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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화장실][화장실 변화과정][화장실 기능][화장실 예절][화장실 인테리어][화장실 속담][예절][인테리어][속담]화장실의 변화과정, 화장실의 기능, 화장실의 예절, 화장실의 인테리어, 화장실의 속담(화장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화장실의 변화과정

Ⅲ. 화장실의 기능

Ⅳ. 화장실의 예절

Ⅴ. 화장실의 인테리어

Ⅵ. 화장실의 속담
1. 뒷간과 사돈집은 멀어야 한다
2. 뒷간에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르다

Ⅶ.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비원 으슥한 곳에 사대부집을 본따서 지은 연결당 행랑채, 마굿간 구석에 남아 있는 유일한 칙간이 제한된 수준의 사람만 쓰던 것으로 보이지만 유적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해서 궁중에 화장실이 없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예의를 최고의 가치로 숭상하던 시대 였으므로 궁중에서 방뇨했을 리는 없다고 믿어지기에 어떤 형태이든 대소변을 보던 장소는 존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상감의 생활 주변에 칙간을 아예 없애야 할 이유로, 첫째는 사가(私家)와 같은 방식의 위생 시설을 궁중에 설치한다는 것은 왕의 절대 권위에 손상이 된다는 점과 뒷간의 위생적인 처리 방안이 여러모로 당시 기술로는 미흡했기 때문에 배설물을 즉시 땅에 묻거나 없애는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착간은 없어도 변을 보는 그릇 또는 틀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조선시대 궁중에서 사용하던 \'매화(梅花)틀(매우틀)\'과 \'매화그릇(매우그릇)\'이 바로 그런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유물들은 창덕궁 대조전 경운각에서 발견되었다. 매화틀은 높이가 21센티미터, 너비가 39.5센티미터, 길이가 48.3센티미터 정도 되는 목제(木製)로 윗면은 장방형이며, 가운데 역시 장방형의 구멍이 파져있다. 또, 외곽은 엽문(葉紋)주단으로 폭신하게 입혀져 있고 아랫부분 양옆에는 발판이 있고 이 역시 엽문 주단으로 입혀져 있다. 이중 한쪽은 막혀 있지만 다른 한쪽은 터져 있다.
터진 면으로 변을 받는 \'청동제 매화그릇\'을 넣고 빼낼 수 있게 되어 있다. 틀의 규격이 작기 때문에 빼낼 수 있게 되어 있다. 틀의 규격이 작기 때문에 어린 왕자들이 쓰던 것으로 추측되며 현재 보관하고 있는 청동제 매화그릇은 현존하는 매화틀에 맞는 것이 아니다. 현존하는 매화그릇은 큰 어른용으로 높이 12센티미터, 넓이 22.5센티미터, 길이 49.5센티미터의 선형(船形)으로 되어 있다. 매화틀 겉에 입혀진 주단의 무늬나, 직조와 나무를 접합시킬 때 쓰인 핀의 모양으로 볼 때 개화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청동제 매화그릇은 부식 상태가 꽤 심한 것으로 보아 훨씬 이전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유적으로 남아 있는 왕궁의 매화틀에 앞서 다른 매화틀이 그 이전부터 사용되어 왔음을 짐작케 한다. 역대의 부유했던 상류층에서도 이런 형태의 변기를 모방하기도 하였는데 강릉의 선교장에 보존되어 있는 변기는 궁중의 매화틀과 매우 흡사하다. 이 변기가 매화틀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닥이 없다는 것인데 배변후 틀을 들어내고 받침그릇을 처리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민속학자 김광언 교수에 의하면 궁중에서는 매화틀을 담당하는 \'복이나인(지밀나인)\'이 있어 매화그릇에 \'매추\'라는 잘게 썰은 여물을 담아 틀 안에 넣어 두었다가 귀인(貴人)이 쓰고난 다음 여물을 다시 덮고 그릇을 빼내어 처리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프랑스 왕가의 의자식 변기(stool)와 매우 유사한 처리 방법이다. 왕이 쓰던 매화틀은 모두 세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침전에, 그리고 정사를 보는 곳과 신하는 만나는 곳에 하나씩 있었다고 하며 왕비나 왕대비는 각각 두 개씩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참고문헌
서병택, 우리나라 화장실 문명사, 대한설비공학회, 2012
서기원 외 2명, 화장실의 발전방향, 대한설비공학회, 2002
이경석, 효율적인 공중화장실 설치 및 관리 방안 연구, 한밭대학교, 2007
장림종, 아름다운 화장실 계획, 한국교육시설학회, 2007
조종식, 화장실 문화 개선 방안, POBA행정공제회, 2002
차승연, 화장실의 의미전환을 위한 공간연출 연구, 경원대학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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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8.09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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