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암소 한 마리를 다 먹는 식당이라는 뜻이지요. 저는 원래 먹는 양이 적고 그런 곳은 처음인지라, 무척 당황했습니다. 정말 암소 한 마리를 다 먹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따라 들어갔더니, 소 골에서부터 소 족에 이르기까지 부분 부분을 다 끄집어 내서 전부 요리해 상에 차려놓고, 그것을 암소 한 마리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사랑해 주시는 권사님이 사 주시는 것이니 안 먹을 수도 없고, 이걸 먹어야 하나 하는 마음의 의문도 들었는데, 미국에 와서 공부 하다보니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이야기하고 있는 환경의 문제, 생태계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면, 사람들에게는 많은 욕구가 있지만, 특히 먹는 것에 대한 욕구는 대단한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먹는 것을 좋아하느냐 하면, 우리들은 땅에 기어다니는 것부터 하늘에 날아다니는 것까지 정력에 좋다고 하면, 남자들은 다 먹는 전통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한동안 지렁이가 몸에 좋다고 하니까 지네까지 다 잡아 먹었습니다. 개구리가 좋다고 하면 개구리를, 뱀이 남자 정력에 좋다고 하면 뱀의 씨를 말려버릴 정도로 다 잡아 먹어 버립니다. 먹는 것 갖고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그것들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 생태계와 어떤 연관을 갖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렁이를 다 잡아 먹어버리면 그것을 먹고 사는 개구리가 생존할 수 없고, 개구리를 다 잡아 먹어버리면 그것을 먹고 사는 뱀이 살 수 없고, 뱀의 씨를 말려버리면 마찬가지로 매와 독수리의 씨를 말리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인간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제가 지나치게 극단적인 예를 들었는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먹고 파괴하는 습관이 우리들에게는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양화를 자세히 살펴보시면,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동양화에는 커다란 산, 흐르는 물, 조그마한 집은 있지만, 사람은 어디 있는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서양화는 화폭의 거의 전부를 인물로 가득 채웁니다. 신학적인 언어로 표현해 본다면, 서구의 사상은 본래 인간 중심의 사상이요 신학이었습니다. 그러나 저희 동양의 사상은 인간 중심이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하늘과 땅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풍요로운 삶, 풍요로운 세상을 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나와 너가 분리되고 나와 자연이 분리되어, 나는 자연을 정복하고, 무조건 개발해야 하는, 주객분리라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서양 사람들의 머리 속에 계속 뿌리박혀 있었고, 그것이 기독교와 함께 우리에게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본래 우리들이 갖고 있던 사상은 물아일여(物我一如: 물질/세게와 내가 하나; 주객일치, 나와 너가 본래 하나)라는 지극히 성서적이며, 지극히 기독교적인 본래적인 사상이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오늘 박교수님이 발췌해 주신 모든 내용의 근본은 자연과 인간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려고 했던 데카르트 이후의 서양 철학이 기독교에 들어오고, 그것이 우리에게도 들어옴으로써 본래 자연과의 합일하고 자연에 돌아갈 수 있는 정신적 풍요로운 삶을 살았던 우리들을 많이 마비시켰다고 보고 싶습니다.
1972년 스톡홀름에서 처음으로 이 환경의 문제가 거론이 되었고, 1990년에 서울에서 열렸던 정의, 평화, 창조 질서의 보존대회와 1992년에는 브라질 리오의 세계환경회의에서는 지구 생태계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이제는 우리들이 그냥 인간으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온 우주와 지구와 함께 호흡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면, 사람들에게는 많은 욕구가 있지만, 특히 먹는 것에 대한 욕구는 대단한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먹는 것을 좋아하느냐 하면, 우리들은 땅에 기어다니는 것부터 하늘에 날아다니는 것까지 정력에 좋다고 하면, 남자들은 다 먹는 전통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한동안 지렁이가 몸에 좋다고 하니까 지네까지 다 잡아 먹었습니다. 개구리가 좋다고 하면 개구리를, 뱀이 남자 정력에 좋다고 하면 뱀의 씨를 말려버릴 정도로 다 잡아 먹어 버립니다. 먹는 것 갖고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그것들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 생태계와 어떤 연관을 갖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렁이를 다 잡아 먹어버리면 그것을 먹고 사는 개구리가 생존할 수 없고, 개구리를 다 잡아 먹어버리면 그것을 먹고 사는 뱀이 살 수 없고, 뱀의 씨를 말려버리면 마찬가지로 매와 독수리의 씨를 말리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인간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제가 지나치게 극단적인 예를 들었는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먹고 파괴하는 습관이 우리들에게는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양화를 자세히 살펴보시면,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동양화에는 커다란 산, 흐르는 물, 조그마한 집은 있지만, 사람은 어디 있는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서양화는 화폭의 거의 전부를 인물로 가득 채웁니다. 신학적인 언어로 표현해 본다면, 서구의 사상은 본래 인간 중심의 사상이요 신학이었습니다. 그러나 저희 동양의 사상은 인간 중심이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하늘과 땅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풍요로운 삶, 풍요로운 세상을 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나와 너가 분리되고 나와 자연이 분리되어, 나는 자연을 정복하고, 무조건 개발해야 하는, 주객분리라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서양 사람들의 머리 속에 계속 뿌리박혀 있었고, 그것이 기독교와 함께 우리에게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본래 우리들이 갖고 있던 사상은 물아일여(物我一如: 물질/세게와 내가 하나; 주객일치, 나와 너가 본래 하나)라는 지극히 성서적이며, 지극히 기독교적인 본래적인 사상이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오늘 박교수님이 발췌해 주신 모든 내용의 근본은 자연과 인간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려고 했던 데카르트 이후의 서양 철학이 기독교에 들어오고, 그것이 우리에게도 들어옴으로써 본래 자연과의 합일하고 자연에 돌아갈 수 있는 정신적 풍요로운 삶을 살았던 우리들을 많이 마비시켰다고 보고 싶습니다.
1972년 스톡홀름에서 처음으로 이 환경의 문제가 거론이 되었고, 1990년에 서울에서 열렸던 정의, 평화, 창조 질서의 보존대회와 1992년에는 브라질 리오의 세계환경회의에서는 지구 생태계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이제는 우리들이 그냥 인간으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온 우주와 지구와 함께 호흡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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