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블라디미르 대공(블라디미르 1세)의 종교개혁
Ⅲ. 블라디미르 대공(블라디미르 1세)의 신(神)
Ⅳ. 블라디미르 대공(블라디미르 1세)의 기독교수용
Ⅴ. 블라디미르 대공(블라디미르 1세)의 세례
참고문헌
Ⅱ. 블라디미르 대공(블라디미르 1세)의 종교개혁
Ⅲ. 블라디미르 대공(블라디미르 1세)의 신(神)
Ⅳ. 블라디미르 대공(블라디미르 1세)의 기독교수용
Ⅴ. 블라디미르 대공(블라디미르 1세)의 세례
참고문헌
본문내용
을 들은 블라지미르는 신에 의해 이 땅에서 버림받은 것 같은 사람들의 신앙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마지막으로 대공을 알현한 콘스탄티노플의 사신은 창세기부터 그리스도 시대까지 인간의 구원에 대해 시종 설명하고 최후의 심판이 그려진 그림을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우측에는 신의 나라로 들어간 자들의 행복한 모습이 있었고, 좌측에는 지옥에 떨어진 자들의 이그러진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 사신은 블라지미르에게 세례를 받아 우측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라고 권유하였다. 정교신앙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고사하고라도 다른 종교의 대표자들이 설명하지 않았던 종말에 관한 이야기는 블라지미르의 주의를 끌었다.
그러나 블라지미르는 종교를 선택하는 데 신중하였기에 주변국 사신들의 말만 듣지는 않았다. 그는 각 나라에서 신을 어떻게 모시고 기도하는가를 알아 보기 위해 각 지역으로 사절단을 파견하였다.
각지를 방문한 사절단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콘스탄티노플의 성 마리아 성당에서 거행된 예배였다. 비잔틴인들이 루시의 사절단을 위해 특별 미사를 올리기도 전에 사절단은 돔식의 웅장한 지붕과 기둥이 하나도 없는 마리아 성당의 장대한 모습에 놀랄 뿐이었다. 하늘나라를 구체화시켰던 이 성당의 모습을 비롯하여 여기서 행해지는 훌륭한 성가와 기도의식 및 성상 등은 전성기 비잔틴의 건축과 미술, 음악과 문학의 결정판이었다. 예배의식에 사용되는 금이나 은으로 된 장식물, 벽면 가득히 메운 모자이크들, 엄청난 수량의 촛대에서 나오는 은은한 빛 속에서 진행되는 의식은 가히 보는 이들을 압도시키고도 남을 정도였다. 향이 피워지고 성가가 불리워지며 엄숙한 예배가 진행되는 가운데 초대된 사절단의 감흥은 블라지미르 대공에게 천국에 다녀온 것으로 전달되었다.
블라지미르가 사절단의 말에 깊이 감동했음은 물론이지만 직접 세례를 받게 된 계기는 그 후 988년 끄림 반도를 원정했을 때였다. 비잔틴 황제는 자신의 자리를 엿보던 자들과 대항하기 위하여, 당시 블라지미르에게 자신을 도와준다면 누이를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었다. 비잔틴 제국과 혼약을 맺는다는 것은 더 없는 영광이었기에 블라지미르는 기꺼이 원군을 파병하였다. 그 덕분에 황제는 정적들을 물리치고 평화를 찾았지만, 막상 누이를 이국땅에 보내려 하니 내키지 않았고 황실 내에 그런 전례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누이인 안나도 시집갈 마음이 없다고 하여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러자 블라지미르는 보복 조치로서 비잔틴 제국의 끄림 반도 관구를 원정하기에 이르렀다. 끄림의 켈손 마을이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비잔틴 황제는 이교도에게 누이를 시집보낼 수 없으니 먼저 세례를 받으라고 전하였다. 블라지미르는 안나를 곧장 보내준다면 세례를 받겠노라고 응답하였다. 황제는 할 수 없이 안나를 설득하여 정교회 신부와 함께 끄림으로 사절단을 보냈다.
연대기에는 블라지미르가 안나를 기다리는 동안 눈병에 걸려 눈이 보이지 않았다고 기록하여, 이 일을 신의 뜻이라고 표현했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곁으로 온 아내를 볼 수 없었던 블라지미르 대공은 몹시 낙담하였지만, \"세례를 받으면 속히 나을 것\"이라는 안나의 말에 따라 블라지미르는 마을 중심의 시장에 있던 성당(성 바실리 성당)에서 주교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랬더니 눈병은 씻은 듯이 나았고, 이를 본 수행원들은 매우 감동하여 자신들도 세례 받고 싶다고 청원하였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눈을 뜬 블라지미르는 사제들과 함께 성상과 성물(성 끌리멘뜨의 유물, 피프의 유물, 예배를 위한 제기들과 성상)들을 가지고 끼예프로 돌아왔다.
끼예프 사람들은 비잔틴 제국의 황녀를 데리고 온 블라지미르를 환영하면서 지금까지의 관습들을 내버려도 좋다고 표하였다. 이에 대공은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던 뻬룬의 우상을 드네쁘르강에 던져버리고, 자신이 거느리던 많은 아내와 첩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끼예프인들은 명령을 받을 필요도 없이 자신들의 대공이 좋다고 판단한 것이기 때문에 틀림없을 거라는 믿음하에 자발적으로 드녜쁘르강으로 뛰어들어 주교나 신부들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곧 이어 루시 땅 각지의 마을 사람들도 세례를 받고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다.
블라지미르는 이전에 뻬룬의 우상과 다른 우상들이 있었으며 공후와 백성들이 제사를 드렸던 곳에 성 바실리 성당을 세웠다. 그리고 많은 성당을 건립하였으며 도시 전역을 할당하여 사제를 앉히고 모든 도시 사람들이 세례를 받도록 인도하였다.
블라지미르의 세례는 그의 행동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음식과 술을 좋아하던 호전적인 대공은 절제와 자기 통제를 통해 인생의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였다. 그는 강력하고 관대한 기질로 고아와 가난한 자, 병자들을 도우면서 배고픈 자와 고통받는 자들을 위해 궁정의 문을 열어 놓았다. 뿐만 아니라 노인과 병자를 위한 수용소를 세웠고, 생명의 고귀함을 깨닫고 죄인에 대한 사형제를 폐지시켰다. 또 포교와 성직자 양성을 위해 대공은 젊은이들을 모아 공부시켰다. 연대기에는 어머니들이 아이를 울면서 보냈다고 하는 기록이 있으니 아마 대공은 젊은이들을 끄림 반도의 주교구에 학습하러 보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안나를 아내로 맞이한 블라지미르 대공은 그 예우로 끄림 반도(꼬르순 시)를 돌려주고 비잔틴과 동맹 관계를 맺었다.
10C 말에 수용한 그리스 정교는 루시 사회에 문자 도입과 더불어 체계적인 문화가 전래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이에 따라 \'문화 시스템\'이 구축될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그리스 고전의 관념과 감각에 채색된 비잔틴 문화를 통해 선과 미의 일치, 도덕적 아름다움이란 그리스적 이상을 수용하기에 이른 것이다.
참고문헌
김경묵 : 이야기 러시아사, 청아출판사, 2006
게오르기 페도토프 저, 김상현 역 : 러시아 종교사상사 1(키예프 루시 시대의 기독교), 지만지고전천줄, 2008
에이브러햄 애셔 저, 김하은 외 1명 역 : 처음 읽는 러시아역사, 아이비북스, 2012
오종우 : 러시아 거장들 삶을 말하다, 사람의무늬, 2012
이무열 : 러시아 역사 다이제스트 100, 가람기획, 2009
정막래 : 러시아 역사인물 사전, 계명대학교출판부, 2001
마지막으로 대공을 알현한 콘스탄티노플의 사신은 창세기부터 그리스도 시대까지 인간의 구원에 대해 시종 설명하고 최후의 심판이 그려진 그림을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우측에는 신의 나라로 들어간 자들의 행복한 모습이 있었고, 좌측에는 지옥에 떨어진 자들의 이그러진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 사신은 블라지미르에게 세례를 받아 우측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라고 권유하였다. 정교신앙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고사하고라도 다른 종교의 대표자들이 설명하지 않았던 종말에 관한 이야기는 블라지미르의 주의를 끌었다.
그러나 블라지미르는 종교를 선택하는 데 신중하였기에 주변국 사신들의 말만 듣지는 않았다. 그는 각 나라에서 신을 어떻게 모시고 기도하는가를 알아 보기 위해 각 지역으로 사절단을 파견하였다.
각지를 방문한 사절단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콘스탄티노플의 성 마리아 성당에서 거행된 예배였다. 비잔틴인들이 루시의 사절단을 위해 특별 미사를 올리기도 전에 사절단은 돔식의 웅장한 지붕과 기둥이 하나도 없는 마리아 성당의 장대한 모습에 놀랄 뿐이었다. 하늘나라를 구체화시켰던 이 성당의 모습을 비롯하여 여기서 행해지는 훌륭한 성가와 기도의식 및 성상 등은 전성기 비잔틴의 건축과 미술, 음악과 문학의 결정판이었다. 예배의식에 사용되는 금이나 은으로 된 장식물, 벽면 가득히 메운 모자이크들, 엄청난 수량의 촛대에서 나오는 은은한 빛 속에서 진행되는 의식은 가히 보는 이들을 압도시키고도 남을 정도였다. 향이 피워지고 성가가 불리워지며 엄숙한 예배가 진행되는 가운데 초대된 사절단의 감흥은 블라지미르 대공에게 천국에 다녀온 것으로 전달되었다.
블라지미르가 사절단의 말에 깊이 감동했음은 물론이지만 직접 세례를 받게 된 계기는 그 후 988년 끄림 반도를 원정했을 때였다. 비잔틴 황제는 자신의 자리를 엿보던 자들과 대항하기 위하여, 당시 블라지미르에게 자신을 도와준다면 누이를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었다. 비잔틴 제국과 혼약을 맺는다는 것은 더 없는 영광이었기에 블라지미르는 기꺼이 원군을 파병하였다. 그 덕분에 황제는 정적들을 물리치고 평화를 찾았지만, 막상 누이를 이국땅에 보내려 하니 내키지 않았고 황실 내에 그런 전례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누이인 안나도 시집갈 마음이 없다고 하여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러자 블라지미르는 보복 조치로서 비잔틴 제국의 끄림 반도 관구를 원정하기에 이르렀다. 끄림의 켈손 마을이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비잔틴 황제는 이교도에게 누이를 시집보낼 수 없으니 먼저 세례를 받으라고 전하였다. 블라지미르는 안나를 곧장 보내준다면 세례를 받겠노라고 응답하였다. 황제는 할 수 없이 안나를 설득하여 정교회 신부와 함께 끄림으로 사절단을 보냈다.
연대기에는 블라지미르가 안나를 기다리는 동안 눈병에 걸려 눈이 보이지 않았다고 기록하여, 이 일을 신의 뜻이라고 표현했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곁으로 온 아내를 볼 수 없었던 블라지미르 대공은 몹시 낙담하였지만, \"세례를 받으면 속히 나을 것\"이라는 안나의 말에 따라 블라지미르는 마을 중심의 시장에 있던 성당(성 바실리 성당)에서 주교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랬더니 눈병은 씻은 듯이 나았고, 이를 본 수행원들은 매우 감동하여 자신들도 세례 받고 싶다고 청원하였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눈을 뜬 블라지미르는 사제들과 함께 성상과 성물(성 끌리멘뜨의 유물, 피프의 유물, 예배를 위한 제기들과 성상)들을 가지고 끼예프로 돌아왔다.
끼예프 사람들은 비잔틴 제국의 황녀를 데리고 온 블라지미르를 환영하면서 지금까지의 관습들을 내버려도 좋다고 표하였다. 이에 대공은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던 뻬룬의 우상을 드네쁘르강에 던져버리고, 자신이 거느리던 많은 아내와 첩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끼예프인들은 명령을 받을 필요도 없이 자신들의 대공이 좋다고 판단한 것이기 때문에 틀림없을 거라는 믿음하에 자발적으로 드녜쁘르강으로 뛰어들어 주교나 신부들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곧 이어 루시 땅 각지의 마을 사람들도 세례를 받고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다.
블라지미르는 이전에 뻬룬의 우상과 다른 우상들이 있었으며 공후와 백성들이 제사를 드렸던 곳에 성 바실리 성당을 세웠다. 그리고 많은 성당을 건립하였으며 도시 전역을 할당하여 사제를 앉히고 모든 도시 사람들이 세례를 받도록 인도하였다.
블라지미르의 세례는 그의 행동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음식과 술을 좋아하던 호전적인 대공은 절제와 자기 통제를 통해 인생의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였다. 그는 강력하고 관대한 기질로 고아와 가난한 자, 병자들을 도우면서 배고픈 자와 고통받는 자들을 위해 궁정의 문을 열어 놓았다. 뿐만 아니라 노인과 병자를 위한 수용소를 세웠고, 생명의 고귀함을 깨닫고 죄인에 대한 사형제를 폐지시켰다. 또 포교와 성직자 양성을 위해 대공은 젊은이들을 모아 공부시켰다. 연대기에는 어머니들이 아이를 울면서 보냈다고 하는 기록이 있으니 아마 대공은 젊은이들을 끄림 반도의 주교구에 학습하러 보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안나를 아내로 맞이한 블라지미르 대공은 그 예우로 끄림 반도(꼬르순 시)를 돌려주고 비잔틴과 동맹 관계를 맺었다.
10C 말에 수용한 그리스 정교는 루시 사회에 문자 도입과 더불어 체계적인 문화가 전래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이에 따라 \'문화 시스템\'이 구축될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그리스 고전의 관념과 감각에 채색된 비잔틴 문화를 통해 선과 미의 일치, 도덕적 아름다움이란 그리스적 이상을 수용하기에 이른 것이다.
참고문헌
김경묵 : 이야기 러시아사, 청아출판사, 2006
게오르기 페도토프 저, 김상현 역 : 러시아 종교사상사 1(키예프 루시 시대의 기독교), 지만지고전천줄, 2008
에이브러햄 애셔 저, 김하은 외 1명 역 : 처음 읽는 러시아역사, 아이비북스, 2012
오종우 : 러시아 거장들 삶을 말하다, 사람의무늬, 2012
이무열 : 러시아 역사 다이제스트 100, 가람기획, 2009
정막래 : 러시아 역사인물 사전, 계명대학교출판부,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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