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7-18세기 조선의 교역과 은
Ⅰ. 서론
Ⅱ. 조선과 청나라의 교류
1. 조공책봉과 조공사행제도
2. 사절단이 휴대한 은의 용도와 출처
3. 조선과 청나라의 구체적 교역양상
Ⅲ. 조선과 일본과의 교류
1. 조선의 상황
2. 조선과 일본의 구체적 교역양상
Ⅳ. 결론
Ⅴ. 참고문헌
Ⅰ. 서론
Ⅱ. 조선과 청나라의 교류
1. 조공책봉과 조공사행제도
2. 사절단이 휴대한 은의 용도와 출처
3. 조선과 청나라의 구체적 교역양상
Ⅲ. 조선과 일본과의 교류
1. 조선의 상황
2. 조선과 일본의 구체적 교역양상
Ⅳ. 결론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대일 공무역에서 수입품은 동, 납, 소목, 흑각, 명반 등이 중심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동, 납, 단목, 흑각이 이른바 공무역의 4정품이었다. 반면 수출품은 목면, 쌀이 중심이었다. 조일 무역은 공무역도 활발하게 전개되었지만, 개시무역이 보다 중심이었다. 대일 개시무역에서 수출품은 중국산 생사, 견직물과 조선산 인삼, 수입품은 은과 동이 주종을 이루었다. 수입된 은은 중국산 생사나 견직물을 수입하기 위해 대부분 중국으로 수출되었다. 동이나 납은 대포를 비롯한 무기의 제조나 화폐주조에 많이 사용되었다. 문경호, 2009, 「앞 논문」. pp.238~239
일본의 은과 중국의 백사를 교환하는 형태의 이런 중계무역은 약 100년 동안 계속되었다. 일본에서 백사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청국상인의 장기(長崎) 직항이 이루어진 1684년 이후에도 조선에서 일본으로 수출하는 백사의 양은 큰 변화가 없었고,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였다. 이런 과정에서 세계 2위의 은 수출국 지위에 올랐던 일본은 대마도-조선 루트를 통해 다량의 은을 송출하고 있었다. 소가의 여권을 지닌 대마도 상인들은 공식적으로는 연 20척의 배를 부산으로 보내게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여러 편법을 통해서 더 많은 배를 보냈다. 1709년 무렵에는 두 지역 간에 90척의 배가 왕래했고, 이 중 30여 척의 작은 배들이 은을 수송했다. 1710년에 은 함유랑 80%짜리 수출용 특수 화폐를 제작하였다. 인삼대왕고은(人蔘代往古銀)이라 불리는 이 특주은 화폐 120개가 있어야 조선 인삼 한 근을 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의 한 연구자는 이렇게 해서 일본에서 조선으로 들어온 은의 양이 매년 5.3톤에 달했다고 추산하였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이 은은 조선 상인들이나 역관들의 주요한 자금원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즉 대마도를 통해 수출되는 은의 최종 목적지는 중국이었다. 조선에 들어온 은이 중국으로 가고 또 중국 상품이 다시 대마도로 전해지는 것은 중국을 왕래하는 조선의 사절들이 담당했다. 이러한 삼각무역의 무역로는 중국에서부터 한양을 일본까지 이어졌다. 이는 중국 실크로드에 빗대어 인삼로드 혹은 실버로드라고 불릴 만한 것이었다. 주경철, 2008, 『앞의 책』. pp.268~270
Ⅳ. 결론
대항해시대에 조선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을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세계 최대의 은 수요자(중국)와 세계 2위의 은 공급자(일본) 사이에서 조선은 은 흐름의 중개인 역할을 했다. 다만 본 글에서는 조선이 단순한 중국과 일본의 중개자가 아닌 주체적 참여자였을 수 있다는 것을 조공무역과 중개무역의 존재를 들어 밝히고자 했다. 조선 역관과 상인들은 공무역, 사무역, 밀무역 등 다양한 형태의 무역을 통해 중국과 일본의 수요를 적절히 파악하여 상품을 공급하고 이윤을 획득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조선은 교역을 통하여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여 내부의 화폐수요를 충당한 셈이 된다.
다만 조선은 분명 일본 은(銀)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 은(銀)의 영향만 받았다고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은 분명 일본과 청나라 사이의 중개무역을 통하여 이윤을 얻었고 이는 일본의 은(銀)과 청나라의 은(銀)을 모두 사용하였다고 보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조선을 통한 은의 유통 흐름은 대항해시대에 ‘아메리카의 귀금속 생산-유럽으로의 유입-아시아로의 유출’이라는 현상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서 개별적 움직임이 나타났다는 것을 말해주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Ⅴ. 참고문헌
주경철, 2008, 『대항해시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홍성구, 2008, 「조공무역체제론의 재검토」, 『근대 중국 대외무역을 통해 본 동아시아』, 동북아역사재단.
유적, 2009, 「淸나라시대의 對조선무역」, 부산대학교, 석사학위논문.
하세봉, 1996, 「80년대 이후 일본학계의 “아시아 교역권”에 대한 논의 - 학문적 맥락과 논의를 중심으로」, 『중국현대사연구』 2.
문경호, 2009, 「은의 유통경로를 통해 본 17~18세기 동아시아의 국제교류」, 『역사와 역사교육』, 19호.
정성일, 「朝鮮의 銅錢과 日本의 銀貨 : 貨幣의 流通을 통해 본 15~17世紀 韓日關係」, 『한일관계사연구』, 20호.
한명기, 1992,「17세기 초 은의 유통과 그 영향」, 『규장각』, 제 15집.
김태훈, 2010, 「17~18세기 한일관계사 연구의 학설사적 검토」,『동아시아 세계와 임진왜란』, 한일관계사연구논집 편찬위원회
일본의 은과 중국의 백사를 교환하는 형태의 이런 중계무역은 약 100년 동안 계속되었다. 일본에서 백사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청국상인의 장기(長崎) 직항이 이루어진 1684년 이후에도 조선에서 일본으로 수출하는 백사의 양은 큰 변화가 없었고,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였다. 이런 과정에서 세계 2위의 은 수출국 지위에 올랐던 일본은 대마도-조선 루트를 통해 다량의 은을 송출하고 있었다. 소가의 여권을 지닌 대마도 상인들은 공식적으로는 연 20척의 배를 부산으로 보내게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여러 편법을 통해서 더 많은 배를 보냈다. 1709년 무렵에는 두 지역 간에 90척의 배가 왕래했고, 이 중 30여 척의 작은 배들이 은을 수송했다. 1710년에 은 함유랑 80%짜리 수출용 특수 화폐를 제작하였다. 인삼대왕고은(人蔘代往古銀)이라 불리는 이 특주은 화폐 120개가 있어야 조선 인삼 한 근을 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의 한 연구자는 이렇게 해서 일본에서 조선으로 들어온 은의 양이 매년 5.3톤에 달했다고 추산하였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이 은은 조선 상인들이나 역관들의 주요한 자금원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즉 대마도를 통해 수출되는 은의 최종 목적지는 중국이었다. 조선에 들어온 은이 중국으로 가고 또 중국 상품이 다시 대마도로 전해지는 것은 중국을 왕래하는 조선의 사절들이 담당했다. 이러한 삼각무역의 무역로는 중국에서부터 한양을 일본까지 이어졌다. 이는 중국 실크로드에 빗대어 인삼로드 혹은 실버로드라고 불릴 만한 것이었다. 주경철, 2008, 『앞의 책』. pp.268~270
Ⅳ. 결론
대항해시대에 조선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을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세계 최대의 은 수요자(중국)와 세계 2위의 은 공급자(일본) 사이에서 조선은 은 흐름의 중개인 역할을 했다. 다만 본 글에서는 조선이 단순한 중국과 일본의 중개자가 아닌 주체적 참여자였을 수 있다는 것을 조공무역과 중개무역의 존재를 들어 밝히고자 했다. 조선 역관과 상인들은 공무역, 사무역, 밀무역 등 다양한 형태의 무역을 통해 중국과 일본의 수요를 적절히 파악하여 상품을 공급하고 이윤을 획득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조선은 교역을 통하여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여 내부의 화폐수요를 충당한 셈이 된다.
다만 조선은 분명 일본 은(銀)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 은(銀)의 영향만 받았다고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은 분명 일본과 청나라 사이의 중개무역을 통하여 이윤을 얻었고 이는 일본의 은(銀)과 청나라의 은(銀)을 모두 사용하였다고 보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조선을 통한 은의 유통 흐름은 대항해시대에 ‘아메리카의 귀금속 생산-유럽으로의 유입-아시아로의 유출’이라는 현상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서 개별적 움직임이 나타났다는 것을 말해주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Ⅴ. 참고문헌
주경철, 2008, 『대항해시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홍성구, 2008, 「조공무역체제론의 재검토」, 『근대 중국 대외무역을 통해 본 동아시아』, 동북아역사재단.
유적, 2009, 「淸나라시대의 對조선무역」, 부산대학교, 석사학위논문.
하세봉, 1996, 「80년대 이후 일본학계의 “아시아 교역권”에 대한 논의 - 학문적 맥락과 논의를 중심으로」, 『중국현대사연구』 2.
문경호, 2009, 「은의 유통경로를 통해 본 17~18세기 동아시아의 국제교류」, 『역사와 역사교육』, 19호.
정성일, 「朝鮮의 銅錢과 日本의 銀貨 : 貨幣의 流通을 통해 본 15~17世紀 韓日關係」, 『한일관계사연구』, 20호.
한명기, 1992,「17세기 초 은의 유통과 그 영향」, 『규장각』, 제 15집.
김태훈, 2010, 「17~18세기 한일관계사 연구의 학설사적 검토」,『동아시아 세계와 임진왜란』, 한일관계사연구논집 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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