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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함으로써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다. 한 가지 답답했던 것은 부르심에 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한 설명들로는 우선 유효적인 부르심과 진심으로의 부르심을 구분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둘이 서로 상충되어 존재하지만 함께 이루어지는 상호보완적인 것인지, 아니면 부르심의 사건이 진지하게 제시되고 유효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순차적인 구분이었는지가 아직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필자의 이해력 부족도 있겠지만, 시원하게 풀어주지 않아서 답답한 면이 있다. 또한 성령의 역할에 있어서 초자연적인 성령의 사역을 구원과 연관지어 설명하다가 초자연적 치유사역의 기대를 지향할 것을 당부하는 것은 삭제해도 될 듯하다. 그다지 연관성도 없어 보이고, 성령의 사역에 대한 기준, 틀을 제시해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더 이상 초자연적 성령의 사역이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이 아님을 명시하긴 했지만 어패가 성령의 사역은 제한하는 듯한 어투라서 조금은 거부감이 들었다.
구원론을 공부하는 것은 솔직히 막연하다. 아직 삶에서 다 경험되어진 것도 아니요, 필자를 비롯한 신자들이 실질적으로 맞부딪치고 있는 일이며, 잘못하다가는 위험한 생각으로 하나님을 모욕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학문적으로 모든 것을 정확하게 정립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어느 정도의 노선을 제공해 주어 방향을 잡아준 커다란 공헌을 해 준 것만은 사실이다. 막연하고 앞도 보이지 않는 상태보다는 바로 앞의 길이라도 바라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조금 더 공부해 보려 한다. 또한 이렇게 정립해 둔 노선이 신앙인의 삶에서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해 본다.
구원론을 공부하는 것은 솔직히 막연하다. 아직 삶에서 다 경험되어진 것도 아니요, 필자를 비롯한 신자들이 실질적으로 맞부딪치고 있는 일이며, 잘못하다가는 위험한 생각으로 하나님을 모욕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학문적으로 모든 것을 정확하게 정립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어느 정도의 노선을 제공해 주어 방향을 잡아준 커다란 공헌을 해 준 것만은 사실이다. 막연하고 앞도 보이지 않는 상태보다는 바로 앞의 길이라도 바라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조금 더 공부해 보려 한다. 또한 이렇게 정립해 둔 노선이 신앙인의 삶에서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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