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으로 달려가는 예술가적 삶을 살려는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갖는다. 환경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증대하고 과학과 기술이 우리의 능력을 신장시키면서, 우리는 점차 이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다고 여긴다. 바야흐로 인간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대단히 자기 충족적인 존재여서, 어떤 초월적 존재에 비굴하게 의존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느낌이 다원주의에서 끌어내기 쉬운 진보에 대한 믿음과 결부될 때, 결과적으로 무제한적인 낙관주의가 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의지를 갖고 있는 한 무엇이든지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니체가 죽은 후, 20세기의 역사는 결코 낙관적이 아니다. 과학이 우리에게 부여한 엄청난 힘은 고귀한 목적뿐만 아니라 극악한 목적에도 사용될 수 있다. 선악의 전통적 범주를 배격하고, 원죄와 죄의식이라는 개념을 유기(遺棄)함으로써 인간의 행복이 증대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인간본성이라는 근본 사실로 말미암아 언제 겪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간과하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인생의 의미와 목적에 관한 단순한 문제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삶이 오로지 우리 각자가 선택한 의미만을 갖는다면, 니힐리즘이 부추기는 좌절을 별로 겪지 않게 될 것이다. 만일 사물의 본성에 기초한 목적이 없다면, 어떠한 선택이든지 유효하게 됨으로써 모든 것은 인위적인 것이 되고 만다. 전체적인 마비상태만이 이러한 믿음의 결과가 될 것이다. 니체는 기독교적 신의 존재가 없다면 그리고 육체가 소멸된 후 남는 실체적 자아가 없다면, 니힐리즘의 유령은 더욱 실감나게 되리라 믿었다. 실제로 그의 니힐리즘은 극단적이어서, 생의 무목적성을 부각시켰으며 도덕의 주요 개념을 파괴하였다. 뿐만 아니라 세계의 객관성을 문제시하였다. 그는 실재에 대한 믿음이 우리의 사유와 믿음에 가하는 제약을 제거하였으며, 그와 함께 진리와 허위의 가능성을 제거하였다. 대신 그는 우리 판단의 퍼스펙티브를 강조했으며, 정태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되어 가는 변화로서의 실재를 강조하였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여전히 진리에 가치를 부여했고, 진리란 결국에는 기독교를 파멸시키는 기독교적 미덕임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과학에 대해 모종의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일관성을 유지한다면, 그래서 그가 우리의 해석이 언제나 무엇에 대한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거짓으로 거부되거나 참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진정한 니힐리즘은 일관되게 언급될 수 없을 만큼 자가당착적이다. 제한된 형태의 니힐리즘만이 종교적 진리와 도덕적 진리를 공격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니체는 질서와 안정에 대한 전제가 유신론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간파했다는 점에서 옳았다. 그에게는 인간본성의 개념이나 적어도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잠재의식의 개념이 없었다. 그는 적어도 어떤 점에서는 이 세계가 명확한 특질을 갖고 있다는 것과 인간이 어떤 종류의 생물체라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니힐리즘을 일관되게 주장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사상의 핵심은 아니다. 우리 인생의 근거를 찾는 것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니체가 제기한 문제는 그러한 근거를 종교로부터 도출할 수 없을 때, 그러한 근거를 가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사실 삶을 파괴하는 원흉이라고 플라톤주의와 기독교를 비난하는 것은 인간 존재의 핵심문제를 제기한다. 우리는 현재 우리의 삶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아니면 근본적으로 그러한 삶에 불만족스러워해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이 최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느끼지 않는가? 우리는 어떤 면에서 부족하지 않는가? 우리가 쉽사리 도달하지 못하는 어떤 목표가 있다는 생각은 현재 상태에 대한 도덕적 반감과 더불어 현재 상태를 개선하려는 의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삶의 부정과 관련되기보다 삶의 향상과 관련된다. 삶이 현재와 같은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삶을 가치 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느낌 때문에 기독교와 같이 개인적인 차원에서든 마르크스주의와 같이 정치적 차원에서든 구원의 문제가 등장한다. 분명히 부활에 관한 기독교의 교리는 우리가 현재 신이 의도한 대로 살고 있지 못함을 암시함으로써 삶의 가치를 부정하기보다는 긍정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삶이 어떤 방향을 갖는다는 확신은 현재의 삶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주장만큼이나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영원회귀에 관한 니체의 사상은 결과적으로 이 두 가지 견해를 모두 거부한다. 우리는 방향도 없고 목적도 없는 끝없이 반복되는 지루함 속에 놓여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상은 인간이 처함 곤경에 대한 암울한 묘사로서 어떠한 처방도 될 수 없다. 오히려 니체는 힘에의 의지에 의한 지배 욕구를 옹호함으로써,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하나 더 추가하였던 것이다.
그는 늘 대단한 정합성을 갖춘 철학자는 아니더라도, 이례적으로 상상력이 풍부하며 독창적인 사상가로 언제까지나 남을 것이다. 그는 분명 진리나 지식, 의미 같은 대단한 단어들을 부주의 하고 불분명하게 마음대로 사용하였다. 그의 두서없는 많은 통찰들은 하이데거나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같은 20세기 핵심적인 철학자들에 의해 훨씬 더 체계적으로 전개되었다. 비록 그에게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온갖 혼란스러운 견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더라도 그의 생각은 분명히 그들로 하여금 근대 세계와 그것의 독특한 문제들에 대해 달리 생각하도록 고무하였다. 의심할 여지없이 니체의 철학은 언제까지나 영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데이브 로빈슨, 『니체와 포스트모더니즘』, 이제이북스, 2002, pp.79-80
참고 문헌
김종우, 『구조주의와 그 이후』, 살림출판사, 2007, pp. 120-123
J.P 스턴,『니체』, 시공사, 1998,
데이브 로빈슨, 『니체와 포스트모더니즘』, 이제이북스, 2002
http://adari.tistory.com/245
http://blog.naver.com/chaosmos77/60027127411
http://blog.naver.com/ilovekdjy/44455422
우리는 대단히 자기 충족적인 존재여서, 어떤 초월적 존재에 비굴하게 의존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느낌이 다원주의에서 끌어내기 쉬운 진보에 대한 믿음과 결부될 때, 결과적으로 무제한적인 낙관주의가 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의지를 갖고 있는 한 무엇이든지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니체가 죽은 후, 20세기의 역사는 결코 낙관적이 아니다. 과학이 우리에게 부여한 엄청난 힘은 고귀한 목적뿐만 아니라 극악한 목적에도 사용될 수 있다. 선악의 전통적 범주를 배격하고, 원죄와 죄의식이라는 개념을 유기(遺棄)함으로써 인간의 행복이 증대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인간본성이라는 근본 사실로 말미암아 언제 겪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간과하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인생의 의미와 목적에 관한 단순한 문제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삶이 오로지 우리 각자가 선택한 의미만을 갖는다면, 니힐리즘이 부추기는 좌절을 별로 겪지 않게 될 것이다. 만일 사물의 본성에 기초한 목적이 없다면, 어떠한 선택이든지 유효하게 됨으로써 모든 것은 인위적인 것이 되고 만다. 전체적인 마비상태만이 이러한 믿음의 결과가 될 것이다. 니체는 기독교적 신의 존재가 없다면 그리고 육체가 소멸된 후 남는 실체적 자아가 없다면, 니힐리즘의 유령은 더욱 실감나게 되리라 믿었다. 실제로 그의 니힐리즘은 극단적이어서, 생의 무목적성을 부각시켰으며 도덕의 주요 개념을 파괴하였다. 뿐만 아니라 세계의 객관성을 문제시하였다. 그는 실재에 대한 믿음이 우리의 사유와 믿음에 가하는 제약을 제거하였으며, 그와 함께 진리와 허위의 가능성을 제거하였다. 대신 그는 우리 판단의 퍼스펙티브를 강조했으며, 정태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되어 가는 변화로서의 실재를 강조하였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여전히 진리에 가치를 부여했고, 진리란 결국에는 기독교를 파멸시키는 기독교적 미덕임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과학에 대해 모종의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일관성을 유지한다면, 그래서 그가 우리의 해석이 언제나 무엇에 대한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거짓으로 거부되거나 참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진정한 니힐리즘은 일관되게 언급될 수 없을 만큼 자가당착적이다. 제한된 형태의 니힐리즘만이 종교적 진리와 도덕적 진리를 공격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니체는 질서와 안정에 대한 전제가 유신론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간파했다는 점에서 옳았다. 그에게는 인간본성의 개념이나 적어도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잠재의식의 개념이 없었다. 그는 적어도 어떤 점에서는 이 세계가 명확한 특질을 갖고 있다는 것과 인간이 어떤 종류의 생물체라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니힐리즘을 일관되게 주장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사상의 핵심은 아니다. 우리 인생의 근거를 찾는 것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니체가 제기한 문제는 그러한 근거를 종교로부터 도출할 수 없을 때, 그러한 근거를 가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사실 삶을 파괴하는 원흉이라고 플라톤주의와 기독교를 비난하는 것은 인간 존재의 핵심문제를 제기한다. 우리는 현재 우리의 삶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아니면 근본적으로 그러한 삶에 불만족스러워해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이 최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느끼지 않는가? 우리는 어떤 면에서 부족하지 않는가? 우리가 쉽사리 도달하지 못하는 어떤 목표가 있다는 생각은 현재 상태에 대한 도덕적 반감과 더불어 현재 상태를 개선하려는 의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삶의 부정과 관련되기보다 삶의 향상과 관련된다. 삶이 현재와 같은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삶을 가치 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느낌 때문에 기독교와 같이 개인적인 차원에서든 마르크스주의와 같이 정치적 차원에서든 구원의 문제가 등장한다. 분명히 부활에 관한 기독교의 교리는 우리가 현재 신이 의도한 대로 살고 있지 못함을 암시함으로써 삶의 가치를 부정하기보다는 긍정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삶이 어떤 방향을 갖는다는 확신은 현재의 삶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주장만큼이나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영원회귀에 관한 니체의 사상은 결과적으로 이 두 가지 견해를 모두 거부한다. 우리는 방향도 없고 목적도 없는 끝없이 반복되는 지루함 속에 놓여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상은 인간이 처함 곤경에 대한 암울한 묘사로서 어떠한 처방도 될 수 없다. 오히려 니체는 힘에의 의지에 의한 지배 욕구를 옹호함으로써,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하나 더 추가하였던 것이다.
그는 늘 대단한 정합성을 갖춘 철학자는 아니더라도, 이례적으로 상상력이 풍부하며 독창적인 사상가로 언제까지나 남을 것이다. 그는 분명 진리나 지식, 의미 같은 대단한 단어들을 부주의 하고 불분명하게 마음대로 사용하였다. 그의 두서없는 많은 통찰들은 하이데거나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같은 20세기 핵심적인 철학자들에 의해 훨씬 더 체계적으로 전개되었다. 비록 그에게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온갖 혼란스러운 견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더라도 그의 생각은 분명히 그들로 하여금 근대 세계와 그것의 독특한 문제들에 대해 달리 생각하도록 고무하였다. 의심할 여지없이 니체의 철학은 언제까지나 영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데이브 로빈슨, 『니체와 포스트모더니즘』, 이제이북스, 2002, pp.79-80
참고 문헌
김종우, 『구조주의와 그 이후』, 살림출판사, 2007, pp. 120-123
J.P 스턴,『니체』, 시공사, 1998,
데이브 로빈슨, 『니체와 포스트모더니즘』, 이제이북스, 2002
http://adari.tistory.com/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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