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드 클라우디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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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에드먼드 클라우디의 교회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하나님 나라적 교회 이해
2. 성경과 특히 성경의 충족성에 충실한 교회 이해
3. 성경적 기독론의 토대에 서 있는 교회론
4. 성경적 예배에 충실한 교회론
5. 성경적 성령님의 능력 아래 있는 교회 이해
6. 성경적 사명에 충실한 교회 이해
마치는 말

본문내용

,000년에 걸쳐 이루어진 이슬람 땅에 대한 선교를 뿌리부터 잘라 버렸다. 그들이 기독교 신앙을 ‘지하드’(jihad) 곧 그리스도 깃발 아래 싸우는 성전(holy war)으로 바꿔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세상을 향한 교회의 증거를 망쳐 버렸다”(187f.=211).
그리고 이 사명(mission)에 대한 언급에서 클라우니는 문화 사명에 대한 강조도 잊지 않는다. 그리하여 클라우니는 “두번째 아담이신 우리 주님은 아담의 임무를 완수하셨고, 우리를 자유케 하셔서 문화적 사명 속에서 주님을 섬기게 하셨다”고 말한다(67=76). 왜냐하면 문화는 창조 때부터 하나님에 의해 의도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문화적 존재가 되었다”(173=193). 다시 말하여,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을 지닌 사람들에게 문화적 사명을 부여하셨다”(173=194).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면 하나님이 원하는 문화를 드러낼 수 있다: “먼저 그 나라를 구하면 문화적 유익이 따라 오게 된다”(173=194).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문화도 타락시켰다. “타락과 함께 문화적인 배교가 등장한다”(174=195).
다시 말하여, “타락과 함께 문화 명령에 명시된 활동들이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저주조차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여전히 계속됨을 암시한다”(173=194). “심판 아래서도 하나님은 문화를 보존하신다”(174=195); “질서 있는 인간의 문화의 존재 자체가 주께서 죄로 인한 붕괴를 막으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178=199); “사람들이 하나님을 회피하려고 시도하는 만큼 하나님은 그들을 대면하시며, 그들을 자기 형상대로 보존함으로써 문화적 구조가 유지되게 하신다”(180=202). 그러므로 “문화는 피조물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한다”(180=202).
그리고 결국 구속사의 절정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을 가져다주실 뿐만 아니라, “또한 문화 명령의 핵심을 성취하신다”(175=196). 그리스도의 구속은 우리의 문화도 변혁하도록 하는 것이다. “각 문화는 진리의 힘에 의하여 변혁된다”(180=202). 다른 곳에서 클라우니는 같은 생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한다: “두 번째 아담인 그리스도는 아담과 하와에 대한 부르심을 변혁하고 성취하면서 만물로 복종케 하고 만물을 충만케 하신다(창 1:28; 엡 1:21-23; 골 1:15-19). 그리스도께 연합한 자들은 그 분이 주인인 세상에서 청지기가 되는 것이다”(140=158f.). 또 다르게는 이렇게도 말한다: “인간 존재와 문화와 하나님의 만남의 역사는 계속되며, 그 역사가 지금은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다”(179=201).
이런 문화적 사명을 수행하는 일에서 우리들의 좀더 적극적인 자세가 요청된다. 1930년대 미국에서의 근본주의적 경건주위의 문화적 소극성에 대한 클라우니의 다음 지적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위험한 것으로 간주된 행위에 대한 점검표는 그것을 통해 피하고자 했던 바로 그 세속성을 부정적으로 의지하게 만드는 기묘한 결과를 낳았다. 반드시 악하다고 할 수 없는 일들을 피하는 행동이, 삶의 모든 활동 속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추구하는 적극적 사랑의 순종을 대체할 수 없다.
세상으로부터의 신비주의적인 도피는, 문화적으로 형성된 금욕 훈련을 조장함으로써 그것이 거부하려던 것을 의지하는 결과를 낼 수도 있다(178=199f.).
이와 같이 말할 때 클라우니는 터툴리안의 몬타누스주의, 영적인 프란체스코주의, 그리고 내적인 빛을 말하는 퀘이커주의의 내재주의적 정신주의를 염두에 두면서, 오늘의 우리도 그와 같은 것의 21세기 판인 문화에 대한 소극적 태도에로 빠지지 말 것을 경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에는 피조계에 대한 돌봄도 포함된다: “선교에서의 ‘새로운 조망’은 우리로 하여금 전 인류와의 연대 아니 전 피조계와의 연대를 발견하도록 촉구한다”(158=178f.).
그런데 교회의 모든 일은 다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것이 없으면 외적으로 성경을 따른 것이라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그래서 클라우니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최선의 교회 정부 형태라도 이 원리가 이끄는 자와 따르는 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는다면 껍데기에 불과하다. 교만한 태도나 사랑이 없고 악의에 찬 정신으로 운영되는 가장 성경적인 교회 정부 형태보다는 그리스도의 헌신된 종들에 의해서 운영되는 다소 불완전한 교회 정부 형태가 훨씬 더 낫다”(202=226). “그 사랑이 없다면 교회는 영혼을 파괴하는 가장 악한 형태의 압제가 된다”(206f.=232). 그러므로 그리스도인과 교회에게는 (1) 성경의 가르침과 (2) 성령님에 의해 행함 이라는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마치는 말
이 모든 개혁파적 교회론의 특성은 모두가 다 매우 의식적으로 성경적이라는 점이 매우 중요한 측면이다. 개혁파 그리스도인들이 예부터 그리 표현해 온 바와 같이 개혁파적인 것은 성경적인 것일 뿐이라는 것이 클라우니의 교회론 제시에서도 드러난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교회론을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서 항상 고치려고 노력한다(성경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클라우니의 교회론 제시 과정 가운데서 다시 생각해 볼만한 점들은 이미 이전의 이 책에 대한 서평에서 밝힌 바 있다. Cf. 이승구, “현대 상황에서의 개혁파 교회론의 제시를 칭송하며,” <개혁신학탐구> , 특히 469-77을 보라.).
이제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들의 교회론과 우리들의 교회 현실이 이런 개혁파적인 교회론에 비추어 과연 어떤 것인지를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첫째는 우리의 교회론을 이와 같은 개혁파적인 교회론에 비추어 성경적인 교회론이 되어 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는 그런 교회론에 근거하여 우리의 현실 교회를 개혁해 가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이 시대에 이 한국 상황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이다. 마치 클라우니 교수가 그의 상황 가운데서 이 작업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과 같이 말이다. 우리 모두가 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해 갈 수 있기 원한다.
  • 가격5,000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1.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13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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