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회사의 일반적 상황과 로마와 기독교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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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기독교 교회사의 일반적 상황과 로마와 기독교의 관계

본문내용

힌 사람들의 단체인 그리스도인들" 이라는 표현했습니다.
타키투스는 그의 연대기에서 네로가 광적인 잔학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리스도인을 죽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세비우스도 네로의 '극단적인 광기' 때문에 그의 생모와 아내 , 수천명의 사람들을 죽였다고 했습니다. 다음 타기투스의 연대기에서 네로의 잔학성과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짐승의 가죽으로 싸서 개들에 의해 찢기우기도 하고 십자가에 못박혔다. 혹은 화형이 되어, 해진 후밤을 밝히는 일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네로는 그 광경을 위해 자신의 정원을 개방하고 자신은 기수의 복장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아니면 마차를 몰고 다녔고 그동안 서커스에스는 쇼가 공연되었다.
그러므로 가혹하고 본보기적인 형벌을 받기에 마땅한 범죄자들이라 할지라도 사람들 사이에 동정심이 생긴 것은 사실상 그 일이 공중의 선을 위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광적인 잔학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2.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박해 (161~180)
'명상록의 저자'이며 스토아 철학의 대변자인 아우렐리우스는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인 경향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아첨자들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를 참혹하게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채찍에 맞아 온 몸이 찢어져 유혈이 낭자했으며 속살이 드러나고 창자까지 밖으로 터져나왔습니다. 온갖 종류의 고문을 받은 뒤에 사나운 짐승의 밥으로 던져졌습니다. 박해의 강도가 점점 심해졌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갖은 고문과 박해속에서 자신들의 신앙을 지켰습니다.
이 박해로 인해 게르마니투스라는 독실한 청년이 순교했습니다.
지방 총독의 간곡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힘을 얻어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에 대한 본성적인
두려움을 극복하였습니다.
게르마니쿠스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사나운 짐승의 밥이 되어 마침내 이 불의한 세대로부터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박해는 시간이 흐르면서 강화되었고 마르쿠스 아우레릴우스 황제치하에 폴리갑이 서머나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그의 순교의 기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총독은 그에게 "맹세하시오. 그러면 당신풀어 주겠소. 그리스도를 비난하시오." 라고 재촉했습니다. 폴리갑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86년동안 그분을 섬겨왔는데 그동안 그분은 한번도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이제까지 섬겨온 나의 왕 그리스도를 모독할 수 있겠습니까?"
이윽고 화형을 위해 마련된 도구들이 그에게 정착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를 큰 못으로 말뚝에 고정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를 이대로 두시오. 나에게 화형을 견뎌낼 힘을 주실 분께서는 당신들이 못을 박지 않아도 장작더미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견딜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니님이시여! 당신께서 오늘 이 시간 나로 하여금 순교자의 반열에, 그리고 그리스도의 잔에 참여하게 하시어 내 몸과 영혼이 성령의 썩지않는 축복속에서 영생의 부활을 얻기에 합당하다고 여기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나는 신실하고 참되신 하나님이신 당신께서 예비하시고 계시하시고 이루신 풍성하고 가납될 만한 제물로서 당신이 보시는 앞에서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 모든 일을 인하여 당신의 사랑하는 독생자 영원한 대제사장을 통하여 당신을 찬양하고 감사드리며 영광을 돌리나이다. 성부 성자 성령께 이제부터 영원히 영광이 있을지어다. 아멘."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통치기간인 177년 심한 박해가 고울지방에서 일어았으며, 이후 250년까지 박해가 간헐적으로 계속되었다.
그후 막시미누스 통치 3년후에 간헐적으로 진행된 박해 이 후 평화가 잠시 도래하였습니다. 박해가 중단된 기간은 복음전파를 위한 기회가 되어 3세기 50년동안 수천명의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고 공동체는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3. 데시우스 칙령과 전국적인 박해 (249~251)
데시우스 황제 아래서 기독교가 그 때까지 직면했던 박해 가운데 가장 혹독한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250년 데시우스 황제는 지방관료와 행정관들에게 정해진 날에 필요한 장소에서 제사를 총괄하도록 명령을 내렸고, 제사를 드린 사람들에게 제사 증명서인 리벨루스를 발급하였습니다. 데시우스의 명령앞에 교인들은 순응, 타협, 거부, 도피 중 하나를 택해야 했습니다. 이 때 로마 교회 감독 코르넬리우스, 예루살렘의 감독 알렉산더, 안디옥의 감독 바빌라스가 순교했습니다.
4. 디오클레티안 황제 박해 (284~305)
디오클레티안이 황제는 이교도이자 기독교를 미워한 그의 모친 영향을 받아 교회에 박해를 가해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에 칙령을 내려 교회들을 부수고, 성경을 불태우며, 신자들의 직책들을 박탈하고, 성직자들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이 기간동안에도 상당히 많은 그리스도인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니코메디아에 교회를 박해하는 황제의 칙령이 발표되자, 훌륭한 가문 출신이며 직위도 존경을 받던 사람이 거룩한 열정과 뜨거운 믿음으로 인해 분기하여 나붙은 칙령을 떼어내어 조각내 버렸습니다. 그 일은 모든사람에게 알려졌으며 대담한 행동을 한 그 사람은 영혼이 떠나는 순간까지 평정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5. 갈레리우스 황제 박해 (305~311)
디오클레티안 사위 갈레리우스 황제도 사정없이 교회를 핍박하였으나 8년이 되던해부터 박해를 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태도가 바뀐 것은 그의 중병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몸에는 종양이 생기며, 창자속이 곪게 되었으며 그의 몸에는 지독한 악취가 나게 되었습니다.
투병이 계속되면서 갈레리우스 황제는 자신이 경건한 사람들을 대적하여 범한 죄에 대한 가책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황제는 먼저 자신을 돌이켜 반성하면서 무엇보다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자백하게 되었습니다. 갈레리우스는 자신의 병이 기독교를 핍박했기 때문에 왔다는 기독교인들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즉시 기독교 박해를 중지하라는 칙령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이 칙령가운데에는 기독교인들은 서둘러 교회를 재건하여 예배를 드리며 제국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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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46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0.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00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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