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 경주 쪽샘지구 + 대릉원 천마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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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답사 - 경주 쪽샘지구 + 대릉원 천마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답사포인트

Ⅰ. 들어가기
<시대별 고분의 형태>
1. 신라식 목곽묘 (신라식 덧널무덤)
2. 적석목곽분 (돌무지덧널무덤)
3. 석실봉토분 (돌방흙무덤)

Ⅱ. 경주 쪽샘지구
1. 발굴 현황
2. 고분의 형태
① 옹관묘
② 이혈 주부곽식 목곽묘
③ 적석목곽묘
3. 쪽샘지구의 유물

Ⅲ. 천마총
1. 개요
2. 배경
3. 출토유물
① 천마총금관 (天馬塚金冠)
②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慶州 天馬塚 障泥 天馬圖)
③ 천마총 금제 관식 (天馬塚 金製冠飾)
4. 고고학적, 역사적 고찰
① 구조 및 장법
② 부장품

Ⅲ. 마치면서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발굴되었기 때 문이다. 이러한 무덤 조성은 6세기 초 신라왕인 소지왕, 지증왕, 법흥왕으로 무덤의 주인을 예측하게 한다. 그리고 그 시기 백제 무령왕릉의 출토유물들과 비교를 하여 무령왕릉 재위기간과 비슷한 지증왕을 유력한 무덤의 후보로 생각해볼 수 있다.
둘째, 천마총에서 발견된 금관의 장식품인 입식의 형태에서 추정해볼 수 있다. 금관에 달려있는 입식의 단수는 마립간 시대의 신라에서는 그것이 어느 왕조의 초대 임금인지, 2, 3, 4대를 계속해서 등극한 임금인지를 나타내는 표식인데 천마총의 입식 형태는 2, 3, 4대를 계속해서 등극된 임금을 뜻하고 있고, 소지왕과 지증왕은 모두 내물왕 이후 4대에 걸쳐 계속 등극한 가계의 임금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천마총 금관의 주인이 특히 지증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로는 소지왕의 금관에는 '생명의 열매'를 뜻하는 곡옥이 달려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지왕의 경우 왕통을 계승할 아들을 두지 못했으므로 소지왕의 무덤은 4단짜리 입식이긴 하되 곡옥이 하나도 달려 있지 않은 금관이 출토된 금령총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천마총은 신라 22대 지증왕의 능으로 추정되고 있다.
3. 출토유물
① 천마총금관 (天馬塚金冠)
천마총에서 발견된 신라 때 금관으로 국보 제188호이다. 천마총은 경주 고분 제155호 무덤으로 불리던 것을 1973년 발굴을 통해 금관, 팔찌 등 많은 유물과 함께 천마도가 발견되어 천마총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금관은 천마총에서 출토된 높이 32.5㎝의 전형적인 신라 금관으로 묻힌 사람이 쓴 채로 발견되었으며 금관 안에 쓰는 내관이나 관을 쓰는데 필요한 물건들이 모두 널(관) 밖에서 다른 껴묻거리(부장품)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②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慶州 天馬塚 障泥 天馬圖)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는 국보 제207호로 말의 안장 양쪽에 달아 늘어뜨리는 장니에 그려진 말 그림으로 신라시대의 회화이다. 신라회화로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작품으로 그 가치가 크다. 가로 75㎝, 세로 53㎝, 두께는 약 6㎜로 1973년 경주 황남동고분 155호분(천마총)에서 발견되었다.
③ 천마총 금제 관식 (天馬塚 金製冠飾)
천마총에서 나온 관식은 보물 제617호로 널 <관> 밖 머리 쪽에 껴묻거리(부장품)가 들어있는 상자 뚜껑 위에서 발견되었다. 전체를 세로로 반으로 접었던 흔적이 있으며, 밑에는 못 구멍이 하나 나있어 어떠한 형태로 쓰였던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4. 고고학적, 역사적 고찰
① 구조 및 장법
천마총은 그 규모에 있어서 봉토의 직경이 47m, 높이 12.7m로서 금관총의 추정복원치인 45m와 12m에 맞먹는 것으로 경주지구에 유존하는 고분 가운데서도 거분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고분이 적석목곽분이라는 점에서는 다른 신라 고분과 다른 점이 없으나 덧널의 밑 부분이 지하에 있지 않고 옛 지표위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것은 경주지구 고분 가운데서는 처음 보는 일이며 이러한 구조가 지하수의 침투를 막고 따라서 유기물의 부패속도를 늦추었거나 방지하는데 큰 역임을 맡았던 것이라고 추정된다.
한편 적석부나 목곽상부에 유물을 둔 흔적은 식리총에서도 발견되었던 일이지만 이 천마총의 경우 그 상태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났다. 목곽 내에서 부장품수장궤위에 놓인 것으로 보이는 태환식금이식과 목관위에 놓았던 것으로 보이는 세환식 금이식 등은 모두 단순한 부장품이 아니고 그 당시의 어떤 특수한 의의를 지닌 장법의 일환으로 행하여 진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 마구와 금이식은 아마 실제 사람이나 말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순장의 전통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금이식의 경우 종래에 조사된 고분들에서 세환식은 대체로 남자가, 태환식은 대체로 여자가 패용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여기서의 태세각한 쌍의 이식은 남녀, 두 사람의 신하 또는 친근자를 뜻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되는 것이다.
천마총 목관내부에 있어서는 직접 패용하던 장신구와 대도 이외에는 다른 부장품이 들어 있지 않았는데 이 피장자가 금관, 금과대, 금요패류를 패용하고 있는 것은 신라로서는 최고의 신분을 표시하는 것으로 이와 같은 전금장신구 패용의 예로는 금관총, 금영총, 서봉총의 삼예 밖에 없었고 이들은 모두 신라 마립간들의 무덤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② 부장품
천마총의 부장품은 그 질이나 중요성에 있어서 지금까지 조사된 고분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것이라고 하겠다. 금제장신구류는 그 금질이 특히 순량할 뿐 아니라 두텁고 강하며 금관의 경우는 지금까지의 발견된 것들과는 달리 실용품으로서의 가능성을 시현하였을 뿐 아니라 그 형태의 소박함, 강건함이 고대 신라의 힘과 기상을 그대로 구형화한 것 같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라 마립간들의 위엄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고 있다.
Ⅲ. 마치면서
지난 70~80년대 천마총과 안압지 등 귀중한 유물들이 대량으로 발굴된 경주는 한국 고고학 연구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신라 고분 밀집 지역으로써 그곳의 발굴에 대한 기대가 높으나 현재까지의 성과는 기대치에 비해 다소 미미한 편이다. 하지만 쪽샘지구에 대한 발굴은 앞으로도 20년 동안 작업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유물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Ⅳ. 참고문헌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 경주 쪽샘유적(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발굴조사 성과)
경주 황남동 155호 고분 발굴약보고(慶州 皇南洞 155號 古墳 發掘略報告)
경주시·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慶州 쪽샘지역 生活文化 調査硏究. 上
문화재관리국, 『천마총발굴조사보고서(天馬塚發掘調査報告書)』, 1974
『신라고분연구(新羅古墳硏究), 崔秉鉉』
한국 고고학회, 시대별 고분의 형태 - 사진 출처 : 한국 고고학 강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립 경주 박물관』 http://gyeongju.museum.go.kr/html/kr/
국립경주문화제연구소 홈페이지 http://www.gcp.go.kr/ (사진)
문화재청 http://www.cha.go.kr/main/KorIndex!korMain.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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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6.26
  • 저작시기2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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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60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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