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혁주의(改革主義)
2. 개혁주의의 사상적 특징
3. 한국교회와 개혁주의
2. 개혁주의의 사상적 특징
3. 한국교회와 개혁주의
본문내용
세력에도 내어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개혁주의자는 믿는다. 이것이 바로 일반사회에서 사회악과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위범(違 犯)에 대하여 무관심할 수 없다는 이유가 된다.
우리는 임신중절의 그 무서운 악, 도처에서 볼 수 있는 도덕적 부패, 권력에 짓밟힌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 약하고 무력한 사람들에 대한 핍박에 대하여 반대하는 것이다. 분명히 사회변혁은 어떠한 의미에 있어서도 복음의 선포와 개인의 중생에서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해서는 안된다든가, 복음을 증거하지 않거나,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거나, 비전을 가지지 않거나, 또는 부흥과 개혁이 늦어지는데도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교훈적 의지를 수행하도록 부름받지 않은 자처럼 생각한다든가 하는 것은 매우 큰 잘못이다.
만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속해있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마치 하나님에 대해 자신의 의무를 혼자 수행할 수 있는 것처럼 크리스챤이 자기 혼자만 살아가는 개인으로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인 신앙의 삶에서 타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은 그 특성이 악하고, 또한 온 세상이 악한 자 안에 처해 있으나(요일5:19), 우리는 세상을 대항하여 싸우는데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개혁주의 신자들은 폭군에게 도전했고 또한 그들을 넘어뜨렸다.
낫소의 윌리엄, 오랜지공, 존 낙스, 존 파임, 올리버 크롬월, 리쳐드 카메론, 스코틀랜드의 언약론자들, 그리고 존 위더스푼(William of Nassau, the Prince of Orange, John Knox, John Pym, Oliver Cromwell, RichardCameron, the Scottish Covenanters and John Witherspoon), 등 이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우리의 유산이며, 이 세상에서 어떻게 크리스챤으로 살아가며, 어떻게 신앙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우리는 그들에게서 배우게 된 것이다. 우리는 어두움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폭군의 광포도 우리에게 공포를 주지 못한다. 우리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니 어째서 무서워하겠는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
이와같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계11:15)하게 될 그 날을 향하여 열심히 일해야 할 것이다.
3. 한국교회와 개혁주의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은 정확히 말해서 유럽의 칼빈주의(개혁주의)와 영국과 미국의 청교도 사상이 웨스트민스터 표준에 구현된 신학이다. 이 신학은 칼빈주의적 영미 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에 전래되어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이 되었다. 그리하여 한국장로교회는 웨스트민스터 표준을 교의와 규례의 표준으로 채용함으로써 청교도적 개혁주의 신학의 교회가 된 것이다(박형룡,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 신학지남, 제43권 3집, 1976. P. 11 참조).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의 권위를 출발점으로 하고, 칼빈주의 5대 교리, 문화적 명령, 그리스도인의 삶 등으로 전개된 개혁주의, 여기에 독특한 신학적 특징들이 가미되어 이루어진 청교도주의 등이 한국장로교 신학의 전통이 된 것이다.
1885년 4월 5일 미국북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H. G. Underwood) 목사가 한국에 온 이래 1938년까지의 한국교회는 매우 강한 개혁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 들어와서는 자유의 바람이 일기 시작하였고, 1938년 9월에는 신사 참배 결의라는 일대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1945년 해방을 맞으면서 한국장로교회는 대열을 재정비하고 개혁주의 수호와 발전을 위해 박차를 가하였으나, 6.25 동란, WCC 운동, 교단의 분열 등 원하지 않는 일들이 계속 발생하여 개혁주의 신학성장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였다.
한국에서의 칼빈연구 100년(이상규, 개혁주의 신행협회, 1985)에서 볼 수 있는 대로, 1924년 칼빈이 처음 소개된 이래 1984년까지 60년동안 칼빈의 저서 번역, 칼빈에 관한 저술, 논문 등을 모두 합쳐 240편밖에 나오지 않은 사실을 미루어 보더라도, 스스로의 노력도 부족했거니와 외적 여 건에도 상당한 지배를 받은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후 칼빈 주석 전질과 기독교강요가 번역되고, 칼빈에 관한 저서, 논문들이 상당한 양으로 출판, 또는 각 신학지에 게재된 것을 보면 아직도 한국교회의 개혁주의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임신중절의 그 무서운 악, 도처에서 볼 수 있는 도덕적 부패, 권력에 짓밟힌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 약하고 무력한 사람들에 대한 핍박에 대하여 반대하는 것이다. 분명히 사회변혁은 어떠한 의미에 있어서도 복음의 선포와 개인의 중생에서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해서는 안된다든가, 복음을 증거하지 않거나,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거나, 비전을 가지지 않거나, 또는 부흥과 개혁이 늦어지는데도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교훈적 의지를 수행하도록 부름받지 않은 자처럼 생각한다든가 하는 것은 매우 큰 잘못이다.
만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속해있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마치 하나님에 대해 자신의 의무를 혼자 수행할 수 있는 것처럼 크리스챤이 자기 혼자만 살아가는 개인으로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인 신앙의 삶에서 타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은 그 특성이 악하고, 또한 온 세상이 악한 자 안에 처해 있으나(요일5:19), 우리는 세상을 대항하여 싸우는데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개혁주의 신자들은 폭군에게 도전했고 또한 그들을 넘어뜨렸다.
낫소의 윌리엄, 오랜지공, 존 낙스, 존 파임, 올리버 크롬월, 리쳐드 카메론, 스코틀랜드의 언약론자들, 그리고 존 위더스푼(William of Nassau, the Prince of Orange, John Knox, John Pym, Oliver Cromwell, RichardCameron, the Scottish Covenanters and John Witherspoon), 등 이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우리의 유산이며, 이 세상에서 어떻게 크리스챤으로 살아가며, 어떻게 신앙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우리는 그들에게서 배우게 된 것이다. 우리는 어두움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폭군의 광포도 우리에게 공포를 주지 못한다. 우리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니 어째서 무서워하겠는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
이와같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계11:15)하게 될 그 날을 향하여 열심히 일해야 할 것이다.
3. 한국교회와 개혁주의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은 정확히 말해서 유럽의 칼빈주의(개혁주의)와 영국과 미국의 청교도 사상이 웨스트민스터 표준에 구현된 신학이다. 이 신학은 칼빈주의적 영미 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에 전래되어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이 되었다. 그리하여 한국장로교회는 웨스트민스터 표준을 교의와 규례의 표준으로 채용함으로써 청교도적 개혁주의 신학의 교회가 된 것이다(박형룡,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 신학지남, 제43권 3집, 1976. P. 11 참조).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의 권위를 출발점으로 하고, 칼빈주의 5대 교리, 문화적 명령, 그리스도인의 삶 등으로 전개된 개혁주의, 여기에 독특한 신학적 특징들이 가미되어 이루어진 청교도주의 등이 한국장로교 신학의 전통이 된 것이다.
1885년 4월 5일 미국북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H. G. Underwood) 목사가 한국에 온 이래 1938년까지의 한국교회는 매우 강한 개혁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 들어와서는 자유의 바람이 일기 시작하였고, 1938년 9월에는 신사 참배 결의라는 일대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1945년 해방을 맞으면서 한국장로교회는 대열을 재정비하고 개혁주의 수호와 발전을 위해 박차를 가하였으나, 6.25 동란, WCC 운동, 교단의 분열 등 원하지 않는 일들이 계속 발생하여 개혁주의 신학성장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였다.
한국에서의 칼빈연구 100년(이상규, 개혁주의 신행협회, 1985)에서 볼 수 있는 대로, 1924년 칼빈이 처음 소개된 이래 1984년까지 60년동안 칼빈의 저서 번역, 칼빈에 관한 저술, 논문 등을 모두 합쳐 240편밖에 나오지 않은 사실을 미루어 보더라도, 스스로의 노력도 부족했거니와 외적 여 건에도 상당한 지배를 받은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후 칼빈 주석 전질과 기독교강요가 번역되고, 칼빈에 관한 저서, 논문들이 상당한 양으로 출판, 또는 각 신학지에 게재된 것을 보면 아직도 한국교회의 개혁주의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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