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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斗煥) 정권의 불명예스러운 퇴진은 군부 권위주의
통치 하에서 성장한 민주주의의 힘을 웅변으로 보여주었다. 쿠데타는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하나의 웅대하고 처 절한 에피소드였다고 할 수 있다.
◆ 반(反) 5.16사건들
5.16 쿠데타 이후 발생한 대표적인 반(反)혁명사건은 쿠데타만큼이나 국민에게 충격을 줬던 「장도영(張都暎)사건」. 61년 10월 17일 혁명재판소가 발표한 공소장에 따르면 이 사건은 「장도영중 장 등에 의한 박정희소장 및 측근 제거 음모사건」이다. 쿠데타 직후 계엄사령관(부사령관은 박소장)과 이어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등에 임명됐던 장중장 은 박소장과 측근을 제거하고 혁명정부의 중추역할을 하고 있는 기구를 폐지하기 위해 세력들을 규합했다. 거사일은 7월 3일 새벽 2시. 2일 오후에는 사병들에게까지 실탄이 지급됐다. 장중장을 비롯한 반혁명세력 44명은 7월 3일 모두 체포됐으며, 장중장은 62년 1월 10일 혁명재판 소 제1심판소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5월 2일 박정희 당시 국가최고회의의장은 장중장의 형집행을 확인한 뒤 다시 형을 면제해줬다.
장도영사건에 이어 재판을 받게 된 반혁명사건은 장면(張勉)총리의 측근들이 주축을 이뤘던 「선우종원(鮮宇宗源) 한창우(韓昌愚)사건」. 이들이 민주당의 정권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당시 1군사령관이었던 이한림(李翰林)중장을 육참총장으로 임명, 혁명군을 격퇴시키려 했다는 내용이다. 61년 10월 「김동복(金東馥)사건」도 빼놓을 수 없는 반혁명사건. 별도의 최고회의를 구성, 민정복귀를 실현시키기 위해 전차대 동원까지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통치 하에서 성장한 민주주의의 힘을 웅변으로 보여주었다. 쿠데타는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하나의 웅대하고 처 절한 에피소드였다고 할 수 있다.
◆ 반(反) 5.16사건들
5.16 쿠데타 이후 발생한 대표적인 반(反)혁명사건은 쿠데타만큼이나 국민에게 충격을 줬던 「장도영(張都暎)사건」. 61년 10월 17일 혁명재판소가 발표한 공소장에 따르면 이 사건은 「장도영중 장 등에 의한 박정희소장 및 측근 제거 음모사건」이다. 쿠데타 직후 계엄사령관(부사령관은 박소장)과 이어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등에 임명됐던 장중장 은 박소장과 측근을 제거하고 혁명정부의 중추역할을 하고 있는 기구를 폐지하기 위해 세력들을 규합했다. 거사일은 7월 3일 새벽 2시. 2일 오후에는 사병들에게까지 실탄이 지급됐다. 장중장을 비롯한 반혁명세력 44명은 7월 3일 모두 체포됐으며, 장중장은 62년 1월 10일 혁명재판 소 제1심판소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5월 2일 박정희 당시 국가최고회의의장은 장중장의 형집행을 확인한 뒤 다시 형을 면제해줬다.
장도영사건에 이어 재판을 받게 된 반혁명사건은 장면(張勉)총리의 측근들이 주축을 이뤘던 「선우종원(鮮宇宗源) 한창우(韓昌愚)사건」. 이들이 민주당의 정권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당시 1군사령관이었던 이한림(李翰林)중장을 육참총장으로 임명, 혁명군을 격퇴시키려 했다는 내용이다. 61년 10월 「김동복(金東馥)사건」도 빼놓을 수 없는 반혁명사건. 별도의 최고회의를 구성, 민정복귀를 실현시키기 위해 전차대 동원까지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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