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프랑스 사회당과 노선변화
Ⅲ. 프랑스 사회당과 장조레스
Ⅳ. 프랑스 사회당과 프랑스 공산당
Ⅴ. 프랑스 사회당과 제3의길
참고문헌
Ⅱ. 프랑스 사회당과 노선변화
Ⅲ. 프랑스 사회당과 장조레스
Ⅳ. 프랑스 사회당과 프랑스 공산당
Ⅴ. 프랑스 사회당과 제3의길
참고문헌
본문내용
천> 2003. 2. 참고) 때문에 당세가 급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PCF는 같은 시기의 독일 공산당에 비해 노동자정당으로서 견실한 성장을 보였다. 한때 모든 당원들을 공장세포로 일괄 편제하면서까지(물론 이는 1년만에 철회되었지만) 노동계급의 일상에 밀착된 활동을 강조했다. PCF와 CGTU는 1차 대전을 계기로 프랑스에 등장한 신흥 금속산업의 노동자들로부터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파리 교외의 노동자 밀집지역과 북부 산업지대에서 당은 확고한 지역 기반을 마련했다. PCF는 이들 지역에서 지자체를 장악해 무료 급식과 무상 보육, 기업에 대한 누진과세 등을 실시했다. 모리스 토레즈 같이 다년간의 노동조합 활동 경험을 지닌 젊은 노동자 출신 지도자도 등장했다. 20년대 말이 되면 총선 득표수도 100만 명 선에 이른다. 그러나 결선투표제 때문에 원내 세력은 극히 미약했다(최대 14명). 한편 SFIO의 활동은 어떠했는가? SFIO는 적어도 강령의 측면에서는 PCF와 거의 다를 바 없이 급진적이었다. 국제적으로도 개혁주의적인 제2인터내셔널에 복귀하지 않고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노동당이 만든 2.5인터내셔널에 가입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뭇 복잡했다. 당내 우파는 급진당과 중도좌우파 연정을 이루길 바랬고, 다수 당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좌파는 이를 격렬히 반대했다. 당내 좌파 중에는 PCF보다 더 극좌적인 부분도 있었다. 결국 SFIO가 선택한 것은 보수우파 정부보다는 중도우파인 급진당 정부를 외곽에서 지지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SFIO는 주로 프랑스 사회에 특징적인 전통적 소규모 산업의 노동자들에게 지지를 얻었다. 그래서 지역적으로는 소도시나 일부 농촌에 기반을 두었다. 대공장 노동자들이 PCF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SFIO는 반대로 중간층으로 지지를 넓혀 갔다. 이러한 발전 방향이 당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한다는 점 때문에 SFIO도 \'사회당 동지회\'라는 이름으로 현장 당조직을 건설하려고 시도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당원 수는 최대 20만 명 선이었는데 이는 다른 유럽 나라의 사회민주당들에 비하면 결코 많은 것은 아니었다. 선거에서 득표수는 공산당보다 조금 많은 150만~200만표 수준이었지만, 결선투표에서 급진당과 암묵적으로 혹은 공개적으로 선거연합을 맺곤 했기 때문에 의석수는 훨씬 많았다.
Ⅴ. 프랑스 사회당과 제3의길
조스팽 사회당 정권에 의한 복지국가의 개혁은 상당부분 1984년 이래 사회당이 추진해 온 복지국가 개혁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회당내 다수 중도계열을 형성하고 있는 미테랑 계열의 조스팽은 사회당의 좌우 편향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중간적인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사회당 자체가 이미 상당부분 우경화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중도의 길 역시 우경화된 중도임에는 틀림없다.
프랑스 사회당이 표방하는 ‘쇄신좌파’는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당내 우파들이 주장해온 공화주의 강조를 좇아간 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회당의 정체성은 사회주의적 조치를 통해 유지되기보다는 ‘공화주의적 연대’를 통해 재형성되고 있었고, 조스팽 정부의 정책에서도 그 점은 지속되고 있었다.
따라서 영국과 독일의 ‘제3의 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전통적 사회주의의 맥락을 덜 벗어났다는 평가도 가능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공화주의’라는 프랑스식 개혁 사회주의의 가치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지개 연정의 구체적인 정책도 공산당의 연정참여라는 요소를 차치하면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의 수렴이라는 보다 넓은 범주의 일반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곧 부유층에 대한 세금 증가를 비롯한 소득 불평등 감소 정책이 전통적 좌파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음이 인정되지만, 기업의 사회적 부담금을 낮추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연장선상에 놓인 조치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참고문헌
노서경(1989) / 프랑스 통합사회당 창당과 장 조레스, 프랑스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느티나무
노서경(1999) / 프랑스 노동계급을 위한 장 조레스의 사유와 실천(1885~1914), 서울대 서양사학과 박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불어문화권연구소(2004) / 프랑스 하나 그리고 여럿, 도서출판 강
오광호(1992) / 프랑스 제3공화정 전기 사회주의 연구, 서울대 서양사학과 박사학위논문
유럽정치연구회(2004) / 유럽정치, 백산서당
조홍식(2001) / 1981년 이후 프랑스 사회당 정체성 위기에 대한 인식, 국제정치논총 제41집, 3호
하지만 PCF는 같은 시기의 독일 공산당에 비해 노동자정당으로서 견실한 성장을 보였다. 한때 모든 당원들을 공장세포로 일괄 편제하면서까지(물론 이는 1년만에 철회되었지만) 노동계급의 일상에 밀착된 활동을 강조했다. PCF와 CGTU는 1차 대전을 계기로 프랑스에 등장한 신흥 금속산업의 노동자들로부터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파리 교외의 노동자 밀집지역과 북부 산업지대에서 당은 확고한 지역 기반을 마련했다. PCF는 이들 지역에서 지자체를 장악해 무료 급식과 무상 보육, 기업에 대한 누진과세 등을 실시했다. 모리스 토레즈 같이 다년간의 노동조합 활동 경험을 지닌 젊은 노동자 출신 지도자도 등장했다. 20년대 말이 되면 총선 득표수도 100만 명 선에 이른다. 그러나 결선투표제 때문에 원내 세력은 극히 미약했다(최대 14명). 한편 SFIO의 활동은 어떠했는가? SFIO는 적어도 강령의 측면에서는 PCF와 거의 다를 바 없이 급진적이었다. 국제적으로도 개혁주의적인 제2인터내셔널에 복귀하지 않고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노동당이 만든 2.5인터내셔널에 가입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뭇 복잡했다. 당내 우파는 급진당과 중도좌우파 연정을 이루길 바랬고, 다수 당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좌파는 이를 격렬히 반대했다. 당내 좌파 중에는 PCF보다 더 극좌적인 부분도 있었다. 결국 SFIO가 선택한 것은 보수우파 정부보다는 중도우파인 급진당 정부를 외곽에서 지지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SFIO는 주로 프랑스 사회에 특징적인 전통적 소규모 산업의 노동자들에게 지지를 얻었다. 그래서 지역적으로는 소도시나 일부 농촌에 기반을 두었다. 대공장 노동자들이 PCF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SFIO는 반대로 중간층으로 지지를 넓혀 갔다. 이러한 발전 방향이 당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한다는 점 때문에 SFIO도 \'사회당 동지회\'라는 이름으로 현장 당조직을 건설하려고 시도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당원 수는 최대 20만 명 선이었는데 이는 다른 유럽 나라의 사회민주당들에 비하면 결코 많은 것은 아니었다. 선거에서 득표수는 공산당보다 조금 많은 150만~200만표 수준이었지만, 결선투표에서 급진당과 암묵적으로 혹은 공개적으로 선거연합을 맺곤 했기 때문에 의석수는 훨씬 많았다.
Ⅴ. 프랑스 사회당과 제3의길
조스팽 사회당 정권에 의한 복지국가의 개혁은 상당부분 1984년 이래 사회당이 추진해 온 복지국가 개혁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회당내 다수 중도계열을 형성하고 있는 미테랑 계열의 조스팽은 사회당의 좌우 편향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중간적인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사회당 자체가 이미 상당부분 우경화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중도의 길 역시 우경화된 중도임에는 틀림없다.
프랑스 사회당이 표방하는 ‘쇄신좌파’는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당내 우파들이 주장해온 공화주의 강조를 좇아간 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회당의 정체성은 사회주의적 조치를 통해 유지되기보다는 ‘공화주의적 연대’를 통해 재형성되고 있었고, 조스팽 정부의 정책에서도 그 점은 지속되고 있었다.
따라서 영국과 독일의 ‘제3의 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전통적 사회주의의 맥락을 덜 벗어났다는 평가도 가능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공화주의’라는 프랑스식 개혁 사회주의의 가치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지개 연정의 구체적인 정책도 공산당의 연정참여라는 요소를 차치하면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의 수렴이라는 보다 넓은 범주의 일반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곧 부유층에 대한 세금 증가를 비롯한 소득 불평등 감소 정책이 전통적 좌파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음이 인정되지만, 기업의 사회적 부담금을 낮추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연장선상에 놓인 조치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참고문헌
노서경(1989) / 프랑스 통합사회당 창당과 장 조레스, 프랑스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느티나무
노서경(1999) / 프랑스 노동계급을 위한 장 조레스의 사유와 실천(1885~1914), 서울대 서양사학과 박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불어문화권연구소(2004) / 프랑스 하나 그리고 여럿, 도서출판 강
오광호(1992) / 프랑스 제3공화정 전기 사회주의 연구, 서울대 서양사학과 박사학위논문
유럽정치연구회(2004) / 유럽정치, 백산서당
조홍식(2001) / 1981년 이후 프랑스 사회당 정체성 위기에 대한 인식, 국제정치논총 제41집,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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