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인물 박흥식과 응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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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제 강점기 인물 박흥식과 응행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 론
본론
결론

본문내용

% 전후의 비중을 차지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조선인은 대부분 평행원이었고 간부직으로 상승한 경우라도 본점의 부장, 지점장은 될 수 없었습니다. 조선인은 경영의 핵심 지위에 오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해방 후에는 증권업무나 은행의 기본적 핵심 업무인 심사 및 감정 업무 등에 대한 조선인 전문가가 없어서 기존 일본인 책임자에게 교육을 받았을 정도라고 합니다. 만약에 해방이 되지 않았다면 조선인은 이러한 업무들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위에서 살펴본 이러한 사실은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조선식산은행이 식민지 수탈을 위한 식민지 개발은행 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조선인 은행원들이 중책을 맡았던 것은 아니고 또한 은행 내에서 일본인들에게 차별대우를 받으면서 단순한 사무업무 정도나 보았을 것이라는 사실에서 일제 시대의 은행원들이 친일파 적인 성향을 가졌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편으로는 또 반대의 견해를 가진 자료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은행원들이 친일파였다라고 규정하는 것이 초점이라기보다는 일제 식민통치에 순응한 개인의 허영과 욕망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정병욱 연구원이 발표한 '조선식산은행원, 식민지를 살다'에서는 일제 당시 전형적인 화이트칼라로 대우 받았던 조선식산은행원들의 기록을 통해 은행원들이 경제적 욕망의 추구를 위하여 일제에 협조했다고 보고 사회적 성공을 향한 개인의 허영과 욕망이 불합리한 식민지 질서 하에서도 친일적 성향을 갖도록 하였다는 견해가 나타나 있습니다.
조선식산은행원들이 남긴 기록들 몇 가지를 인용해보면 먼저 1927년 조선을 발칵 뒤집었던 나석주의 조선식산은행 폭탄투척 사건 직후 당시 행원 왕창업이 남겼다는 기록을 들 수 있습니다.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 말에서 민족 독립의 중요성은 자신의 경력관리보다 중요치 않다는 듯 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가하면 일제의 무단통치가 극에 달해 3.1운동이 일어나기 직전인 1918년 10월 행원 신경재가 남긴 일기에서는 '월급이 올라 크게 기쁘다… 미시마(三島) 은행장을 비롯한 중역에게 감사의 염(念)을 금하기 어렵다' 이렇게 씌여 있다고 합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정병욱 연구원은 "일반 조선인보다 나은 생활을 했던 이들은 '남들과 다르다'는 개인적인 허영과 만족 때문에 민족보다는 일본인 행원과의 동질적 유대감이 더 강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제가 여기저기서 식민지 시대 은행원들의 삶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느낀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식민지 시대 은행원들에 대한 평가가 대부분 매우 부정적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단순히 저의 생각으로는 당시의 은행원들이 사회에서 엘리트로서 대우를 받는 전형적인 화이트칼라였기 때문에 다른 조선인들에 비하여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하였고 이들의 이런 모습이 평범한 조선인들의 눈에 결코 달갑게 보였을 리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들은 학교도 일본인들과 함께 다녔고 직장에서도 역시 일본인들과 함께 일하였으니 친일적 성향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배경이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위에서 보았듯이 조선인 은행원들 역시도 식민지 지배의 구조 속에서 약자로서 자신들이 일하는 직장에서는 차별적 대우를 받으면서 자신들이 가진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설움이 엄청나게 컸을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국사편찬위원회 정병욱 연구원의 “은행원들이 경제적 욕망의 추구를 위하여 일제에 협조했다고 보고 사회적 성공을 향한 개인의 허영과 욕망이 불합리한 식민지 질서 하에서도 친일적 성향을 갖도록 하였다”라는 견해 역시 분명 일리가 있다고 보겠지만 제가 생각할 때는 조선식산은행의 몇몇 행원들이 남긴 기록들만으로 “은행원들이 보편. 일률적으로 친일적 성향을 가졌었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분명 대단히 큰 논리적 비약이 아닌가!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결 론
이상에서 일제 시대 조선 최고의 자본가 박흥식과 당시 화이트칼라의 전형으로 엘리트 경제인이었던 은행원들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알아보았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해방전후사에 있어서 그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이 어떠하였는지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관심을 가진 어떤 인물과 직업군에 대하여 선정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하여 역사에 대해 깊이 있게 파헤쳐 보는 방식이 독특하면서도 흥미로웠던 것 같습니다. 이번 레포트에서 제가 선정한 인물과 직업군이 갖는 공통점은 둘 다 식민지 시대 에 경상 분야에서 활동하였다는 것, 또 보통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민족주의보다는 친일파 적인 느낌을 많이 풍긴다는 점, 당시 일반적인 조선인들과 비교할 때 성공한 사람들이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는 점 등 그 외에도 몇몇 가지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레포트에서 될 수 있으면 이러한 공통점들에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함으로써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인물과 직업군으로 나누어 알아본 두 파트가 서로 어느 정도 연관성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비록 친일파이기는 했지만 당시의 거물이었던 박흥식이라는 인물과 일제 시대의 은행원들에 대하여 알아보는 시간은 저에게 정말 흥미로웠고 유익했습니다!
<참고문헌>

반민족문제연구소. "박흥식: 반민특위에 제1호로 구속된 매판자본가 (박현채)".
(1993년 3월 1일).
반민족문제연구소. 친일파 99인 2권. 돌배게. 1994
일제하 박흥식의 기업가활동과 경영이념 .(한국사)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02
한국사 14 (식민지 시기의 사회경제2) 한길사. 1994
정병욱. 한국근대금융연구 -조선식산은행과 식민지 경제-. 역사비평사. 2004.
http://cafe.naver.com/coreajapan.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46
http://www.donga.com/fbin/output?f=j__&n=20061113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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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3.10.01
  • 저작시기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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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83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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