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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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장기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있다. 이를테면 중국장기에서 진공능력을 가진 말씨는 4분의 3을 차지하고 조선장기에서 진공능력을 가진 말씨는 8분의 7을 차지하고 있으나 일본장기의 말씨는 죄다 진공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죄다 적진에 돌입할 수 있다. 일본장기에서 조선장기의 포에 해당한 위치에 놓여 있는 각(角)과 비(飛)는 진공력이 가장 강한 두 개의 작용이 같지 않은 말씨로서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직접 진공에 투입할 수 있으므로 그 진공력이 조선장기나 중국장기의 차보다도 더 커 보인다고 한다.
장기의 승부겨룸
상수가 한을 쥐고, 하수는 초를 쥐며, 하수의 선수로 시작하여 서로 한 수씩 교대로 둔다. 두다가 장이 갈 곳 없이 꼼짝 못하게 되면 지게되며, 똑같은 수를 무제한으로 되풀이하게 되는 경우는 만년수라 하여 무승부가 된다. 장과 장의 사이에 아무런 장애물도 없이 마주 서게 되었을 때도 먼저 그와 같은 수를 건 편에 의한 빅장군이라 하여 역시 비기게 된다.
조선장기는 중국장기보다 비기는 경우가 많다. 아군의 병력이 몇 배나 더 강한 경우에도 상대방의 연속 장군을 막아 낼 수 없으면 결국 비기고 마는데 이는 중국장기와 판이하게 구별된다. 중국장기에서는 연속 같은 방법으로 장군을 부르는 것이 엄금되어 있으며 어떤 때는 졸 하나만 가지고도 상대방을 이길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조선장기에서 비기는 경우가 자주 나타나게끔 규정한 원인은 무엇일까? 조선민족이 지리적으로 장기간 동북아세아의 한쪽 끝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송원명청 어느 왕조시대에 있어서나 국민들은 언제나 인근 민족과 평화롭게 지내기를 염원하여 왔다. 그러므로 싸움에서 이길 수 없으면 비기는 것으로 만족하였으며 약한 병력으로 강한 적과 비기는 것을 자기의 승리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장기에 반영된 일본민족의 문화심리는 이와 같지 않다. 일본장기에서는 포로된 상대방의 말씨를 자기의 말씨로 만들어 다시 진공에 투입시킬 수 있으므로 비기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일본장기의 사유방식에서 이기지 못하는 것은 곧 지는 것이고 비기자고 하는 것은 곧 지는 것과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이는 해양문화특성을 지닌 일본민족의 역사적으로 표현된 진공적모험적 성격이 이 민족의 장기문화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장기에서는 필승의 의식이 보다 더 강하고 조선장기나 중국장기에서는 불패의 의식이 보다 더 강하다. 지금은 조선말에서 필승과 불패라는 두 단어가 합치어 하나의 성구를 이루고 있으나 기실 두 단어가 추구하는 전략적 목표와 문화심태는 같지 않다.
조선장기는 중국장기에 비해서는 다소 보수적인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조선장기는 동일한 유교문화권 안에서 형성된 공통한 심미의식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규칙적인 미대칭적인 미조화로운 미를 추구하는 면에 있어서는 보다 더 중국장기에 가깝다. 장기문화에 침투된 이러한 잠재의식은 이 민족들이 역사발전행정에서 실행해온 각이한 내외정책그들의 고유한 사고방식처세철학군사전략사상에 그대로 투사되어 있다. 그러므로 동방의 장기문화를 연구하는 것은 부동한 민족들의 심층문화구조를 이해하는 중요한 수단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후기
대부분의 놀이문화들이 그렇지만 장기 또한 그 정확한 유래와 역사는 정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대략의 유래와 역사를 찾아본 결과. 이것을 단지 장기라는 대중적 게임의 문화로써만 생각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는 것 같다. 놀이문화지만 이것은 각 나라의 문화와 정서 가 배어나는 즉 그 시대의 국민성을 반영하는 어떻게 보면 역사요 국민들에 삶의 애환을 게임이라는 하나의 놀이로 승화시킨 것은 아닐까? 위에서 고찰 한바와 같이 한국/중국/일본/서양이라는 먼 나라이면서 가까운 나라인 그들에 장기라는 게임 문화만으로도 그 나라에 특성을 설명 할 수 있었고 그것이 바로 서로 같은 뿌리에서 생성되었지만 약간씩 혹은 완전 다른 형태로 발전하게 되어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것을 처음 조사 할 때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차츰 자료를 찾고 그것을 읽어보면서 장기 말의 위치/말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도 그 나라에 사람들에 심리와 시대적 사정을 반영, 발전해온 것이라는 것을 보고 느끼게 되었으며 비록 게임이긴 하지만 이것은 단지 게임으로서 즐기는 것보다는 우리 선조들에게의 살아 숨쉬는 역사요, 삶의 지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기는 놀이이다. 하지만 면면이 내려오는 움직이는 역사이다 라고 말하고 싶다.
*어구
상희(象戱)상기상혁(象奕) : 중국장기를 뜻함
서거정 : 조선 초기 문신학자. 자는 강중(剛中), 초자는 자원(子元), 호는 사가정(四佳亭)정정정(亭亭亭). 본관은 달성(達城). 권근(權近)의 외손이다. 1444년(세종 26) 식년문과에 급제,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을 지내고, 그 뒤 집현전박사경연사경(經筵司經)이 되었다. 51년(문종 1) 부교리에 올랐으며, 57년(세조 3)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우사간지제교에 올랐다. 60년 사은사(謝恩使)로 중국에 갔을 때 그곳 학자들과 문장시(詩)를 논하여 해동(海東)의 기재(奇才)라는 찬탄을 받았다. 귀국 후 대사헌이 되었고, 《경국대전》 찬수에 참가하였으며, 67년 형조판서로서 예문관대제학성균관지사를 겸하여 문형(文衡)을 관장하였다. 70년(성종 1)에 좌참찬이 되었고, 71년 순성명량좌리공신(純誠明亮佐理功臣) 3등에 녹훈되고 달성군(達城君)에 봉하여졌다. 여섯 왕을 섬겨 45년간 조정에 봉사하였으며, 조선 초기 관학을 대표한 핵심적 학자로 신라 이래 역대 한문학을 집대성한 《동문선(東文選)》을 엮었다. 시문집으로 《사가집(四佳集)》이 전하며,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경국대전》 《연주시격언해(聯珠詩格言解)》 등을 공동으로 엮었다. 개인저술로 《역대연표》 《동인시화(東人詩話)》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필원잡기》 《동인시문(東人詩文)》 등이 있다. 대구의 구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충(文忠).
출처
http://www.nol2i.com/
http://www.koreajanggi.co.kr/
http://janggicafe.com/zboard/zboard.php?id=1&no=113
  • 가격1,4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3.06.29
  • 저작시기2013.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54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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