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바르톨로메오의 대학살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성바르톨로메오의 대학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이 일어나게 된 원인 및 전개 방향은 어떠한가?
◦ 사건의 배경
◦ 사건의 전개
◦ 사건 이후 각국의 반응

- 학살 이후의 신교도에 대한 정책은 어떠했는가?
◦ 앙리4세와 낭트칙령
◦ 프로테스탄트와 절대왕정


Ⅱ. 관련 인물들

맨 왼쪽 위의 기즈 공부터 시계 방향으로 설명.
- 기즈
- 펠리페 2세
- 샤를 9세
- 카트린 드 메디시스
- 앙리 4세
- 콜리니


Ⅲ.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과 관련된 작품들

1. 16세기 프랑스의 참극 그린 ‘성 바르톨로메오의 대학살’
2. 마고 여왕
3. 위그노 교도들 (오페라)

줄거리

본문내용

10), 남부 프랑스에서 군대를 모아 센 계곡 상류까지 진격해 위그노에게 매우 유리한 조건으로 생제르맹 평화조약(1570. 8)의 체결을 강행했다. 1571년 다시 궁정으로 돌아온 뒤 곧 샤를 9세의 총애를 받게 되었으며,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프랑스의 가톨릭교도와 위그노 군대를 합쳐 네덜란드에 있는 스페인군에 대항해 싸울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플랑드르에서 스페인군을 몰아내는 것은 부차적인 목적에 불과했다. 국외에서 위그노들을 프랑스를 위해 성공적으로 싸우게 함으로써 프랑스 내에서 위그노의 지위가 안정되기를 원했으며 동시에 국왕의 총애를 얻고자 했다.
카트린과 기즈는 자신들의 동맹인 스페인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으며, 국왕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에 위협을 느꼈다. 카트린의 사주에 의해 1572년 8월 22일 파리에서 콜리니 암살 사건이 발생했으나 미수로 끝났다. 샤를은 그를 찾아가 철저한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자신이 발각되리라는 것을 알게 된 카트린은 아들의 불안한 마음과 우유부단한 성격을 이용해 위그노들이 그에게 보복을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격노한 샤를은 콜리니를 비롯해 위그노 지도자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이 시작되었다. 24일 새벽 집으로 쳐들어온 앙리 드 기즈의 용병들에 의해 마구 구타당하고, 결국에는 산 채로 창문 밖으로 내던져진 콜리니는 이어 기즈의 부하에게 목이 잘려 죽었다.
Ⅲ.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과 관련된 작품들
1. 16세기 프랑스의 참극 그린 ‘성 바르톨로메오의 대학살’
프랑수아즈 뒤부아, 성 바르톨로메오의 대학살, 연도 미상, 나무에 유채, 94x154cm, 스위스 로잔 미술관
그림은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의 광기를 갖가지 살육 장면을 통해 생생히 보여줍니다. 그림 중앙에서 약간 왼쪽 상단에 검은 옷을 입은 카트린이 쌓여 있는 시체 더미를 보고 있습니다.
2. 마고 여왕
영화 속에서 앙리 나바르는 학살을 보며 차디차게 말한다.
"제 8요일"
30년이 넘도록 내전이 계속되면서 파리의 카톨릭 교도들은 신교도들을 대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만행은 '바르톨로메오의 밤'(1572년 8월 24일, 카톨릭 달력으로 성바르톨로메오의 축일)인 이날, 프랑스 바르톨로메오 사원의 추모식에 모인 위그노 지도자들에 대한 학살이 벌어졌고, 이내 프랑스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이 사건은 유럽 전역에서 가톨릭교도들에 대한 신교도들의 저항을 강화시켰다. 이 내전은 마침내 나바라 가의 앙리 4세 취임으로 부르봉 왕가를 세움으로써 종식되었다. 그는 신교도였지만, 나라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카톨릭으로 개종하고, 신교도들에게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 주며 끝을 내렸다.(낭트 칙령)
후에 학살명령을 거두지만 학살은 계속되었다. 역사가들은 가톨릭 2000년 역사에 있어서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점령에 비할 정도의 범죄라 단정 내렸다.
<마고의 실제 초상화>
3. 위그노 교도들 (오페라)
위그노 교도들(프랑스어:Les Huguenots)은 자코모 마이어베어가 작곡한 5막의 그랜드 오페라이다. 대본은 외젠 스크리브와 에밀 데샹이 역사적 사실을 기초하여 작성하였다. 이 작품은 1836년 2월 29일 파리 시의 파리 오페라에서 초연되었다.
등장 인물
라울 드 Nangis - 위그노 귀족, 테너
마르셸 - 라울의 하인, 위그노 - 병사, 베이스
보이즈 로제 - 병사, 위그노, 테너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 - 나바르의 앙리 4세의 약혼녀, 소프라노
Urbain -그녀의 시종, 메조소프라노
발렌틴 - 드 상 브리 백작의 딸, 소프라노
드 상 브리 백작 - 가톨릭 귀족 , 바리톤
de Nevers 백작- 가톨릭 귀족, 바리톤
Cosse, 테너
메루, 바리톤
토레 - 가톨릭 신사, 바리톤
Tavannes, 테너
de Retz, 바리톤
줄거리
이 오페라는 프랑스 가톨릭 교도들이 개신교도의 영향을 없애기 위해 1572년 수천명의 프랑스 위그노들을 학살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을 다루고 있다. 비록 이 대학살 사건이 오페라에서 비교적 정확하게 묘사되나, 줄거리의 나머지 부분은 대본가인 스크라이브의 창조로 로마 가톨릭 교도인 발렌틴과 개신교도인 라울과의 사랑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1막 : Comte de Nevers 궁의 회랑
2막 : Chenonceaux 궁의 공터
3막 : 파리 시, 센느 강 근처
4막 : Comte de Nevers의 파리의 집
5막 : 파리의 거리
  • 가격1,4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3.05.28
  • 저작시기2013.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49469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