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를 읽고 요약 정리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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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유사를 읽고 요약 정리하시오.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 론
삼국유사 해제
2. 본론
삼국유사(三國遺事) 요약
첫머리
만파식적
순도조려
황룡사 장육
양지사석
밀본최사
월명사 도솔까
신충괘관
손순매아 흥덕왕대
3. 결론

본문내용

에서도 존중되는 덕목이라는 것과 불교적인 선과 연결되는 것이 더욱 값지다는 점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손순매아 흥덕왕대
손순은 모량이 사람이니 아버지는 학산이다. 아버지가 죽자 아내와 함께 남의 집에 품을 팔아 양식을 얻어 늙은 어머니를 봉양했는데 어머니의 이름은 운오였다. 손순에게는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항상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니, 손순은 민망히 여겨 그 아내에게 말했다. "아이는 다시 얻을 수가 있지만 어머니는 다시 구하기 어렵소. 그런데 아이가 어머님 음식을 빼앗아 먹어서 어머님은 굶주림이 심하시니 이아이를 땅에 묻어서 어머님 배를 부르게 해드려야겠소." 이에 아이를 업고 취산 북쪽들에 가서 땅을 파다가 이상한 석종을 얻었다. 부부는 놀라고 괴이히 여겨 잠깐 나무 위에 걸어 놓고 시험 삼아 두드렸더니 그 소리가 은은해서 들을 만하다.
아내가 말했다. "이상한 물건을 얻은 것은 필경 이 아이의 복인 듯싶습니다. 그러이 이아이를 묻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남편도 이 말을 옳게 여겨 아이와 석종을 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종을 들보에 매달고 두드렸더니 그 소리가 대궐에 까지 들렸다.
흥덕왕이 이 소리를 듣고 좌우를 보고 말했다. "서쪽들에서 이상한 종소리가 나는데 맑고도 멀리 들 리는 것이 보통 종소리가 아니니 빨리 가서 조사해 보라." 왕의 사자가 그 집에 가서 조사해보고 그 사실을 자세히 아뢰니 왕은 말했다. "옛날 곽거가 아들을 땅에 ane자 하늘에서 금 솔을 내렸더니, 이번에는 손순이 그 아이를 묻자 땅 속에서 석종이 솟아나왔으니 전세의 효도와 후세의 효도를 천지가 함께 보시는 것이로구나." 이에 집 한 채를 내리고 해마다 벼50석을 주어 순후한 효성을 숭상했다. 이에 손순은 예전에 살던 집을 희사해서 절로 삼아 홍효사라 하고 석종을 모셔 두었다.
진성왕 때에 후백제의 횡포한 도독이 그 마을에 쳐들어와서 종은 없어지고 절만 남아있다. 그 종을 얻은 땅을 완호평이라 했는데 지금은 잘못 전하여 지량평이라고 한다.
3. 결론
이와 같이 권1에 <왕력(王曆)> 제1과 <기이(紀異)> 제1을, 권2에 <기이> 제2를, 권3에 <흥법(興法)> 제3과 <탑상(塔像)> 제4를, 권4에 <의해(義解)> 제5를, 권5에 <신주(神呪)> 제6과 <감통(感通)> 제7과 <피은(避隱)> 제8 및 <효선(孝善)> 제9를 각각 수록하고 있다. <왕력>은 연표(年表)로서, 난을 다섯으로 갈라 위에 중국의 연대를 표시하고, 아래로 신라·고구려·백제 및 가락(駕洛)의 순으로 배열하였으며, 뒤에는 후삼국(後三國), 즉 신라·후고구려·후백제의 연대도 표시하였는데 《삼국사기》 연표의 경우와는 달리 역대 왕의 출생·즉위·치세(治世)를 비롯하여 기타 주요한 역사적 사실 등을 간단히 기록하고, 저자의 의견도 간간이 덧붙여 놓았다. <기이>편에는 그 제1에 고조선 이하 삼한(三韓)·부여(扶餘)·고구려와 통일 이전의 신라 등 여러 고대 국가의 흥망 및 신화·전설·신앙 등에 관한 유사(遺事) 36편을 기록하였고, 제2에는 통일신라시대 문무왕(文武王) 이후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敬順王)까지의 신라 왕조 기사와 백제·후백제 및 가락국에 관한 약간의 유사 등 25편을 다루고 있다. <흥법>편에는 신라를 중심으로 한 불교 전래의 유래와 고승(高僧)들에 관한 행적을 서술한 7편의 글을, 다음의 <탑상>편에는 사기(寺記)와 탑·불상 등에 얽힌 승전(僧傳) 및 사탑(寺塔)의 유래에 관한 기록을 30편에 나누어 각각 실었다. <의해>편 역시 신라 때 고승들의 행적으로 14편의 설화를 실었고, <신주>편에는 밀교(密敎)의 이적(異蹟)과 이승(異僧)들의 전기 3편을, <감통>편에는 부처와의 영적 감응(感應)을 이룬 일반 신도들의 영검이나 영이(靈異) 등을 다룬 10편의 설화를 각각 실었으며, <피은>편에는 높은 경지에 도달하여 은둔(隱遁)한 일승(逸僧)들의 이적을 10편에 나누어 실었다. 마지막 <효선>편은 뛰어난 효행 및 선행에 대한 5편의 미담(美談)을 수록하였다.
이처럼 《삼국유사》의 저술은 저자가 사관(史官)이 아닌 일개 승려의 신분이었고, 그의 활동 범위가 주로 영남지방 일원이었다는 제약 때문에 불교 중심 또는 신라 중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북방계통의 기사가 소홀해졌으며, 간혹 인용 전적(典籍)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을 뿐더러, 잘못 전해지는 사적을 그대로 모아서 수록한 것도 눈에 뜨이나, 그것은 《삼국유사》라는 책명(冊名)이 말해 주듯이 일사유문적(逸事遺聞的) 기록인 탓에 불가피한 일이었다 하겠으며, 당시의 민속·고어휘(古語彙)·성씨록(姓氏錄)·지명 기원(地名起源)·사상·신앙 및 일화(逸話) 등을 대부분 금석(金石) 및 고적(古籍)으로부터의 인용과 견문(見聞)에 의하여 집대성해 놓은 한국 고대 정치·사회·문화 생활의 유영(遺影)으로서 한민족(韓民族)의 역사를 기록한 일대 서사시(敍事詩)라 할 수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편찬에 있어 유교의 합리주의적 사고(思考) 또는 사대주의 사상으로 말미암아 누락시켰거나, 혹은 누락되었다고도 보여지는 고기(古記)의 기록들을 원형대로 온전히 수록한 데에 오히려 특색과 가치를 지니며, 실로 어느 의미에서는 정사(正史)인 《삼국사기》 이상의 가치를 지닌 민족사의 보전(寶典)이라 일컬을 만하다.
《삼국유사》의 신간본(新刊本)으로는 1908년 간행된 일본 도쿄대학 문학부[東京大學文學部]의 사지총서본(史志叢書本)이 가장 오래된 것이고, 조선사학회본(朝鮮史學會本)과 계명구락부(啓明俱樂部)의 최남선 교감본(校勘本) 및 그의 증보본(增補本)이 있으며, 그 밖에 1921년 안순암(安順庵) 수택(手澤)의 정덕본을 영인(影印)하여 일본 교토대학 문학부 총서[京都大學文學部叢書] 제6에 수록한 것과 고전간행회본(古典刊行會本)이 있다. 8·15광복 후로는 삼중당본(三中堂本), 1946년 사서연역회(史書衍譯會)에서 번역하여 고려문화사(高麗文化社)에서 간행한 국역본(國譯本), 이병도(李丙燾)의 역주본(譯註本) 등 여러 가지가 있고, 동서문화센터의 이학수(李鶴洙) 영역본(英譯本)과 1954년 《역사학보(歷史學報)》 제5집의 부록으로 이홍직(李弘稙)의 삼국유사 색인이 발간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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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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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0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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