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장시키거나 소멸시키는 데 일조하는 치료약과 보조물로 간주할 수 있다. 그것은 항상 고통과 고통받는 자를 전제한다. 그러나 두 종류의 고통 받는 자가 있는데, 한쪽은 삶의 과잉충만으로 인해 고통받아 삶에 대해 비극적 통찰 및 견해뿐 아니라 디오니소스적인 예술을 갈망하는 그런 사람들이고, 다른 한 쪽은 삶의 빈곤화로 인해 고통 받는 바, 그들은 예술 및 철학에 대하여 고요, 정적, 잔잔한 바다를 또 다른 한편으로는 격앙, 발작 마비를 요구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삶 그 자체에 대한 복수는 그토록 빈곤한 이들에게 가장 도발적인 일종의 격동이다” 니체는 예술이나 철학 자체의 실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즉 그는 삶의 성장과 소멸에 도움을 주는 것이 예술 내지 철학의 임무로 보고 있다. 예술의 임무는 고통 받는 자의 자기 성찰을 요청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앞에서 니체가 일체의 가치의 전도를 주장했을 때 이미 예견된 바의 것이다. 즉 그가 “시각을 역전시키고 가치를 전도하며 완전성 및 풍부한 삶에 대한 자기 확신의 시각에서 데카당스적 본능의 비밀스러운 작업을 들여다 보았다”라고 했을 때 그가 꿈꾸었던 개념이다.
따라서 삶의 과잉충만으로 인해 고통받아 삶에 대해 비극적인 인식을 하는 자에게는 디오니소스적인 예술을 성취하게 하고 반대로 삶의 빈곤화로 인해 고통 받는 경우에는 고요와 격정의 변화 및 조화를 추구한다. 이런 경우 삶이 몰락해 가는 징조로서의 도덕과 가치관에 대한 부정과 혁신을 요구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니체의 데카당스 개념의 모더니티는 종래의 고정된 도덕과 가치의 부정과 절대적 생성(生成)의 욕구를 통해 새로운 예술과 철학 그리고 도덕의 창조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마르크스주의 비평에서 데카당스의 개념
데카당스라는 개념은 유물사관에서 광의의 의미로 사용되는 바 이는 지배계급의 쇠퇴, 부패, 불가피한 붕괴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그 몰락은 지배계급이 그들의 진보적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하지 못할 때 도래한다. 실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데카당스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으며 엥겔스는 위대한 예술가는 자신의 의식적 선택이 역사적 주류에 반하는 것이라도 위대하다는 글로 종종 인용될 뿐이다.20세기 초 이전 데카당스 개념은 마르크스주의 예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으며 최초로 논리적 이론을 전개한 사람은 철학자이자 비평가가인 플레하노프였다. 그는 <예술과 사회생활>이라는 에세이에서 낭만주의자들의 부르주아적 삶에 대한 적대감과 데카당한 부정론 사이에 역사적이고 직접적인 연결이 있다고 확신한다. 낭반주의자들과 신낭만주의자들은 실제로 부르주아들과 싸우려하지 않으며 따라서 데카당스는 표리부동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가정에는 모순이 있는데 데카당스를 죽어가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작가와 예술가들의 자유롭고 의식적인 반동적 선택의 결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는 나태한 데카당들은 부르주아를 멸시하는 듯 가장하면서 그들과 결탁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러한 플레하노프의 데카당스 이론은 이십년 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출현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도 유일한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기계적이자 환원적 이론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의 문화적 데카당스에 관한 소비에트의 이론은 데카당스와 모더니즘 그리고 아방가르드를 자의적으로 동일시하게 된다. 이후 어떤 공산주의 지식인들도 이 이상으로 공산주의나 데카당스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지 못하는데 데카당스에 대한 소비에트의 비난과, 모더니즘의 병든 예술에 대한 파시스트들의 거부사이에 큰 유사성이 있음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 후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데카당스의 함의에 대한 소비에트의 도그마를 재점검하도록 한 것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였고 여기서는 피셔가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예술>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큰 역할을 한다. 그는 모더니즘의 광범위한 현상들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혁신적 운동들이 더이상 데카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 속에서도 긍정적인 점을 발견하는데, 인상주의를 예로 들어 데카당스에서는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거부를 인지할 수 있으며 인상주의는 몰락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신선한 출발을 나타낸다고 얘기한다. 또한 상대적으로 자만에 찬 공허함과 뻔한 숭고성만을 지닌 나치예술이 오히려 구제불능의 데카당이라며 조롱한다. 그는 데카당스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파시스트 예술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스탈린주의적 번안 사이의 껄끄러운 평형관계와 양자의 유사성을 철저하게 의식한 것이다. 피셔도 같은 시기의 샤르트르와 마찬가지로 데카당스 개념은 어떠한 일반화를 통하여서는 잘못 이해되거나 부정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기에 매우 조심스럽게 국한하여 사용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예술이 이데올로기적이지 않은 한 그것은 데카당하다고 치부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마루크스주의는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을 비변증법적으로 사용하게 되고 그 결과 독창적인 어떠한 형태의 시도도 이러한 비변증법적인 전통 안에서 질식당하고 만다. 결국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칼 만하임에 의해 마르크스주의의 가능성은 재발견된다. 좌파 지식인에 비하여 우파 쪽에서는 보다 쉽게 이데올로기를 간파해 볼 수 있는데 한편으로 아도르노는 이러한 우파들의 이데올로기비판을 매우 간편하며 값싼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좌파와 우파에게 남용된 데카당스의 개념을 그의 철학서인 부정의 변증법으로 흡수하여 자신의 부정과 부정성에 대한 경해를 입증하려하는데 데카당스가 보다 나은 잠재력의 피신처일 수 있으며 유토피아의 숨겨진 힘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 지닌 냉혹한 부정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아도르노는 데카당스를 부정의 문화로 인식하면서 마르크스주의적이며 변증법족인 이데올로기 이론의 한계 내에서 미적 데카당스 개념을 재평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정확히 역사적 계기에 대한 표현에 해당하는 데카당스는 더 이상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해로운 표출로서가 아니라 반대로 그것에 대한 반동으로서 그 위기를 심도 있고 진정하게 인지한 결과로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삶의 과잉충만으로 인해 고통받아 삶에 대해 비극적인 인식을 하는 자에게는 디오니소스적인 예술을 성취하게 하고 반대로 삶의 빈곤화로 인해 고통 받는 경우에는 고요와 격정의 변화 및 조화를 추구한다. 이런 경우 삶이 몰락해 가는 징조로서의 도덕과 가치관에 대한 부정과 혁신을 요구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니체의 데카당스 개념의 모더니티는 종래의 고정된 도덕과 가치의 부정과 절대적 생성(生成)의 욕구를 통해 새로운 예술과 철학 그리고 도덕의 창조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마르크스주의 비평에서 데카당스의 개념
데카당스라는 개념은 유물사관에서 광의의 의미로 사용되는 바 이는 지배계급의 쇠퇴, 부패, 불가피한 붕괴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그 몰락은 지배계급이 그들의 진보적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하지 못할 때 도래한다. 실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데카당스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으며 엥겔스는 위대한 예술가는 자신의 의식적 선택이 역사적 주류에 반하는 것이라도 위대하다는 글로 종종 인용될 뿐이다.20세기 초 이전 데카당스 개념은 마르크스주의 예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으며 최초로 논리적 이론을 전개한 사람은 철학자이자 비평가가인 플레하노프였다. 그는 <예술과 사회생활>이라는 에세이에서 낭만주의자들의 부르주아적 삶에 대한 적대감과 데카당한 부정론 사이에 역사적이고 직접적인 연결이 있다고 확신한다. 낭반주의자들과 신낭만주의자들은 실제로 부르주아들과 싸우려하지 않으며 따라서 데카당스는 표리부동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가정에는 모순이 있는데 데카당스를 죽어가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작가와 예술가들의 자유롭고 의식적인 반동적 선택의 결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는 나태한 데카당들은 부르주아를 멸시하는 듯 가장하면서 그들과 결탁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러한 플레하노프의 데카당스 이론은 이십년 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출현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도 유일한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기계적이자 환원적 이론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의 문화적 데카당스에 관한 소비에트의 이론은 데카당스와 모더니즘 그리고 아방가르드를 자의적으로 동일시하게 된다. 이후 어떤 공산주의 지식인들도 이 이상으로 공산주의나 데카당스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지 못하는데 데카당스에 대한 소비에트의 비난과, 모더니즘의 병든 예술에 대한 파시스트들의 거부사이에 큰 유사성이 있음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 후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데카당스의 함의에 대한 소비에트의 도그마를 재점검하도록 한 것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였고 여기서는 피셔가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예술>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큰 역할을 한다. 그는 모더니즘의 광범위한 현상들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혁신적 운동들이 더이상 데카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 속에서도 긍정적인 점을 발견하는데, 인상주의를 예로 들어 데카당스에서는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거부를 인지할 수 있으며 인상주의는 몰락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신선한 출발을 나타낸다고 얘기한다. 또한 상대적으로 자만에 찬 공허함과 뻔한 숭고성만을 지닌 나치예술이 오히려 구제불능의 데카당이라며 조롱한다. 그는 데카당스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파시스트 예술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스탈린주의적 번안 사이의 껄끄러운 평형관계와 양자의 유사성을 철저하게 의식한 것이다. 피셔도 같은 시기의 샤르트르와 마찬가지로 데카당스 개념은 어떠한 일반화를 통하여서는 잘못 이해되거나 부정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기에 매우 조심스럽게 국한하여 사용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예술이 이데올로기적이지 않은 한 그것은 데카당하다고 치부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마루크스주의는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을 비변증법적으로 사용하게 되고 그 결과 독창적인 어떠한 형태의 시도도 이러한 비변증법적인 전통 안에서 질식당하고 만다. 결국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칼 만하임에 의해 마르크스주의의 가능성은 재발견된다. 좌파 지식인에 비하여 우파 쪽에서는 보다 쉽게 이데올로기를 간파해 볼 수 있는데 한편으로 아도르노는 이러한 우파들의 이데올로기비판을 매우 간편하며 값싼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좌파와 우파에게 남용된 데카당스의 개념을 그의 철학서인 부정의 변증법으로 흡수하여 자신의 부정과 부정성에 대한 경해를 입증하려하는데 데카당스가 보다 나은 잠재력의 피신처일 수 있으며 유토피아의 숨겨진 힘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 지닌 냉혹한 부정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아도르노는 데카당스를 부정의 문화로 인식하면서 마르크스주의적이며 변증법족인 이데올로기 이론의 한계 내에서 미적 데카당스 개념을 재평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정확히 역사적 계기에 대한 표현에 해당하는 데카당스는 더 이상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해로운 표출로서가 아니라 반대로 그것에 대한 반동으로서 그 위기를 심도 있고 진정하게 인지한 결과로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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