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 이러한 현대정신은 우선 전통기독교신학의 "형이상학적 논리"를 거부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신의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이라든지 우주론적 증명같은 신학적 논리를 거부한다. 이것이 칸트의 철학에서 가장철저하게 표출된다. 칸트는 모든 형이상학적 논리를 허구로 규명해버리고 합리성에서만 진리의 기준을 허용한다. 또 이러한 현대문명의 합리적 과학적 정신은 모든 종교를 미신으로 규명하고 기적을 부인하는 무신론으로 표출된다. 여기에서 기독교성경에 내포된 모든 진리는 현대문명의 도마위에 놓이게 되고 성경의 권위마저도 도전을 받게 된다.
현대신학이란 이러한 현대문명의 도전에 대응하는 신학적 노력이 되어야 한다. 현대신학의 교회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 하나는 현대문명의 논리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기독교의 성경과 교리를 보전하려는 보수신학의 흐름이 있고 또 하나는 현대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현대 문명 속에서 기독교의 진리를 증거하려는 "현대신학"의 흐름이 있다. 이러한 두 가지의 흐름은 서구사회에서 줄기차게 일고 있으며 오늘 세계개신교의 큰 두가지의 신학적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이 두 가지가 모두 기독교복음의 진리를 보다 충실하게 증거하려는 동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보수신학과 현대신학 사이에서 두 흐름의 장점을 각각 잘 조화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
현대신학 성경해석에 현대적 합리성의 기준을 적용하는 문제가 제기 된다. 극단적인 현대신학은 성경의 진리가 과학적 합리성의 기준에 합당하지 않으면 부정하는 태도를 가진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라든 지, 동정녀 탄생이라든지, 기적이라든지를 부인하는 태도가 극단적인 현대신학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태도는 현대정신을 절대화하는 것이다. 현대과학적 합리성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이성절대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합리적 방법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결과는 성경의 권위를 붕괴시킬 뿐 아니라 성경을 과학책으로 혼동하는 오류를 범하고 나아가서는 계몽철학자들처럼 이성을 우상처럼 절대신으로 섬기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최근 보수신학의 흐름 속에서도 과학적 방법으로 성경의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다는 명제를 전제하고 이것을 추구하는 노력이 있는 듯하다. 이것 역시 성경의 권위와 진리성을 과학적 규범에 성경의 권위를 종속시키는 오류를 갖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이 좌우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권위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이성을 하나님이 주신 하나의 은혜로 인정하고 현대문명도 긍정적으로 인정하면서 성경과 신학적 진리를 현대인에게 설득력이 있도록 해석하는 신학적 자세가 필요하다.
서구의 현대적 성경연구는 성경에 대한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밝히고 성경본문의 고증, 편집사, 문학적 형식, 사회경제적 배경 등 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이러한 결과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금물이지만 그것들이 성경의 권위를 해치지 않고 성경해석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성경해석이란 이런 비평적 방법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오늘 우리에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경건한 영적 자세를 핵심으로 하여야 진정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인간이성과 합리적 방법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현대기독교의 흐름은 기독교의 진리를 형이상학론리에 의하여 설파하려는 데에 그치지 않고 기독교의 근본적 진리를 현대인에게 설득력있게 설명하는 초점을 맞춰야 한다. 유신론의 문제라든지, 신정론이라든지, 역사와 종말을 다루는 종말론이라든지, 인간이성의 합리성과 제한성을 인정하면서 현대인에게 기독교진리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것이 현대신학의 과제일 것이다.
현대신학의 출발은 슐라이에르마하(Schleiermacher)에서 리츨(Ritschl)로 발트(Barth)로 이어진다. 이들은 서구 현대문명의 맥락에서 서양현대지식인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데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현대인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는 신학체계를 이룬 것이 현대조직신학이다. 독일인학자 본훼퍼(Bonheoffer)는 기독교복음은 현대인 즉 합리적 문명인에게 새로운 방식, 즉 현대적 언어를 통하여 설파되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현대신학의 기본정신인 것이다.
현대신학의 움직임은 20세기에 들어와서 본격화 되었고 20세기 후반에는 기독교신학이 서구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서 아프리카, 중남미, 그리고 아시아에서 줄기차게 전개되고 있다. 남미의 해방신학, 아프리카의 흑인신학, 아시아의 민중신학과 종교신학, 여성신학등 다양하게 세계적 현대신학의 흐름이 대두되고 있다.
현대신학은 이제 서구위주의 신학이 아니다. 서구세력이 현대화의 이름으로 빈곤과 억압 그리고 문화적 신민지화라는 세계적 문제를 야기시켰고 이제는 현대문명에 대한 깊은 회의가 지구의 동서남북에서 강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신학도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는 무엇일까. 우선은 기독교신앙의 근본을 확고히 정립하기위하여 성경연구를 심화하여야 할 것이다. 성경의 기반 없이 어떤 신학도 확고히 설 수 없다. 이것은 성경에 대한 교리적 이해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성경이 성경말씀, 하나님의 말씀이 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인간과 역사와 사회에 대한 깊고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체적인 역사적 사회적 구성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과 인간공동체에게 주어진다. 시대의 명확히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역사와 사회본질과 현실과 변화를 인식하여야 한다.
셋째로는 기독교신앙과 실천을 위한 이론과 실천을 전문적인 수준에서 터득하여야 한다. 현대사회는 복잡하고 급변하기 때문에 고정적이고 경직된 신학적 이론과 초보적인 실천신학훈련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 신학도의 태도는 개방적이고 창조적이어야 전문적이고 효과적이어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는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신학이론과 실천력을 겸비한 기독교 지도력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부름에 호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신학적 기초를 튼튼히 다져야 하며 그 위에 신학 이론과 전문 적 창조적인 실천력을 연마하여야 한다.
현대신학이란 이러한 현대문명의 도전에 대응하는 신학적 노력이 되어야 한다. 현대신학의 교회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 하나는 현대문명의 논리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기독교의 성경과 교리를 보전하려는 보수신학의 흐름이 있고 또 하나는 현대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현대 문명 속에서 기독교의 진리를 증거하려는 "현대신학"의 흐름이 있다. 이러한 두 가지의 흐름은 서구사회에서 줄기차게 일고 있으며 오늘 세계개신교의 큰 두가지의 신학적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이 두 가지가 모두 기독교복음의 진리를 보다 충실하게 증거하려는 동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보수신학과 현대신학 사이에서 두 흐름의 장점을 각각 잘 조화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
현대신학 성경해석에 현대적 합리성의 기준을 적용하는 문제가 제기 된다. 극단적인 현대신학은 성경의 진리가 과학적 합리성의 기준에 합당하지 않으면 부정하는 태도를 가진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라든 지, 동정녀 탄생이라든지, 기적이라든지를 부인하는 태도가 극단적인 현대신학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태도는 현대정신을 절대화하는 것이다. 현대과학적 합리성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이성절대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합리적 방법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결과는 성경의 권위를 붕괴시킬 뿐 아니라 성경을 과학책으로 혼동하는 오류를 범하고 나아가서는 계몽철학자들처럼 이성을 우상처럼 절대신으로 섬기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최근 보수신학의 흐름 속에서도 과학적 방법으로 성경의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다는 명제를 전제하고 이것을 추구하는 노력이 있는 듯하다. 이것 역시 성경의 권위와 진리성을 과학적 규범에 성경의 권위를 종속시키는 오류를 갖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이 좌우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권위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이성을 하나님이 주신 하나의 은혜로 인정하고 현대문명도 긍정적으로 인정하면서 성경과 신학적 진리를 현대인에게 설득력이 있도록 해석하는 신학적 자세가 필요하다.
서구의 현대적 성경연구는 성경에 대한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밝히고 성경본문의 고증, 편집사, 문학적 형식, 사회경제적 배경 등 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이러한 결과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금물이지만 그것들이 성경의 권위를 해치지 않고 성경해석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성경해석이란 이런 비평적 방법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오늘 우리에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경건한 영적 자세를 핵심으로 하여야 진정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인간이성과 합리적 방법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현대기독교의 흐름은 기독교의 진리를 형이상학론리에 의하여 설파하려는 데에 그치지 않고 기독교의 근본적 진리를 현대인에게 설득력있게 설명하는 초점을 맞춰야 한다. 유신론의 문제라든지, 신정론이라든지, 역사와 종말을 다루는 종말론이라든지, 인간이성의 합리성과 제한성을 인정하면서 현대인에게 기독교진리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것이 현대신학의 과제일 것이다.
현대신학의 출발은 슐라이에르마하(Schleiermacher)에서 리츨(Ritschl)로 발트(Barth)로 이어진다. 이들은 서구 현대문명의 맥락에서 서양현대지식인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데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현대인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는 신학체계를 이룬 것이 현대조직신학이다. 독일인학자 본훼퍼(Bonheoffer)는 기독교복음은 현대인 즉 합리적 문명인에게 새로운 방식, 즉 현대적 언어를 통하여 설파되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현대신학의 기본정신인 것이다.
현대신학의 움직임은 20세기에 들어와서 본격화 되었고 20세기 후반에는 기독교신학이 서구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서 아프리카, 중남미, 그리고 아시아에서 줄기차게 전개되고 있다. 남미의 해방신학, 아프리카의 흑인신학, 아시아의 민중신학과 종교신학, 여성신학등 다양하게 세계적 현대신학의 흐름이 대두되고 있다.
현대신학은 이제 서구위주의 신학이 아니다. 서구세력이 현대화의 이름으로 빈곤과 억압 그리고 문화적 신민지화라는 세계적 문제를 야기시켰고 이제는 현대문명에 대한 깊은 회의가 지구의 동서남북에서 강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신학도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는 무엇일까. 우선은 기독교신앙의 근본을 확고히 정립하기위하여 성경연구를 심화하여야 할 것이다. 성경의 기반 없이 어떤 신학도 확고히 설 수 없다. 이것은 성경에 대한 교리적 이해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성경이 성경말씀, 하나님의 말씀이 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인간과 역사와 사회에 대한 깊고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체적인 역사적 사회적 구성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과 인간공동체에게 주어진다. 시대의 명확히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역사와 사회본질과 현실과 변화를 인식하여야 한다.
셋째로는 기독교신앙과 실천을 위한 이론과 실천을 전문적인 수준에서 터득하여야 한다. 현대사회는 복잡하고 급변하기 때문에 고정적이고 경직된 신학적 이론과 초보적인 실천신학훈련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 신학도의 태도는 개방적이고 창조적이어야 전문적이고 효과적이어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는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신학이론과 실천력을 겸비한 기독교 지도력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부름에 호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신학적 기초를 튼튼히 다져야 하며 그 위에 신학 이론과 전문 적 창조적인 실천력을 연마하여야 한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