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과 남북통일에 대한 시사점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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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일 통일과 남북통일에 대한 시사점 고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도 있었으나, 구 동서독 민족의 이질화 해소와 동질성 회복에 기 여하는 계기가 되었고, 국제적으로는 유럽의 평화와 안전에 이바지하여 궁극적으로 독일 통일의 결정적인 바탕이 되었다.
남북한도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공존 단계" 를 거쳐야 한다. 왜냐하면 남한이 제시한 단일 국가로의 통일 방안이나 북한이 제시한 연방제 통일 방안의 차별성뿐 만 아니라, 남북한 상호간에 바라보는 상대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전혀 변화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지난 반세기 동안 상호 불신과 대립 ·갈등으로 점철되어왔던 남북 관계를 통일 지향적인 상호 협력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남북한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할 것을 동의하고 상대방을 타국과 구별되는 특 수한 협력자로 간주하는 우호적인 상호 공존 단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통일을 이루기 위해 남북한의 "공존" 을 지체없이 실천해야 한 다. 독일이 분단의 벽인 베를린 장벽을 허물고 큰 혼란없이 순조롭게 통일 과정을 밟을 수 있었던 것도 그동안 구 동서독 국민들이 서로 상대방의 TV를 시청할 수 있었고, 편지와 전화도 할 수 있었으며, 인적 ·물적 교류를 통해 서로 상대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처럼 남북한 역시 상호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시켜 서로 상대 방을 알고 신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구서독은 1968년 구소련을 비롯한 동구 제국과의 외교 관계 수립을 골자로 하는 기독교민주당의 "키징거" (Kurt Georg Kiesinger) 수상의 대외 정책과, 1969년 두 독일 국가간의 관계는 "특별한 성격(besondere art)" 을 지니고 있으므로, 독일인 들은 서로가 외국인이 아니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사회민주당의 "브란트" (Willy Brandt) 수상의 구동독 정책 이후, 구소련을 비롯한 동구 제국과 구동독 에 대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구 동서 독간의 안정적인 "공존" 관계를 지속하였다.
이러한 "공존" 관계를 바탕으로 구서독은 내독성과 전독연구소(Gesamtdeutsches Institut) 등을 통해 구 동서독 관계에 관한 연구 작업의 수행, 경 제적인 통일의 후유증을 해소할 수 있는 경제 선진 대국화의 달성, 인간의 존엄성 미 최대한 보장되는 정치적 민주화의 확립 등을 통하여 착실하게 통일을 준비해왔 다. 이러한 준비 작업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 앞을 지나는 "통일의 기회" 를 나꿔 챌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통일 준비 작업을 주저없이 그리고 치밀하게 수행해 야 한다.
또한 통일 준비 작업을 하는 것이 통일 비용도 줄이는 방법이다. 만일 구 동서독 간에 교류와 공존의 기간이 없었다면 독일 통일도 아직 이루어질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통일 비용이나 통일 부작용도 지금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 일 비용은 전쟁보다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이 이루어질 때 적게 들고, 또 평화 적인 방법이라도 독일과 같이 갑자기 이를 때보다는 단계적인 준비 과정을 거쳐 이 룰 때 더 적게 드는 것이다.
끝으로 독일이 (7.4회담)을 통하여 통일의 외적 여건 을 조성하였듯이, 우리도 통일을 위해서는 국제적 통일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한반 도는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하여 역사적으로 주변 강대국들이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 려는 각축장으로 이용하고자 하여 늘 희생을 강요당해왔었다. 그리고 분단 과정에 서 비롯된 주변 국가들의 역학 관계로 인하여, 한반도 통일은 우리 민족 내부의 문 제와 주변국들의 이해가 얽힌 복합적인 문제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적으로 통일 역량을 기르는 것과 동시에 외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지원할 수 있는 국제적 통일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요컨대, 독일 통일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얻어야 할 교훈은 통일 비용이 얼마나 많이 들고 통일 후유증으로 인해 당사자들이 어떠한 불편을 겪고 있는지에 관한 내용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통 일을 이룬 독일이 게르만 민족과 독일 역사에서 뿐만 아니라, 현 국제 사회에서 그 위상이 크게 부상되었다는 것을 귀중한 타산지석의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다.
8. 꼬 리 말
1961년 구축됐던 베를린장벽이 평화혁명의 결과로 28년만에 무너졌다. 한때 동 독 정권은 동독 국민의 서독으로의 탈주를 막기 위하여 베를린장벽을 쌓았으나 이 제는 그 반대로 장벽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다. 동독 땅에 물결쳤던 민주화 혁명에서 눈길을 모으는 것은 "비폭력적"이었다는 점 이다. 40년 이상 묵은 구체제가 환골탈태되는 과정에서 사소한 폭력의 흔적을 찾 을 수 없었다. 이를테면 분풀이 형식으로나마 호네커 집단에 주먹을 휘두르거나 비밀 경찰 건물에 돌을 던지는 것쯤은 나타날 법도 했는데 그것은 하나의 가정이었다.
베를린 장벽이 170년은 더 지속될 것이라고 장담하던 호네커가 손쉬운 수법인 무력진압이라는 것도 한번 못 써보고 무녀져 버린 것은 이와 같은 동독 국민들의 비폭력, 도덕성에 투항했기 때문이다. 현재 한반도에도 햇볕정책에 이은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고 있어 화해 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으며 곳곳에서는 통일을 기대하는 작은 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독일 통일의 감격을 누리던 사람들도 10년이 지난 오늘날 동서독인 들의 배타적인 감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통일의 길이 당연한 것처럼 통일 이 후의 문제 역시 당연히 나타날수 밖에 없는 과정이라면 우리는 독일 통일의 면면을 세밀하게 살펴 그 후유증을 줄이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9.참 고 문 헌
앙드레 모아, 전영애, 『독일사』 , 홍성사, 1990
이영기, 『독일 통일의 해부』 , 국제언론문화사, 1990
신창섭, 『분단보다 통일 비용이 더 비싸다』 , 열음사, 1990
연합통신, 『독일통일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 1990
박성조 · 양성철, 『독일통일과 분단한국』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1991
김영탁, 『독일통일과 동독 재건과정』 , 한울아카데미, 1997
위르겐 코카, 이형진, 『독일의 통일과 위기』 , 대우학술총서, 1999
고려대 독문과 학술여행단, 『베를린, 이직도 공사중』 , 예문, 2000
  • 가격12,000
  • 페이지수18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0.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1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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