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문명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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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그리스 로마문명의 특징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초를 이루어 주었기 때문이다. 로마는 그리스의 문화를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그들 자신의 고유한 라틴적 요소를 가미하여 소위 유럽의 고전문화를 이룩한 것이다. 그리고 로마는 이 고전문화를 유럽역사에 이어줌으로써 서양역사의 흐름에 중요한 한 몫을 수행한 것이다. 세계종교인 기독교의 발판도 로마였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2) 로마문명의 발전적 배경
로마문화의 발전전 배경에는 다음 세가지가 있다.
첫째, 로마정신은 로마제국의 창조의 원동력이었다. 로마인와 그리스인을 비교해 보면, 그리스인는 배타적. 하나의 polis라는 개념이 그리스자체에만 속하는 협의적 개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반하여 로마인은 세계를 로마를 중심으로한 하나의 polis라는 개념을 로마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리스인은 그리스인과 비그리스인을 철저히 구별하는 배타적인 성격을 가진 반면, 로마인은 로마인과 비로마인의 구분을 하지 않는 개방적인 성격을 가졌다. 이런 면에서 로마인은 개방성 뿐만 아니라 실용성, 진취성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은 로마제국의 창조의 원동력이 된 것이었다.
둘째, 외형적인 요인으로 도로망의 정비를 들 수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군사적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도로망을 정비하였다. 그러나 로마는 상업적으로는 부분적인 입장만 취했을 뿐 여전히 농업 중심적인 사회였다.
셋째. 로마발전의 기본전제는 농업생활의 실천이었다. 로마의 경제사회의 중심은 농업에 있었다. 그러나 로마의 경제사회의 발전이 상공업, 기술혁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노예제를 바탕으로한 농업을 통한 것이었기 때문에 정복을 하지 못하면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 모순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3) 로마제국의 문화사적 역할
로마제국의 문화사적인 역할에는 다음 네 가지가 있다.
첫째, 로마는 그리스문화의 전달자, 계승자의 역할을 했다. 로마문화는 존재는 했으되 독창적이지 못하고 지속적이지 못했다. 처음부터 그리스문화의 지배를 받았다. 회랍어가 로마의 중심언어로 등장했으며 그리스 철학과 사상도 로마화한 것이었다.
Polybius는 「로마사」 에서 로마창조의 원동력이 무엇인가를 최초로 정치학적인 측명에서 규명하였는데, 그는 다름 아닌 그리스인으로써 로마사를 쓴 사람이었다. 그리스가 로마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고 지속적이었다.
둘째, 로마는 원시 기독교가 성립되어 헬레니즘과 함께 서양사상의 원류로 헤브라이즘이 자리잡게 했다. 기독교는 그리스적인 부분과 로마적인 부분으로 바뀌게 되었다.
셋째, 로마는 정치와 문화의 융합이라는 역할을 했다. 로마는 정치적인 안정성 덕분에 하나의 polis라는 측면에서 세계성을 추구했다. 로마는 질보다는 양적으로 끝없는 정복사업을 통해 문화를 계승,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넷째, 로마제국에서 취하고 있는 문명체계를 아랍에 물려주었다. B.C. 6세기 이후 마호멧 세력은 확대되어 나갔으며, 지중해 세력을 재패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비잔틴 문명, 마호멧 세력은 로마문명과 접하게 되었는데 분석적, 해석적, 웅용적인 그리스문화의 정수를 받아들여 발전시켰고 서유럽으로 전달하는 헬레니즘의 매개자의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면에서 로마제국의 역할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하겠다.
(4) 로마의 문화유산
로마는 군사적·무력적으로 그리스인을 정복했는데, 오히려 그리스 문화에 의해 정복당하고 말았다. 로마 문화는 독창적이지 못했고 그리스 문화의 계승자적인 역할을 했다. 로마의 문화유산으로 다음 네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최대의 문화사적인 업적은 강력한 정치체제인 로마공화정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둘째, 기독교를 로마인에 의해서 로마화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에 의해 로마문화는 서유럽까지 계승 ·전달되었다.
셋째, 인간성(humanitas)의 개념을 보편 타당한 원리로 로마인은 광범위하게 적용했다는 것이다. 로마의 세계적 정복의 원동력은 바로 평등·박애라는 인간성에 기인한 것이다.
넷째, 로마의 문화유산중 최대라 할 수 있는 것으로 로마법을 들 수 있다. 유구한 로마인의 정치과정을 통해 체계화, 효율적으로 적용되었다. 로마법의 영향은 지대하며 영속적이다.
(5) 로마법
로마의 유산 중 사장 위대한 것은 아마도 법률일 것이다. 광대한 영토와 국가통제의 필요에서 준법정신과 이로 인한 법률이 발달하게 되었다. 로마 최초의 성문법이 12동판법은 공화정 초기의 시민법(Jus Civile)으로서 로마시민의 권리와 의무가 들어 있다. 그러나 시민이 아닌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어 특권적이며 차별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포에니전쟁 후 영토가 넓어지고 여러 민족들이 로마에 복속하게 됨에 따라 시민법과 같은 차별적인 법률을 가지고서는 이들을 포섭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등장한 것이 모든 민족들의 특수성을 고려한 보편적인 법인 만민법(Jus Gentium)이었다. 그렇다고 위에서 말한 차별적인 요소가 온전하게 제거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후의 자연법(Jus Naturale)에 의해 인간의 본성과 존엄성의 강조로 해소되었다. 이 자연법사상은 물론 로마인에 의해 성취된 것이었으나 그 기원은 스토아철학의 세계주의적 경향과 평등사상으로까지 소급되며 이를 실제로 구체화한 것은 유명한 키케로였으며, 이것을 다시 자연법, 만민법, 시민법의 개념으로 정리한 것은 울피아누스(Ulpianus: 170~228) 등이었다.
<참고문헌>
서양 문명의 역사 I - E.M.번즈, R.러너, S.미첨, (1997년)
서양사의 이해 - 김진웅, 손영호, 정성화 공저, (1996년)
유물을 통해 본 세계사 - Harvey Rachlin (1997년)
그리스 국가 - Ehrenbering Victor, (1991년)
고대 그리스사 - Antony Andrews (1997년)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 -토마스 볼빈치(1989년)
로마 제국사 - 인드로 몬타넬리(1998년)
로마 제국 흥망사 - Edward Gibbon (1991년)
http://myhome. netsgo.com/ksn119/default.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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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9.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96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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