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목차
Ⅰ. 서론 ............................................................... 3
Ⅱ. 본론 ............................................................... 3
1. 선비의 어원과 개념 ...................................... 3
1) 선비의 어원 ............................................................ 3
2) 선비의 개념 ............................................................ 4
2. 조의제문 ...................................................... 6
1) 조의제문, 그 시대적 배경 .................................... 6
2) 조의제문의 해석과 그 내용 ................................. 7
3. 양반전 ....................................................... 9
1) 양반전의 줄거리 ................................................. 9
2) 양반전으로 보는 선비의 모습 ............................ 10
Ⅲ. 결론 ......................................................... 12
- 선비 정신, 그 현대적 의의
부록 - 조의제문에 대한 다른 해석 ................................... 13
Ⅰ. 서론 ............................................................... 3
Ⅱ. 본론 ............................................................... 3
1. 선비의 어원과 개념 ...................................... 3
1) 선비의 어원 ............................................................ 3
2) 선비의 개념 ............................................................ 4
2. 조의제문 ...................................................... 6
1) 조의제문, 그 시대적 배경 .................................... 6
2) 조의제문의 해석과 그 내용 ................................. 7
3. 양반전 ....................................................... 9
1) 양반전의 줄거리 ................................................. 9
2) 양반전으로 보는 선비의 모습 ............................ 10
Ⅲ. 결론 ......................................................... 12
- 선비 정신, 그 현대적 의의
부록 - 조의제문에 대한 다른 해석 ................................... 13
본문내용
.
또 다른 예는 얼마 전 이슈가 되었던 ‘화이트칼라 범죄의 처벌’을 들 수 있겠다. 화이트칼라 범죄는 ‘세인의 존경을 받고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는 인사가 그 직무과정에서 저지르는 범죄’로 정의된다. 두산 그룹의 비리, 대우 김우중 전 회장의 분식회계 사건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사건이 도마 위에 오른 이유는 죄를 지은 이들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극히 신성해야 할 법조차 권력과 경제력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몇 해 전, 대법원장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이와 관련하여 이용훈 후보자에게 "우리나라에서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보는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이용훈 대법원장 후보자는 망설이더니 "법은 그렇게 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평등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우리나라 법정의 실태를 솔직하게 밝혔다. 가장 청렴해야 할 법관들이 스스로에게 조차 대해 떳떳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신문과 뉴스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만이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스스로의 모습은 어떠한가? 돈과 힘에 굴하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서 나아가고 있는가? 조의제문을 통해 보여준 김종직의 신념과 지조를 지키는 행동은 정신적으로 나약해져 가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한 번쯤 깊이 되새겨 보아야 할 만한 가치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양반전에서 묘사되는 양반, 그 변해버린 모습에서도 우리는 교훈을 찾을 수 있다. 권력에는 반드시 비판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비들이 위정자를 비판하는 쪽에 섰을 때, 그들은 권력에 굴하지 않고 민중의 편에 섰으며, 위정자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데 있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하여 존중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선비들 자신이 위정자가 되었을 때, 그렇게 고결했던 선비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타락하기 시작했다. 양반전에서도 이렇게 타락한 선비들의 벼슬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만약 이 선비들에게 새로운 비판 세력이 나타났으면 선비들이 이렇게 타락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충과 의를 부르짖던 초기 선비들의 정신, 그리고 타락해버린 후기 선비들의 정신을 보면서, 권력에는 반드시 비판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겨야 한다. 김종직이 조의제문에서 그랬던 것처럼, 박지원이 양반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상과 자꾸만 어긋나가는 현실 속에서도 꿋꿋하게 깨어 현실을 비판할 수 있는 눈을 우리 모두가 길러야 할 것이다.
※ 부록 - 조의제문에 대한 다른 해석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조의제문>이란 글을 통해 선비정신을 살펴보라고 했을 때 당연히 김종직이 단종을 조상하기 위해 지은 것이고, 사육신에 버금가는 충절의 정신을 살펴 볼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조의제문>에 관한 견해는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무오사화의 빌미가 된 조의제문의 성격에 대해서는 후대인들이 대체로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즉, 김종직이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를 찬탈한 세조를 비난할 의도로 조의제문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김종직은 영광과 비난을 동시에 짊어져야만 했다. 이 글로 인하여 그는 충절을 지킨 인물로 부각된 반면, 또한 이율배반적 인물로 비판을 받기도 한 것이다. 김종직을 비난하는 근거는 이렇다. 그가 세조의 왕위찬탈을 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세조 조정에서 벼슬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벼슬을 했다는 점, 또 이미 벼슬을 했으면 신하로서의 도리를 다 했어야 하는데 그런 글을 지어서 임금을 비난한 것은 신하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견해는 잘못된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 <조의제문>이 쓰여진 시기나 조의제문이 문제가 된 시기를 살펴보면 조선시대는 훈구파와 사림파가 극도의 정치적 대립을 하고 있던 시대임을 간과하고 있다.
<조의제문>이 그저 시해 된 의제를 조문하는 글이라면 이글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후자에 대하여 의견을 제시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인용하는 ‘계곡 장유’의 글이 다음과 같다.
점필재 점필재 : 김종직
는 광묘(세조)의 밑에서 깍듯이 신하 노릇을 하였는데, 의제를 조문하는 글을 지었으니, 이는 ‘높은 이의 잘못을 숨긴다.’는 <춘추>의 의리를 크게 범한 것이다 대체로 볼 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광묘의 조정에 몸담지 말아야 했을 것이요, 일단 그 조정에 들어섰으면 이런 글을 지어서는 안 되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마음과 행동이 모순되고 의리와 분수가 함께 무너지고 말았으니, 이것이 의아하게 생각되는 두 번째 일이다.
즉, 김종직이 <조의제문>을 세조를 비판할 목적으로 썼다면 이는 섬기고 있는 임에 대한 ‘불충’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김종직의 성품과, 김종직이 고수하던 유교적 교리로 봤을 때 장유의 글은 후자 측의 의견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글로 보았을 때 김종직은 심지어 이율배반적인 사람으로 생각 될 수 있다.
그러나 조의제문은 무오사화가 나기 전에는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심지어 성종도 그 글을 보았으나 별다른 혐의를 두지 않았으며, 누구도 그것이 세조를 비판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실제로 의제가 옹립되었다가 시해된 일은 대대로 문인들의 시문에 소재로 등장한 것이었고, 시해사건의 구도가 세조와 단종의 일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억지로 해석하지 않는다면 결코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의제문을 ‘억울하게 죽은 단종을 조상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유자광의 곡해를 따라 해석하는 것이기에 올바른 논의가 아니라는 견해에 일리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이 글을 지은 김종직의 생각을 ‘조선의 건국부터, 세조의 잘못된 출발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입장에서 어느 쪽 의견이 옳은가에 대한 정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되짚어봐야 한다는 숙제가 우리에게 남아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또한 대대로 내려오던 선비에 대한 정신에 대해서 고리타분하고 구시대적인 생각에 잡혀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선비는 문무를 겸비한 학식이 있는 사람으로 긍정적인 선비상을 현대에서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예는 얼마 전 이슈가 되었던 ‘화이트칼라 범죄의 처벌’을 들 수 있겠다. 화이트칼라 범죄는 ‘세인의 존경을 받고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는 인사가 그 직무과정에서 저지르는 범죄’로 정의된다. 두산 그룹의 비리, 대우 김우중 전 회장의 분식회계 사건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사건이 도마 위에 오른 이유는 죄를 지은 이들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극히 신성해야 할 법조차 권력과 경제력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몇 해 전, 대법원장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이와 관련하여 이용훈 후보자에게 "우리나라에서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보는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이용훈 대법원장 후보자는 망설이더니 "법은 그렇게 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평등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우리나라 법정의 실태를 솔직하게 밝혔다. 가장 청렴해야 할 법관들이 스스로에게 조차 대해 떳떳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신문과 뉴스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만이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스스로의 모습은 어떠한가? 돈과 힘에 굴하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서 나아가고 있는가? 조의제문을 통해 보여준 김종직의 신념과 지조를 지키는 행동은 정신적으로 나약해져 가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한 번쯤 깊이 되새겨 보아야 할 만한 가치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양반전에서 묘사되는 양반, 그 변해버린 모습에서도 우리는 교훈을 찾을 수 있다. 권력에는 반드시 비판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비들이 위정자를 비판하는 쪽에 섰을 때, 그들은 권력에 굴하지 않고 민중의 편에 섰으며, 위정자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데 있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하여 존중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선비들 자신이 위정자가 되었을 때, 그렇게 고결했던 선비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타락하기 시작했다. 양반전에서도 이렇게 타락한 선비들의 벼슬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만약 이 선비들에게 새로운 비판 세력이 나타났으면 선비들이 이렇게 타락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충과 의를 부르짖던 초기 선비들의 정신, 그리고 타락해버린 후기 선비들의 정신을 보면서, 권력에는 반드시 비판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겨야 한다. 김종직이 조의제문에서 그랬던 것처럼, 박지원이 양반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상과 자꾸만 어긋나가는 현실 속에서도 꿋꿋하게 깨어 현실을 비판할 수 있는 눈을 우리 모두가 길러야 할 것이다.
※ 부록 - 조의제문에 대한 다른 해석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조의제문>이란 글을 통해 선비정신을 살펴보라고 했을 때 당연히 김종직이 단종을 조상하기 위해 지은 것이고, 사육신에 버금가는 충절의 정신을 살펴 볼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조의제문>에 관한 견해는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무오사화의 빌미가 된 조의제문의 성격에 대해서는 후대인들이 대체로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즉, 김종직이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를 찬탈한 세조를 비난할 의도로 조의제문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김종직은 영광과 비난을 동시에 짊어져야만 했다. 이 글로 인하여 그는 충절을 지킨 인물로 부각된 반면, 또한 이율배반적 인물로 비판을 받기도 한 것이다. 김종직을 비난하는 근거는 이렇다. 그가 세조의 왕위찬탈을 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세조 조정에서 벼슬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벼슬을 했다는 점, 또 이미 벼슬을 했으면 신하로서의 도리를 다 했어야 하는데 그런 글을 지어서 임금을 비난한 것은 신하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견해는 잘못된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 <조의제문>이 쓰여진 시기나 조의제문이 문제가 된 시기를 살펴보면 조선시대는 훈구파와 사림파가 극도의 정치적 대립을 하고 있던 시대임을 간과하고 있다.
<조의제문>이 그저 시해 된 의제를 조문하는 글이라면 이글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후자에 대하여 의견을 제시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인용하는 ‘계곡 장유’의 글이 다음과 같다.
점필재 점필재 : 김종직
는 광묘(세조)의 밑에서 깍듯이 신하 노릇을 하였는데, 의제를 조문하는 글을 지었으니, 이는 ‘높은 이의 잘못을 숨긴다.’는 <춘추>의 의리를 크게 범한 것이다 대체로 볼 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광묘의 조정에 몸담지 말아야 했을 것이요, 일단 그 조정에 들어섰으면 이런 글을 지어서는 안 되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마음과 행동이 모순되고 의리와 분수가 함께 무너지고 말았으니, 이것이 의아하게 생각되는 두 번째 일이다.
즉, 김종직이 <조의제문>을 세조를 비판할 목적으로 썼다면 이는 섬기고 있는 임에 대한 ‘불충’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김종직의 성품과, 김종직이 고수하던 유교적 교리로 봤을 때 장유의 글은 후자 측의 의견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글로 보았을 때 김종직은 심지어 이율배반적인 사람으로 생각 될 수 있다.
그러나 조의제문은 무오사화가 나기 전에는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심지어 성종도 그 글을 보았으나 별다른 혐의를 두지 않았으며, 누구도 그것이 세조를 비판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실제로 의제가 옹립되었다가 시해된 일은 대대로 문인들의 시문에 소재로 등장한 것이었고, 시해사건의 구도가 세조와 단종의 일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억지로 해석하지 않는다면 결코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의제문을 ‘억울하게 죽은 단종을 조상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유자광의 곡해를 따라 해석하는 것이기에 올바른 논의가 아니라는 견해에 일리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이 글을 지은 김종직의 생각을 ‘조선의 건국부터, 세조의 잘못된 출발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입장에서 어느 쪽 의견이 옳은가에 대한 정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되짚어봐야 한다는 숙제가 우리에게 남아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또한 대대로 내려오던 선비에 대한 정신에 대해서 고리타분하고 구시대적인 생각에 잡혀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선비는 문무를 겸비한 학식이 있는 사람으로 긍정적인 선비상을 현대에서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