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신학적 인간관의 4대 명제
1) 신 중심주의 :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다.
2) 인간 중심주의 :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3) 원죄설 : 인간은 죄인이다.
4) 내세주의 : 인간의 본향은 피안에 있다.
2. 아퀴나스의 인간관
1) 사상적 배경
2)세계에서 인간의 위치
3) 인간의 본성
4) 인간과 사회
5) 현대적 의의
1) 신 중심주의 :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다.
2) 인간 중심주의 :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3) 원죄설 : 인간은 죄인이다.
4) 내세주의 : 인간의 본향은 피안에 있다.
2. 아퀴나스의 인간관
1) 사상적 배경
2)세계에서 인간의 위치
3) 인간의 본성
4) 인간과 사회
5) 현대적 의의
본문내용
욕구와는 다르다. 의지는 본성상 선 일반을 지향하게 되어 있으므로 필연적으로 선 일반을 욕구한다. 그러나 이 필연성은 강제의 필연성, 즉 억지로 의지에 떠맡겨지는 필연성이 아니다. 그 필연성은 본성적으로 궁극적인 목적이나 행복을 추구하는 의지 자체에서 생겨난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행복할 것을 바라고 있으며, 또 그러기를 바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 필연성은 억지로 외부로부터 부과된 필연성이 아니라 의지의 본성에서 생겨나는 본성적인 필연성이다.
그러나 비록 인간이 필연적으로 행복을 바라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는 개별적인 선택에 관해서 인간에게 자유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행복에 필요하지는 않지만 개별적인 선이 존재하며 그러한 것을 바라느냐 바라지 않느냐 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이다. 자유의지는 의지와는 다른 능력 또는 기능이 아니다. 그러나 그 양자사이에는 개념상의 구별이 있다. 왜냐하면 의지라는 말은 필연적이든(목적이나 행복에 관해서) 자유이든 (목적에 대한 수단의 선택에 관해서)간에 우리가 지니는 모든 의지 작용의 원리로서의 기능을 가리키고 있는 반면에, 자유의지는 목적에 대한 수단의 자유스러운 선택의 원리로서 위와 같은 기능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유롭다는 것은 인간은 이성적이라는 사실의 결과이다. 양은 자연적인 본능에 의해서 늑대를 피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인간은 지성의 자유로운 행위에 의해서 어떤 선은 얻어야 하고 어떤 악은 피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인간은 대상을 어떤 측면에서는 좋다고 생각하여 그것은 마땅히 선택되어져야 한다고 판단할 수 있고, 또는 그 대상을 다른 측면에서는 나쁘다고, 즉 어떤 선을 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것은 마땅히 피해야 한다고 판단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자유의지는 인간이 자유로이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따라서 자유는 의지에 속하지 않고 지성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아퀴나스에 따르면, 자유의지는 인간이 자유로이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할 경우 그것은 어떤 종류의 판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선택 가능한 대상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심사숙고를 목적으로 하는 선택의 결정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4)인간과 사회
인간 본성이 우리에게 어떤 기준을 제시한다는 견해와 관련해 볼 때, 아퀴나스의 자연법 사상은 쉽게 다루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다. 그가 자연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근대의 물리학이나 화학에서 제시하는 자연의 법칙이 아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자연법에 따라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지 그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나아가 그는 법률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신의 섭리에 의한 자연법처럼 일체의 모든 것에 적용되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는 법이 많은 사람들, 즉 높은 수준의 도덕을 견지하지 못하는 대다수에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도덕과 법이 아퀴나스에 있어서 일치하지 않는 까닭은, 도덕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법은 도덕 기능의 하나이다. 법은 자연법으로부터 도출되지 않으면 부당해질 수 있으며, 그것의 목적은 반드시 공동선이어야 한다. 아퀴나스는 법이 상이한 도덕적 관점들 사이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점을 부정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른다.
인간의 법률은 자연법으로부터 도출되어야 하며, 자연법에 대한 아퀴나스의 견해는 스스로의 선을 위해서 모든 것을 주재하는 신의 섭리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이해되어야 한다. 그는 “만물의 입법자인 신 아래서 모든 피조물들은 여러 자연적 성향들을 갖게 된다.” 고 말한다.
아퀴나스에 따르면 자연법의 명령은 우리의 자연적 경향의 위계와 상응한다. 첫째,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존시키려 하고 자연법은 삶의 여러 욕구들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둘째, 우리는 섹스와 종족번식이라는 기본적 욕구의 차원에서 다른 동물들과 공통되는 경향을 유지한다. 셋째, 아퀴나스는 합리적 본성의 차원에서 우리가 선에 대한 경향을 갖는다고 믿는다. 그는 우리가 신에 대한 진리를 알아야 하고, 사회 속에서 함께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경우 우리는 무지를 피해야 하고, 우리와 협동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 나오면서,
5) 토마스 아퀴나스의 현대적 의의
토마스 아퀴나스 아퀴나스가 저술했던 시기는 신학이 지배적 학문이었던 시대였다. 그에게는 인간과 짐승의 유사점과 상이점을 논의하기 위해서 인간과 천사의 위치를 비교하는 일이 중요했다. 그는 천상의 존재유형을 지상의 존재유형과 엄밀하게 구별했다. 이러한 그의 저술은 과학 이전 시대의 산물로 치부될 수 있지만, 이것은 지나치게 피상적인 반응이다. 최근의 정신 개념이 아퀴나스의 영혼 개념과 단순하게 동일시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본성에 관한 논의는 우리가 사후에도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는 기독교인들에게 특히 중요한 문제로서, 우리의 미래 운명이 논의의 초점이 되고 있다. 아퀴나스가 생각했던 것처럼 과연 우리는 천사보다 약간 낮은 존재인가, 아니면 우리는 그저 복잡한 동물에 지나지 않는가? 문제는 정신과 육체의 관계에 관한 문제와 연관된다. 그는 육화된 영혼을 언급했던 까닭에, 결국에는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질만이 참되다고 주장하는 일원론자는 당연히 사후의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아퀴나스는 이러한 문제에 직면했지만 그것을 해결했다는 것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참고문헌
1. 인간이란 무엇인가 / 이대희 / 정림사 / 2009
2. 인간론 강의 / 이대희 / 중외출판사 / 2000
3. 인간*철학*윤리 / 이대희*김경훈 공저 / 세종출판사 / 2002
4. 철학의 이해 / 김춘태 / 중외출판사 / 2000
5. 인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 / 소광희 외 / 문예출판사 / 2005
6. 서양 고*중세 윤리학 / 김춘태 / 중외출판사 / 2003
7. http://blog.naver.com/mdpsjk?Redirect=Log&logNo=20021470522
그러나 비록 인간이 필연적으로 행복을 바라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는 개별적인 선택에 관해서 인간에게 자유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행복에 필요하지는 않지만 개별적인 선이 존재하며 그러한 것을 바라느냐 바라지 않느냐 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이다. 자유의지는 의지와는 다른 능력 또는 기능이 아니다. 그러나 그 양자사이에는 개념상의 구별이 있다. 왜냐하면 의지라는 말은 필연적이든(목적이나 행복에 관해서) 자유이든 (목적에 대한 수단의 선택에 관해서)간에 우리가 지니는 모든 의지 작용의 원리로서의 기능을 가리키고 있는 반면에, 자유의지는 목적에 대한 수단의 자유스러운 선택의 원리로서 위와 같은 기능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유롭다는 것은 인간은 이성적이라는 사실의 결과이다. 양은 자연적인 본능에 의해서 늑대를 피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인간은 지성의 자유로운 행위에 의해서 어떤 선은 얻어야 하고 어떤 악은 피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인간은 대상을 어떤 측면에서는 좋다고 생각하여 그것은 마땅히 선택되어져야 한다고 판단할 수 있고, 또는 그 대상을 다른 측면에서는 나쁘다고, 즉 어떤 선을 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것은 마땅히 피해야 한다고 판단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자유의지는 인간이 자유로이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따라서 자유는 의지에 속하지 않고 지성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아퀴나스에 따르면, 자유의지는 인간이 자유로이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할 경우 그것은 어떤 종류의 판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선택 가능한 대상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심사숙고를 목적으로 하는 선택의 결정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4)인간과 사회
인간 본성이 우리에게 어떤 기준을 제시한다는 견해와 관련해 볼 때, 아퀴나스의 자연법 사상은 쉽게 다루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다. 그가 자연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근대의 물리학이나 화학에서 제시하는 자연의 법칙이 아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자연법에 따라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지 그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나아가 그는 법률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신의 섭리에 의한 자연법처럼 일체의 모든 것에 적용되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는 법이 많은 사람들, 즉 높은 수준의 도덕을 견지하지 못하는 대다수에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도덕과 법이 아퀴나스에 있어서 일치하지 않는 까닭은, 도덕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법은 도덕 기능의 하나이다. 법은 자연법으로부터 도출되지 않으면 부당해질 수 있으며, 그것의 목적은 반드시 공동선이어야 한다. 아퀴나스는 법이 상이한 도덕적 관점들 사이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점을 부정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른다.
인간의 법률은 자연법으로부터 도출되어야 하며, 자연법에 대한 아퀴나스의 견해는 스스로의 선을 위해서 모든 것을 주재하는 신의 섭리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이해되어야 한다. 그는 “만물의 입법자인 신 아래서 모든 피조물들은 여러 자연적 성향들을 갖게 된다.” 고 말한다.
아퀴나스에 따르면 자연법의 명령은 우리의 자연적 경향의 위계와 상응한다. 첫째,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존시키려 하고 자연법은 삶의 여러 욕구들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둘째, 우리는 섹스와 종족번식이라는 기본적 욕구의 차원에서 다른 동물들과 공통되는 경향을 유지한다. 셋째, 아퀴나스는 합리적 본성의 차원에서 우리가 선에 대한 경향을 갖는다고 믿는다. 그는 우리가 신에 대한 진리를 알아야 하고, 사회 속에서 함께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경우 우리는 무지를 피해야 하고, 우리와 협동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 나오면서,
5) 토마스 아퀴나스의 현대적 의의
토마스 아퀴나스 아퀴나스가 저술했던 시기는 신학이 지배적 학문이었던 시대였다. 그에게는 인간과 짐승의 유사점과 상이점을 논의하기 위해서 인간과 천사의 위치를 비교하는 일이 중요했다. 그는 천상의 존재유형을 지상의 존재유형과 엄밀하게 구별했다. 이러한 그의 저술은 과학 이전 시대의 산물로 치부될 수 있지만, 이것은 지나치게 피상적인 반응이다. 최근의 정신 개념이 아퀴나스의 영혼 개념과 단순하게 동일시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본성에 관한 논의는 우리가 사후에도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는 기독교인들에게 특히 중요한 문제로서, 우리의 미래 운명이 논의의 초점이 되고 있다. 아퀴나스가 생각했던 것처럼 과연 우리는 천사보다 약간 낮은 존재인가, 아니면 우리는 그저 복잡한 동물에 지나지 않는가? 문제는 정신과 육체의 관계에 관한 문제와 연관된다. 그는 육화된 영혼을 언급했던 까닭에, 결국에는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질만이 참되다고 주장하는 일원론자는 당연히 사후의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아퀴나스는 이러한 문제에 직면했지만 그것을 해결했다는 것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참고문헌
1. 인간이란 무엇인가 / 이대희 / 정림사 / 2009
2. 인간론 강의 / 이대희 / 중외출판사 / 2000
3. 인간*철학*윤리 / 이대희*김경훈 공저 / 세종출판사 / 2002
4. 철학의 이해 / 김춘태 / 중외출판사 / 2000
5. 인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 / 소광희 외 / 문예출판사 / 2005
6. 서양 고*중세 윤리학 / 김춘태 / 중외출판사 / 2003
7. http://blog.naver.com/mdpsjk?Redirect=Log&logNo=2002147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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