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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상품이었던 후추의 경우 16세기 초에 포르투갈 상선대는 1,300통을 운반하였고, 가격은 수시로 변동하였으나 지중해경유보다 절반가량 쌌다. 새로운 상품으로서는 캘리코와 같은 면직물이 소개되고, 17세기 초에는 차가 들어오게 되었는데, 다같이 대중의 일상생활에 널리 사용되었다. 새로운 상품이나 산물은 역시 아프리카와 신대륙에서 많이 도래하였다. 아프리카에서는 금과 상아가 중요시되었으나 점차로 ‘흑상아’ 라고도 불리어진 흑인노예가 가장 값진 상품이 되었다. 이 흑인노예는 초기에는 신대륙의 에스파냐 식민지에서, 그리고 후에는 북미에서 그 수요가 커졌으며 에스파냐왕실이 발급하는 흑인노예공급권은 막대한 이권이었다. 신대륙에서는 사탕, 옥수수, 감자, 코코아, 담배 등이 들어오게 되어 유럽인의 식생활과 일상생활에 변화를 일으켰다. 그리고 특히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의 유입은 유럽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즉, 16세기 초를 기준으로 약 1세기 동안에 물가가 2배 내지 3배로 앙등하는 이른바 ‘가격혁명’ 이 일어난 것이다. 이 가격혁명은 고정된 지대수입으로 생활하는 지주와 임금노동자에게 타격을 주는 한편, 상인과 생산업자 등, 신흥자본가들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금 / 은의 유입이나 새로운 산물의 도래, 그리고 보다 더 대중적인 새로운 상품의 등장 등에 못지않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럽 경제에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것은 유럽의 상인이나 제조업자를 위한 광대한 새로운 시장의 출현이었다. 이러한 거대한 새로운 시장의 출현과 그것의 끊임없는 확대는 유럽의 상인과 제조업자에게 전례 없는 자극과 기회를 제공하였고, 유럽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게 되었다. 새로운 부와 자본이 축적되고 새로운 근대적인 기업형태인 주식회사가 나타나고 금융업은 보다 합리적인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그리하여 동적이고 세계적인 규모의 자본주의체제가 본격적으로 발전을 하게 되고, 시민계급이 무럭무럭 자라나게 되었다. 일부 역사가는 16세기 이후의 이러한 상업상의 큰 변혁과 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유럽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리켜 ‘상업혁명’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제 유럽의 국가들은 이 새로 열린 세계시장의 점거를 목표로 치열한 경쟁에 나서게 되었으며, 식민지획득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이 경쟁에서 탈락한 국가나 이에 참여하지 못한 도시는 경제적 번영에서 낙오하고 이에 승리한 국가와 도시는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지리상의 발견 후 얼마 안가서 이탈리아의 도시와 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남부독일의 도시, 그리고 북부독일의 한자도시들이 쇠퇴하고, 경제와 번영의 중심은 대서양 연안으로, 즉 포르투갈의 리스본과 에스파냐의 세비야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경제적 우월과 번영도 얼마 안가서 네덜란드, 프랑스, 그리고 영국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지리상의 발견은 세계사의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즉, 이로 말미암아 종전까지 비교적 서로 고립하여 독자적인 문화와 역사발전의 길을 걸어오던 국가와 지역이 이제 직접적인 접촉을 통하여 밀접한 역사적 연관성을 갖게 되고, 그것은 날이 갈수록 더욱 확대되어 우리가 오늘날 보는 바와 같은 참된 의미의 세계사가 성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구상의 모든 민족과 지역을 포함하는 세계사의 성립과 발전에 있어 유럽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며, 19세기까지의 세계사의 흐름은 유럽의 일방적인 팽창과 침략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대륙에서는 토착문명이 완전히 파괴되고, 유럽문화가 고스란히 이식되었으며,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도 홍수처럼 밀려오는 유럽의 상인과 선교사, 그리고 그들이 갖고 오는 유럽문화에 격심한 진통을 겪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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