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요약 및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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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요약 및 서평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난폭하게 대한 심판이라고 고백하고 죽었다. 이후 그를 지지하던 모든 사람들이 살해 되었고, 총애받던 통치자들이 모두 살해되었다. 퓨세티우스, 쿨키아누스, 데오텍누스 등이 그들이다.
제 10권
교회와 성도와 모든 백성들은 폭군의 압제에서 해방되었다. 이들은 나름대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경건한 자들의 보호자이심을 인정했다. 모든 도시에서 새로이 건축된 기도의 집을 헌당하는 광경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콘스탄틴 황제와 리시니우스 황제는 기독교를 보호하고 그 권위를 회복하는 칙령들을 발표하였고, 황제가 교회에 돈을 하사한다는 내용의 서신도 기록되었다. 또한 황제는 교리를 변조하려는 세력을 제압하도록 명령을 내린 사실을 교회에 통보했다. 또한 교회의 성직자들에게는 정치적 일에 있어서의 국가에 대한 봉사를 면제해 준다는 명령을 내렸다.
주님의 거룩하고 은혜로운 일이 진행되는 데 관여했던 리시니우스는 온전한 이성을 갖지는 못했었던 관계로 근친 결혼을 하는 것 외에 우상을 섬기는 등 사악한 행동을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콘스탄틴에게 그의 신앙의 열매들, 즉 악인들을 정복하여 이긴 승리의 기념비를 하늘로부터 주셨다. 그는 광포한 행동을 하는 리시니우스를 대항하여 하나님을 조력자로 모시고 쉽게 승리하였다. 리시니우스는 절벽 아래로 내려쳐지고, 승리한 콘시탄틴과 경건한 그의아들 크리스푸스 가이사는 굳건하게 제국을 다스리게되었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깨닫게 되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모든 역사를 주관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늦지 않는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나님은 온전히 모신 자녀들로 인해 한껏 복을 받은 세상의 모습이란. 모든 사건의 원인은 내 속에 있다. 내 속의 믿음이 온전할 때 온 세상이, 온 우주가 온전하다. 세상이 힘들고 무겁게 느껴질 때 이미 그 먼저 약해지고 병들어 버린 내 믿음이 원인이 아닌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오직 선만을 이루는, 하나님죽기까지 사랑하고, 그러므로써 하나님께서도 끝까지 버리시지 않고 하늘나라에 불러들이시는, 그 하나님의 자녀,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면 이 세상은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비록 바람이 불고 캄캄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슬프지 않고 두렵지 않은, 그래서 살 만한, 감사할 만한, 충분히 견디어 낼 수 있을 만한, 그리고 넉넉히 이길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는 일들만이 있는 세상일 것이다. 감사와 찬송과 영광이 계속 하나님께 드려지는 세상이 될 것이다.
Ⅱ. 서평
지혜로운 프란시수스 오게리우스에 의하면, 팔레스틴 사람 유세비우스 팜필루스는 안디옥 교회의 장로였던 내시 도로테우스(Dorotheus)와 트리테미우스의 제자였다. 가이사랴에서 성직을 맡는 계기로 절친해진 가이사랴 교회의 유명한 장로 팜필루스와의 우정으로 유세비우스는 팜필루스라는 이름을 취하게 되었다. A.D.315년 복음적 논증과 준비라는 책들을 저술할 무렵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였던 아리우스를 중심으로하는 이단파문이 있었고 급기야 니케아 종교회의가 소집되었다. 유세비우스는 이러한 분쟁속에 하나의 신조를 제안하여 감독들과 황제는 약간의 부족부분을 보충하는 문구와 신성을 모독하는 자들에 대한 저주만을 첨가하여 그의 신조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잠시 잠잠하던 아리우스파의 음해공작으로 330년 안디옥의 감독 유스타티우스가 해임되었다. 이어 아리우스파는 아타나시우스를 공격하여 황제에게 기소하였다. 황제는 저의를 가진 고소에 지쳐 두로에 공의회를 개최하여 아타나시우스에게 출두를, 유세비우스에게 판사를 명하였다. 결국 공회가 해산되기는 했지만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콘스탄틴 황제는 유세비우스를 사랑하게 되었다. 유세비우스의 설교는 매번 황제를 감동시켰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콘스탄틴 황제가 세상을 떠난 후 얼마 되지 않은 A.D.340년 그는 사망하였다.
팜필루스가 투옥되어 있는 동안 그와 함께 유세비우스는 오리겐을 옹호하는 책을 썼고 (총 6권), 아폴로니우스 티아네우스가 그리스도보다 더 위대하다고 주장하는 히에로클레스를 반박하는 글도 썼다. 연대기, 교회사는 그의 주요 저서이다. 또한 자신의 신앙을 묘사하거나 특정 위인을 옹호하는 글들을 많이 썼고, 황제를 감동시키며 진상되었던 부활절에 관한 글,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와 그곳에 헌납된 선물들에 대해 묘사한 책. 그리고 그가 아리우스파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De Ecclesiastica Theologia.등의 저서외에 수많은 저서들이 있고, 무엇보다도 그의 걸작은 교회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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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0.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0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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