인의 아비투스와 장의 구조 속에서 상징자본과 문화자본이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설명한 것이다. 상징자본의 작동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르디외는 두가지 유의미한 작업을 시도했는데, 하나는 언어시장의 구조를 밝히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알제리의 '카빌레'(Kabyle) 사회의 일상생활 형태를 분석한 것이었다.
부르디외는 언어적 표현이란 언어적 아비투스와 언어시장이 결합된 것이라고 말한다. 즉 언어적 아비투스는 그것이 사회적 조건의 산물이라는 사실과 단순한 담론의 산출이 아니라 하나의 상황, 즉 어떤 시장이나 장에 맞추어 조정된 담론의 산출이다. 그런 점에서 언어적 아비투스는 촘스키적 '언어능력'과는 구별된다. 촘스키에 있어서 언어능력은 개인이 이미 타고난 언어적 자질을 말하는 것인데, 사실 언어능력은 어떤 상황에 의해서 구성된 것이다. 어떤 언어적 자질을 부여받아 언어적으로 용인가능한 상황에 이르는 것은 언어에 내재된 규칙뿐만 아니라 하나의 언어시장에 내재하고 있는 직관적으로 통제된 규칙에 단어들을 일치시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언어시장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담론을 평가하고 인정하며 그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수신자를 위해 담론을 산출할 때마다 존재한다.
언어시장은 대단히 구체적이면서도 동시에 대단히 추상적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그것은 다소 공식적이고 의례적인 일종의 사회적 상황이며, 하위의식적으로 지각되고 평가되며 무의식적으로 언어적 생산을 방향짓는 많은 특성들을 지닌 사회의 위계질서에서 어느 정도 상층부에 위치한 대화자들 전체이다. 추상적으로 보면 언어시장이란 언어적 생산에 대한 가격형성 법칙의 일정한 유형이다. 가격형성법칙이 있음을 상기하는 것은, 바로 개별적인 언어능력의 가치가 그것이 실현되는 개별적인 시장에 더 정확히 말해 서로 다른 생산자들의 언어적 생산물에 부여되는 가치가 정해지는 관계의 상태에 달려있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언어능력의 개념은 언어적 자산이란 개념으로 대치된다. 언어적 자산이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적 이윤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언어적 자산이란 언어적 가격형성의 메커니즘에 대한 지배력, 자신에게 이득이 되도록 가격형성 법칙을 작동시키고 특정한 잉여가치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이다.
부르디외는 언어적 자산을 소유해서 특정한 언어적 잉여가치를 추출해내는 힘이 바로 상징적 자본의 권력형태임을 보여준다. 그 일례로 부르디외는 베아른 시의 시장의 취임연설에 대해 언급한다. 새로운 베아른 시의 시장은 그 지방 출신인데, 그는 취임연설을 베아른어로 하면서 대중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부르디외는 중앙의 지배 엘리트가 하찮은 베아른어로 연설한 것이 바로 언어적 자산을 행사하는 상징적 권력의 전형적인 형태임을 지적한다. 즉 시장이 베아른어로 취임연설을 해서 대중들에게 감동을 준 것은 그가 표준 프랑스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다는 언어적 자본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베아른 지방의 농부가 베아른어로 말했다면 대중들은 특별한 감동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감동의 근원이 베아른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베아른어를 아주 특수하게 사용할 수 있는 지배 엘리트의 언어적 상징 자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