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근삼의 원고지 감상문
이근삼은 희극 작가로 그가 지은 작품들이 거의다 극에 올라갔을 정도로 유명했고 또 실험적이였다. 몰랐던 사실이지만 지금은 익숙한 연극전 배우가 나와서 간단한 설명을 하면서 시작하는 것도 그가 먼저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원고지 에서도 그것을 나타내고 있다. 전에 이 작품을 언뜻 본적이 있는 듯 싶지만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았던 것을 보아 그렇게 주의깊게 보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이 글을 모두 읽고 이 글이 희극으로서 전체적으로 등장인물의 개성이 뚜렷하고 해학적 요소가 많지만, 한편으로는 쇠사슬을 차고 있는 처와 교수에 대하여 슬픔을 느꼈다. 아이들이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하고 엄마가 돈을 그냥 주는 그 장면 그 자신이 힘들게 일하여 벌은 그 돈을 당연하게 받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에대한 생각이 났다. 또한 한때 아빠의 역할을 돈을 벌어와서 가정을 부양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나에게 다시 창피함을 느꼈다. 지금은 일에 갔다 오면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나에게 일을 시키는 아빠에 대하여 짜증을 내면서도 말이다. 역시 나도 사람이라 이상과 행동은 다른가 보다. 다시 극으로 돌아가서 그 쇠사슬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각해 보았다. 쇠사슬은 우리의 규제이다. 감독관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일을 시킨다. 그리고 이는 나에게 자아를 생각나게 했다. 이드를 구속하는 자아. 이드에서 소망을 만들지만 그 소망을 이룰 수 없는 현실을 아는 자아. 그 둘의 관계가 생각난다. 교수가 잠을 잘때 마치 자아의 힘이 약해져 이드로 인하여 꿈을 꿈으로서 소망충족을 시키는 것 처럼 쇠사슬이 풀려있는 것을 보고 그 생각이 더 확실하게 났다. 그후 나는 자연스럽게 세번째 요소인 감독관을 우리의 초자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초자아가 우리의 도덕적인 부분을 관여하지만 관리자는 우리가 끊임없이 일을 하도록 재촉하는 역할임을 볼때 그것이 초자아와는 조금 먼 것임을 알았다. 그것은 삭막한 도시의 빨리빨리. 즉 마치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서 나오는 회색일당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천사에 대하여 살펴보자. 그는 이미 현실에 붙잡혀서 이제는 거의 잊혀진 교수의 꿈과 정열을 나타낸다. 이를 통하여 우리가 현실을 위하여 좌절한 이상을 볼 수 있었다. 이 소설에서 아쉬운것은 우리에게 자아가 필요하듯 우리가 사회적으로 살아가기위해 꼭 필요한 규율과 법을 쇠사슬이라는 지극히 부정적인 소재를 이용하여 표현했다는 것이다. 물론 희극이고 뜻을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쇠사슬을 썼겠지만 그래도 너무 강한 소재를 사용한 것 같다.
이 글을 읽은뒤 생각한 것이 몇가지가 있는데 이것을 소개하겠다. 오늘 아침 사감부에서 우리의 행동을 규제하는 것을 우리를 규칙으로 구속시킬때 나는 이 쇠사슬을 느꼈다. 우리의 자유를 얽매이는 그 쇠사슬을. 그리고 자유롭게 자고 싶을때 자고 친구들과 놀고 싶으면 놀고 기숙사 안에서 먹을 것을 먹고 싶어하는 자유로운 기숙사 생활을 원하는 우리와 그것을 억제하고 막으려는 사감부의 관계가 마치 소망을 성취하고자하는 이드와 이를 반집중으로 막아버리는 자아와의 관계 즉 우리에게 사감부가 규제의 쇠사슬을 채운다고 느꼈다. 또한 나는 이 학교에 오기 전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좋아했지만 이 학교에 온뒤 재미를 잃었다는 사람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었는데 예전에는 막연히 고등학교수준의 올림피아드가 중학교수준보다 어려우니까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자유에 달린것 같았다. 학교는 우리에게 자습시간이라고 정해진 시간에 우리가 공부를 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것이 물론 이상적인 공부가 효과적으로 또 잘되는 시간이지만, 그런 규제를 통하여 우리는 공부를 억지로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게 되고 이는 우리가 예전에는 재미있었던 공부가 재미없어지는 것이다. 즉 천사와 함께 하던 공부가 어느새 쇠사슬을 차고 감독관에게 지시를 받으면서 하게되는 공부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나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였다. 내가 어느새부턴가 경시 성적이 떨어지고 학원을 공부가 아닌 친구들과 만나고 놀기 위하여 온 그 이유를. 내가 공부와 멀어진 이유를 두가지로 분석하는데 첫째는 예전부터 나에게 공부가 재미있냐고 물어보면서 신기해 하던 사람들 - 나는 이것을 통하여 공부가 재미있으면 안된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 그리고 둘째는 강압적인 공부. 예전부터 나는 아빠의 감시속에 공부를 했다.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모른채 이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예전부터 이유도 모르고 공부를 하고 공부를 안하면 못 살아간다는 강박관념 속에 자신이 공부를 하는 이유를 억지로 만들어내는. 그것에 의하여 나는 공부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 강압에서 벗어나서 자율적으로 공부를 하지만 말이다.
이 책은 희극임에도 불구하고 우울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역시 희극인지라 비현실성과 이것이 연극임을 보여주는 장치에 의하여 재미또한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소망을 성취하고 싶지만 현실에 의하여 성취할 수 없는 발은 땅을 딛고 머리는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의 비극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이근삼은 희극 작가로 그가 지은 작품들이 거의다 극에 올라갔을 정도로 유명했고 또 실험적이였다. 몰랐던 사실이지만 지금은 익숙한 연극전 배우가 나와서 간단한 설명을 하면서 시작하는 것도 그가 먼저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원고지 에서도 그것을 나타내고 있다. 전에 이 작품을 언뜻 본적이 있는 듯 싶지만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았던 것을 보아 그렇게 주의깊게 보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이 글을 모두 읽고 이 글이 희극으로서 전체적으로 등장인물의 개성이 뚜렷하고 해학적 요소가 많지만, 한편으로는 쇠사슬을 차고 있는 처와 교수에 대하여 슬픔을 느꼈다. 아이들이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하고 엄마가 돈을 그냥 주는 그 장면 그 자신이 힘들게 일하여 벌은 그 돈을 당연하게 받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에대한 생각이 났다. 또한 한때 아빠의 역할을 돈을 벌어와서 가정을 부양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나에게 다시 창피함을 느꼈다. 지금은 일에 갔다 오면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나에게 일을 시키는 아빠에 대하여 짜증을 내면서도 말이다. 역시 나도 사람이라 이상과 행동은 다른가 보다. 다시 극으로 돌아가서 그 쇠사슬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각해 보았다. 쇠사슬은 우리의 규제이다. 감독관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일을 시킨다. 그리고 이는 나에게 자아를 생각나게 했다. 이드를 구속하는 자아. 이드에서 소망을 만들지만 그 소망을 이룰 수 없는 현실을 아는 자아. 그 둘의 관계가 생각난다. 교수가 잠을 잘때 마치 자아의 힘이 약해져 이드로 인하여 꿈을 꿈으로서 소망충족을 시키는 것 처럼 쇠사슬이 풀려있는 것을 보고 그 생각이 더 확실하게 났다. 그후 나는 자연스럽게 세번째 요소인 감독관을 우리의 초자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초자아가 우리의 도덕적인 부분을 관여하지만 관리자는 우리가 끊임없이 일을 하도록 재촉하는 역할임을 볼때 그것이 초자아와는 조금 먼 것임을 알았다. 그것은 삭막한 도시의 빨리빨리. 즉 마치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서 나오는 회색일당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천사에 대하여 살펴보자. 그는 이미 현실에 붙잡혀서 이제는 거의 잊혀진 교수의 꿈과 정열을 나타낸다. 이를 통하여 우리가 현실을 위하여 좌절한 이상을 볼 수 있었다. 이 소설에서 아쉬운것은 우리에게 자아가 필요하듯 우리가 사회적으로 살아가기위해 꼭 필요한 규율과 법을 쇠사슬이라는 지극히 부정적인 소재를 이용하여 표현했다는 것이다. 물론 희극이고 뜻을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쇠사슬을 썼겠지만 그래도 너무 강한 소재를 사용한 것 같다.
이 글을 읽은뒤 생각한 것이 몇가지가 있는데 이것을 소개하겠다. 오늘 아침 사감부에서 우리의 행동을 규제하는 것을 우리를 규칙으로 구속시킬때 나는 이 쇠사슬을 느꼈다. 우리의 자유를 얽매이는 그 쇠사슬을. 그리고 자유롭게 자고 싶을때 자고 친구들과 놀고 싶으면 놀고 기숙사 안에서 먹을 것을 먹고 싶어하는 자유로운 기숙사 생활을 원하는 우리와 그것을 억제하고 막으려는 사감부의 관계가 마치 소망을 성취하고자하는 이드와 이를 반집중으로 막아버리는 자아와의 관계 즉 우리에게 사감부가 규제의 쇠사슬을 채운다고 느꼈다. 또한 나는 이 학교에 오기 전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좋아했지만 이 학교에 온뒤 재미를 잃었다는 사람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었는데 예전에는 막연히 고등학교수준의 올림피아드가 중학교수준보다 어려우니까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자유에 달린것 같았다. 학교는 우리에게 자습시간이라고 정해진 시간에 우리가 공부를 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것이 물론 이상적인 공부가 효과적으로 또 잘되는 시간이지만, 그런 규제를 통하여 우리는 공부를 억지로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게 되고 이는 우리가 예전에는 재미있었던 공부가 재미없어지는 것이다. 즉 천사와 함께 하던 공부가 어느새 쇠사슬을 차고 감독관에게 지시를 받으면서 하게되는 공부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나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였다. 내가 어느새부턴가 경시 성적이 떨어지고 학원을 공부가 아닌 친구들과 만나고 놀기 위하여 온 그 이유를. 내가 공부와 멀어진 이유를 두가지로 분석하는데 첫째는 예전부터 나에게 공부가 재미있냐고 물어보면서 신기해 하던 사람들 - 나는 이것을 통하여 공부가 재미있으면 안된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 그리고 둘째는 강압적인 공부. 예전부터 나는 아빠의 감시속에 공부를 했다.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모른채 이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예전부터 이유도 모르고 공부를 하고 공부를 안하면 못 살아간다는 강박관념 속에 자신이 공부를 하는 이유를 억지로 만들어내는. 그것에 의하여 나는 공부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 강압에서 벗어나서 자율적으로 공부를 하지만 말이다.
이 책은 희극임에도 불구하고 우울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역시 희극인지라 비현실성과 이것이 연극임을 보여주는 장치에 의하여 재미또한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소망을 성취하고 싶지만 현실에 의하여 성취할 수 없는 발은 땅을 딛고 머리는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의 비극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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