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중독증 편견 - 정신분석학적 접근 & 사이버스페이스와 자유의 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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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이버 중독증 편견 - 정신분석학적 접근 & 사이버스페이스와 자유의 곤경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사이버 중독증 편견 ― 정신분석학적 접근


우리의 문제상황
물음들
정보화 사회의 특성과 인터넷의 매력들

인간의 근본 욕구들
프로이트 : 유아성욕, 죽음본능, 심리-생리적 관계
클라인 : 투사적 동일시
대상관계론 : '정서적 공감-지지' 체험
위니컷 : '과도기적 대상'과 유희 체험
라깡 : 쥬이쌍스와 죽음본능

사이버 중독을 유발하는 사회적 요인들
종합적 진단



사이버스페이스와 자유의 곤경


이봉재 / 서울산업대 인문자연학과 교수

겹쳐진 세계
물음의 형식
자유, 他者, 윤리
교훈

본문내용

면으로 침투해가고 있다. 사회의 모든 계층을 불러모을 만한 다양한 컨텐츠들로 채워지고 있으며, 웹페이지와 이메일을 넘어서 모든 미디어의 대통합을 진행시키고 있다. 또한 거의 모든 사회현상과 결합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교육, 오락, 친교, 사업, 사적 생활 등, 우리의 모든 삶 속으로 사이버스페이스가 들어와 있다.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국면이 구조적으로 변형되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사이버스페이스의 이러한 팽창을 염려한다. 그것이 우리 문명에 결코 유익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의 분석도 그에 동의한다. 사이버스페이스는 본성상 無道德의 공간이기 쉽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비관이 아니다. 오직 악몽만이 가능하다거나 미리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는 식의 의견이 아니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위험만큼이나 잠재적 이득이 적지 않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그것을 수용하고 발전시키는 방식이다.
그 첫 번째 단계는 위험의 깊이를 인식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이버스페이스를 염려하는 많은 사유들은 더 많은 정보, 더욱 편리한 의사소통, 더 많은 자유 ― 그런 것들이 순조롭게 구현될 수 있는가의 문제 주위를 맴돌고 있다. 거기서 정보기기의 보급, 통신언어라는 제약, 상업적-국가적 제약 등이 중요한 문제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의 끝이 아니다. 그런 물음의 형식에서는 간파되지 않는 중요한 사항이 있다. 더 많은 정보, 더욱 편리한 의사소통, 더 많은 자유는 과연 좋은 것인가? 그것은 왜 좋으며, 어떤 형태로서 좋게 기능하는가? "더 많은…"이라는 접두사는 과연 마냥 타당한가?
우리가 분석해 본 자유의 개념으로 볼 때 분명 〈더 많은 자유〉가 말 그대로 자유를 성장시켜주는 것은 아님이 밝혀졌다. 사이버스페이스의 자유는 자기파괴적인 성격을 갖고 있음이 드러났다. 더 편리하고 저렴한 미디어라는 장점, 엄청나게 많은 정보, 외부의 제약을 무력화시키는 자유 ― 이것들은 모두 좋은 사회를 위한 의미있는 자원일 수 있다. 그러나 그자체로 좋은 사회를 위한 충분한 조건은 못된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좋은 사회는 자유의 성숙 또는 성숙된 자유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자유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타자, 그것들과의 遭遇조우가 절대 필요하다. 타자와 조우하지 못하는 관점과 자유는 미성숙 아니면 폭력일 뿐이다. 사이버스페이스가 질주하는 파편적 개인주의를 제어하기 못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구조적으로 타자의 계기를 지워낸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글의 논변이 타당하다면, 사이버스페이스 혹은 가상세계의 확장에 직면하여 우리는 더욱 현실이라는 계기를 강화해야 한다. 여기서 현실의 철학적 의미는 타자의 그것이다. 울퉁불퉁하고 먼지 나는 현실이 여전히 가치를 갖는다면, 그것은 정신의 엄연한 타자이기 때문이다. 타자를 겪고 성숙하는 정신만이 인간적 의미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며, 타자와 공존할 수 있다. 타자, 낯선 것과 조우하고 견디며 그것에 대해 배워 가는 공간의 구조를 상실한다면, 우리는 광란의 무질서, 反문명 속으로 소멸해갈 것이다. 사람들이 섞이며 부딪히고, 그 과정에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성장 내지는 교육의 과정을 더욱 內實있게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사이버스페이스는 현실과 더불어만, 현실로 대표되는 타자라는 존재론적, 인식론적, 윤리학적 계기를 상실치 않음으로써만 인간의 공간일 수 있고 약속의 공간일 수 있다.
오래 전에 나는 사이버스페이스가 현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 그 의미는 그리 선명치 않았다. 지금은 훨씬 분명해졌다. 그 모호한 예감의 글귀로 우리의 논의를 마무리하고 싶다.
사이버스페이스는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人工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겪어왔던 진짜 현실의 본래 자리에 대해 생각할 것을 요구하는 듯하다. 우리의 논의에서 드러나듯 사이버스페이스의 난맥상은 자연, 육체, 유한성의 문제와 연루되어 있다. 항상 구속으로만 여겨져 왔던 그것들이 사라질 때, 우리에게 닥쳐올 것을 보여주는 극장으로서 사이버스페이스의 문제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서양의 知性史에서 자연, 물질, 육체는 항상 어떤 제한으로 여겨져 왔다. 그것은 우리를 어디에 못가게 하는 것이며, 더 머무를 수 없게 하는 것이고, 황급히 떠나게 하는 것이다. 우리를 겁에 질리게 하고, 아프게 하는 것이며, 그래서 정신의 위대한 힘으로 극복해야 할 어떤 것이었다. 이제 그것은 지극히 일면적인 이해임을 알 수 있다. 사이버스페이스가 그 낙관의 약속과는 달리 악몽의 공간일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의 물질, 육체, 자연이 지워졌기 때문이었다. 사이버스페이스는 '현실'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기를 요청한다. '제약'으로서의 물질과 현실이 갖는 긍정적 의미를 철학적 주제로 登載시키고 있다. 타인의 시선에 포위되고, 벌레에 물리고 병들고 신음하던 유한성의 표식들이 우리의 인간성과 얼마나 깊은 연관을 갖는지를 새삼 상기할 필요가 있다.7)
5) 여기서 자세히 논할 문제는 아니나, 감정과 이성 혹은 당위의 의식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경우 현실 속의 이성이 반드시 필요로 하는 상황변수에 대한 판단이 불가능해진다. 그런 판단은 당연히 그 시점, 그 장소를 감지하는 감정 내지는 감성의 역할을 동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 감정 없이 오직 조국에 대한 의무감에 의해 유태인 학살을 자행했던 나치독일의 고위 장성이 칸트의 윤리학을 들먹이는 것은 변명만은 아니다.
6) 타자의 개념은 철학적으로 넓은 용도를 갖는다. 인간의 자유가 타자 즉 자기 아닌 것을 만날 때 과학과 도덕이 탄생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타자란 자신과의 차이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다. 즉 나와 다른 것이며, 그래서 나를 제약하는 것들의 총칭이다. 자연이라는 타자 앞에서는 앎 즉 과학을 산출하며, 다른 사람이라는 타자를 만날 때 도덕으로 변형된다. 타자라는 제약 앞에서 자유롭기 위하여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제약, 그것이 도덕의 인간학적 본질이다.
7) 이봉재, "컴퓨터, 사이버 스페이스, 唯我論―사이버 스페이스의 철학적 의미," 《매체의 철학》 김상환 外, (나남, 1998), pp. 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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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1.28
  • 저작시기2013.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29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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